“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3,5)
클라라는 두려웠습니다. 아침이면 ‘오늘은 또 얼마나 넘어지려나?’ 걱정했습니다. 여섯 살 어린이 걸음으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의 성당 옆에는 유치원이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유치원에 갔습니다. 유치원 문 앞에는 수녀님이 서 계셨습니다. 걸어오는 동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해 새까매진 무릎을 털어주시며 “잘 왔다” 하고 반겨주셨습니다.
유치원 안에서도 넘어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두꺼운 안경도 소용없었습니다. 얕은 문턱이나 계단에서 어김없이 넘어졌습니다. 클라라가 넘어질 때마다 마치 클라라만 계속 지켜보고 계셨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수녀님이 나타나 넘어진 클라라를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클라라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 수녀님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라라도 커서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수녀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 클라라는 기도하는 소녀였습니다. 넘어지지 않기를,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하시는 엄마아빠의 무사귀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있으면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 멀리 계시는 하느님께서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응답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적 자주 넘어졌던 내가
새 생명 잉태하고 길러낸 일
모두 창조주 하느님의 신비
클라라는 수녀님이 되진 못했습니다. 소년 시절 신부님이 되고 싶었던 아우구스티노를 만나 함께 기도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일생을 함께 기도하며 살아가자고 약속하며 클라라와 아우구스티노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에게 가족이 더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클라라에게 아내, 엄마, 며느리, 아우구스티노에게 남편, 아빠, 사위 등등 여러 역할이 주어지는 일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3)
클라라와 아우구스티노가 부부가 된 지 스물두 해가 지났습니다. 두 딸 카타리나와 엘리사벳과 함께 새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수녀님의 도움 없이 유치원 생활이 불가했던 클라라가 어떻게 새 생명을 잉태하였는지,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어떻게 두 아이를 길러냈는지 신비롭기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클라라와 아우구스티노의 힘만으로 이루어낸 것 같진 않습니다. 온 세상을 만들어내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만들어내시고 길러주셨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년 성령 강림 대축일이면 성령칠은 카드를 뽑는 행사를 합니다. 봉사자분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여러 장의 카드 꾸러미 앞에 서면 마음이 설렙니다. 올해는 어떤 카드가 내게 올까 기대하게 됩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저는 늘 ‘용기(굳셈)’ 카드를 선물 받았습니다. 성령칠은 용기(굳셈)의 의미를 살펴보면,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어려움을 이겨낼 힘. 하느님께 나아감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 쓰여 있습니다. 성령칠은 용기(굳셈) 카드를 스마트폰 케이스에 꽂아두고서 자주 들여다봅니다. 볼 때마다 두려운 순간에 일어났던 신비 체험을 떠올립니다. 하느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마태 9,22)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