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말 한 마디

뭐가 중요한데?

이주연
입력일 2026-01-14 08:31:31 수정일 2026-01-14 08:31:31 발행일 2026-01-18 제 347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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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작은 체구에서 어떤 힘이 나오는지, 또렷또렷, 빠릿빠릿, 당찬 오뚝이 같습니다. 오랜 시간 간호사로 일하며 환자들을 돌봐온 친구는 지금 어느 큰 병원의 연구 간호사로 있으면서 췌장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만난 환자들이 그동안 몇 명이나 될지 가늠해 보기도 어려운데, 환자들에게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제 친구지만 경이롭다 싶습니다.

병원에서 간호사의 역할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많지요. 제게 이 친구는 건강에 관한 한 최고의 조언자로서 적극적인 태도를 항상 강조합니다. 생각이 많아서 머뭇거리는 제게 빠른 실행을 강조하는 친구를 보면, 조금만 방심해도 목숨이 오가는 사선(死線)에서 열렬히 싸워온 어떤 전사(戰士)를 보는 것 같아요.

그 전사는 그러나 모든 일이 심각하지만은 않습니다. 저녁에는 취미로 춤을 추고 여름에는 주말농장을 일구며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잘 맞춰 나가는데요. 이 친구가 제게 자주 하는 말이 “머가 중요해?”입니다. ‘대체 뭐가 중요한데?’라는 질문을 할 때 친구는 주저하고 망설이는 제게 큰 도움 되는 삶의 자세를 알려줍니다. 본질만 보라고, 그러면 간명하게 간추릴 수 있다고. 군더더기는 빼고 핵심만 생각해 보라고.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친구가 언젠가 종로 거리를 걸으며 무심코 던진 이 말. “내 말 아니고, 영화 대사야.” 친구는 웃어넘기지만 제게 이 말은 그때 그 시간 저를 살린 말로, 생각에서 행동으로 건너가는 시간차를 줄여준 효과 만점의 단방약(單方藥)이었지요. 고민되는 문제가 있으면 이 말을 떠올리며 가끔 심호흡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복잡한 일이 간추려지고 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코헬렛의 이 구절이 생각납니다. “책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일에는 끝이 없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몸을 고달프게 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코헬 12,12-13) 늘 분주하게 이것저것 재고 고민하는 우리. 하지만 그토록 복잡하게 늘어놓은 우리의 목록들이 실은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니 ‘뭐가 제일 중요한데?!’를 생각하면,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평생, 삶의 기준점으로 삼는 가치가 또렷해집니다.

친구는 ‘머가 중요해?’에 이어서 “아니면 말고” 툭 덧붙입니다. “이것도 영화대사야, 호호.” 하면서. ‘아니면 말고’는 무책임하고 손쉬운 포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삶에서 본질과 핵심만 남기고 생각하되 사람이기에 하기 마련인 실수가 있어도 움츠러들지 말라는 것, 시행착오를 겁내지 말라는 것.

그리 생각하니 더 큰 용기가 생깁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네 생명을 충만하게 하는 핵심으로 삶의 방향을 세우면 된다고. 그러면 일의 우선순위가 잡힌다고. 새로운 날, 또 어떤 생각도 못 한 일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무섭지 않다고, 차근차근 걷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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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