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정교분리’라는 헌법의 기본 조항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정치권력에 밀착될 때, 신앙은 복음의 빛을 잃고 정치의 언어를 닮아갑니다. 최근 일부 종교 집단과 정치권력의 부적절한 연계가 사회적 논란과 수사의 대상이 된 현실은, 종교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은 태동기부터 세상 권력과 긴장 관계에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거부하셨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신앙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신 선언이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세상의 양심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정교분리는 종교를 약화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를 보호하는 울타리입니다. 국가권력에 기대지 않을 때, 교회는 더 자유롭게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설 수 있고, 더 담대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습니다. 국가의 지원 없이도 존엄을 잃지 않는 신앙, 정치적 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복음의 본질을 지켜내는 공동체, 이것이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얼굴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 속에서 2027년 대한민국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WYD)는 100만여 명의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국가적으로 감당해야 할 더없이 큰 행사인 만큼, 우리 천주교는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미사 전후에 바치는 세계청년대회 성공을 위한 기도는 단지 출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2027 서울 WYD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어떤 신앙의 길을 선택하는지 세계 앞에 고백하는 증언의 장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계산 없이 타 종교를 존중하면서도 분명한 가톨릭의 정체성을 지닌 성스러운 잔치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행사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깊이이며, 성공의 기준은 화려한 박수가 아니라 진실한 회개의 눈물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천주교회는 먼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최근 사회적 지탄을 받은 일부 종파나 극단적 종교 단체들이 보여준 정치권력과의 유착, 불투명한 재정 운영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또한 청년들은 ‘동원된 참가자’가 아니라 ‘신앙의 주체’가 되도록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들의 언어로 경청하고 그들의 상처에 동행하며 그들의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습니다.
2027 서울 WYD는 한국 천주교회가 무엇을 소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 영향력이 아니라 복음적 신뢰로,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헌신으로 준비될 때, 이 대회는 비로소 은총의 사건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말할 때가 아니라, 살아낼 때입니다. 정치권력의 언어가 아닌 십자가의 언어로, 분노의 확성이 아닌 사랑의 침묵으로 세상에 다가갈 때, 사람들은 다시 우리 천주교회를 바라볼 것입니다. 정교분리의 원칙 위에서 더욱 빛나는 신앙, 세상 한가운데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교회. 2027년을 향한 이 길이, 한국 천주교회가 다시 복음의 첫사랑으로 돌아가는 순례의 여정이 되기를 온 마음과 온 정신을 모아 기도합니다.
글 _ 전재학 대건안드레아(인천교구 부천 중3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