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 개최…8월 2일까지
한국교회는 수많은 신앙 선조의 헌신과 순교 위에 세워졌다. 이와 함께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 역시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한 축이다. 박해 속에서도 언어를 익히며 복음을 전했고 신자들과 함께 기꺼이 순교한 그들의 희생은 믿음의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수교 역사를 통해 이 땅에 뿌리 내린 복음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한불 수교 14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이 6월 3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전시는 1831년 교황청이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파리외방전교회에 선교를 맡긴 데서 시작해, 화려한 외교보다 앞선 천주교 박해의 시간을 마주하게 한다. 전시장 초입에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입국과 박해의 역사가 펼쳐진다.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했고, 1866년 병인박해에서는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 선교사들과 수많은 조선 신자가 목숨을 잃었다. 병인박해는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침입, 곧 병인양요로 이어졌다.
박해 이후 교회가 언어와 기록을 통해 다시 일어선 과정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놓인 「한불자전」은 리델 주교와 선교사들이 한글 표제어에 알파벳 발음과 한자 원어를 병기하고 프랑스어 뜻을 덧붙여 만든 사전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글을 익히는 데 쓰인 이 사전은 교리교육과 번역, 소통의 기반을 다시 쌓고자 한 흔적이다.
이어 전시는 1886년 6월 4일 체결된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조명한다. 프랑스는 선교 활동의 자유를 요구했고, 조선 정부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랜 협상 끝에 조약에는 ‘가르침을 허가한다’는 표현이 담겼고, 프랑스 선교사들은 제한적으로나마 포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여행권 호조(護照)를 통해 조선 각지를 다니며 신앙을 전할 길도 열렸다.
전시는 이러한 흐름이 천주교 확산의 계기가 됐으며, 서울 명동성당 건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코스트 신부의 설계를 토대로 착공한 성당은 1898년 46.7m 높이의 종탑을 갖춘 모습으로 완공됐다. 특별전에는 1883년부터 1889년까지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가 기록한 ‘명동성당 건축을 위한 대지 매입 일지’도 전시돼 있다.
전시는 근현대사를 거치며 두 나라의 관계가 연대와 우정으로 변화해 온 과정도 비춘다. 1919년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프랑스 당국의 묵인 아래 활동을 이어 갔고, 파리에 한국통신국을 설치해 유럽 언론에 한국의 상황을 알렸다. 1945년 독일의 항복을 계기로 김구와 샤를 드골이 주고받은 메시지도 전시에서 소개된다. 프랑스는 1949년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 승인했고, 6·25전쟁 때는 약 3500명을 파병해 한국을 지원했다.
박해와 선교에서 시작된 한불 관계는 임시정부의 연대와 전쟁 지원, 문화 교류를 거쳐 오늘의 우정으로 이어졌다. 특별전은 그 긴 여정 속에 한국교회의 헌신과 기록도 함께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다.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
황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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