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1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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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 2026-07-28 16:42:17 수정일 2026-07-28 16:42:17 발행일 2026-08-02 제 350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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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 55,1-3 / 제2독서 로마 8,35.37-39 / 복음 마태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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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가 전해 주듯이 예수님 곁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 곁에 머물렀을까요? 그분의 가르침과 기적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들으신 뒤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중은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침묵 시간을 방해하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군중을 보고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있는 배고픈 사람들, 아픈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마태 14,14 참조) 그 연민이 예수님을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슬픔 속에서도 사람들의 아픔을 먼저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 안에서 자신을 내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연민은 온유하고 부드럽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끌어당기는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그 연민은 예수님을 군중에게 다가가게 했고,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시며, 제자들의 계산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오병이어의 기적 자체보다 그 기적을 낳은 예수님의 연민에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합니다.

예수님의 연민은 특별한 사람만이 실천하는 거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아주 작은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배움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산책을 하다가 맨발의 한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어르신은 맨발 걷기를 하려고 쉼터에 신발을 벗어두었는데 관리인이 문을 잠그고 퇴근하는 바람에 신발을 꺼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에 가야 하는데 맨발로는 갈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잠시 망설였지만 저는 제 신발을 벗어드렸습니다. 산책로에서는 맨발이 괜찮았지만, 수녀원까지 아스팔트 길을 맨발로 걸어가려니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날 저는 맨발로 수녀원까지 걸으며 깨달았습니다. 연민은 반드시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편을 내 불편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연민은 멀리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사랑입니다.

연민은 연약한 감정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곧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성경에서 연민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라하밈(rachamim)’과 복음서의 그리스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는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품고 사랑으로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연민은 하느님의 언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부족한 현실에 머문 제자들의 시선과 배고픈 군중을 보시며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 참조)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시선 사이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연민입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일깨우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대개 작지만 깊은 연민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연민의 실천은 때로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열매를 맺습니다.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오늘, 교회가 전해야 할 가장 큰 힘은 예수님의 연민입니다. 예수님의 연민은 인간의 아픔을 먼저 바라보시고 품어주시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능력은 없지만,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의 불편을 내 불편으로 받아들이는 연민은 오늘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작은 연민의 순간들을 통해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고, 세상은 조금씩 하느님 나라를 닮아 갑니다. 예수님의 연민이 살아 있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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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전봉순 그레고리아 수녀(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