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말고 인간!] AI가 학습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성장한다

받아쓰기 시험지에 틀린 글자 하나 때문에 울던 아이가 있었다. 다음 시험엔 그 글자를 다시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 돌아보면, 아이 안에서 달라진 것은 그 한 글자만이 아니었다. 틀려도 손을 다시 드는 사람, 실수한 친구를 나무라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같은 오답에서 시작했지만, 하나는 정답을 익힌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는 둘 다 ‘배웠다’고 부르지만, 이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중국 산시성 소재 타이위안사범대학교 교육대학 연구진은 2026년 6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 777명을 조사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진은 교실이 실수를 다루는 분위기, 곧 오류관리 풍토에 주목했다. 이 풍토는 두 가지 경로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능력이 노력으로 자란다는 믿음, 곧 ‘성장 마인드셋’을 키우는 경로다. 연구진은 이 두 경로 가운데 어느 쪽이 아이의 도전하는 힘, 이른바 혁신 자기효능감에 더 크게 이어지는지를 살폈다. 두 경로 모두 유의미했지만 격차는 뚜렷했다. 두려움을 줄이는 경로보다 성장 마인드셋을 키우는 경로가 세 배 남짓 크게 작용했다. 단지 겁먹지 않게 된 것보다, 자신이 자랄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 아이의 도전하는 힘과 훨씬 더 강하게 맞물려 있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 결과로 실수를 어떻게 해석하도록 돕느냐가 아이의 성장 마인드셋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짐작한다. AI도 학습할 수 있다. 정답과의 차이를 계산해 오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내부 수치를 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개선은 딱 그 작업 안에 갇혀 있다. 손가락을 더 정교하게 그리게 된 이미지 생성 AI가 더 신중해지거나 겸손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 문제를 더 잘 풀게 된 언어 모델이 다른 낯선 문제 앞에서 태연해지는 것도 아니다. AI의 학습은 능력 하나를 갱신할 뿐, 그 능력을 지닌 존재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 어제보다 나아진 수치가 있을 뿐, 어제보다 나아진 존재는 없다. 반면 사람은 한 번의 실패로 그 기술만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전체가 달라진다. 시험에서 무너져 본 경험은 훗날 전혀 다른 자리에서, 낯선 이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학습으로는 무엇을 아는가를 배우고, 성장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배운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에게, 또 서로에게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빨리 정답을 맞히는가가 아니라 실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 사람은 그 일 하나만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너그럽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걸어 나온다. 그 너그러움과 단단함은 시험지 밖에서도, 삶의 다른 자리에서도 그 사람을 지켜 준다. 알고리즘은 갱신되고, 사람은 성장한다. 그 차이를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아이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키우는 방식이어야 한다. AI가 학습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성장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힐데가르트 성녀 〈오 지혜의 힘이여〉

이것은 불교의 만다라일까. 처음 마주했을 때의 생소함과 경이감이 생생하다. 수많은 얼굴과 날개, 눈들이 층층이 원을 이룬다.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동심원들이 제각기 돌아가는 착시현상도 일어나는 듯하다. 이는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가 「스키비아스(Scivias)」 제1부 제6환시에서 묘사한 ‘천사들의 합창단’ 도판이다. 참고로 스키비아스는 ‘주님의 길을 알라(Sci vias Domini)’는 뜻이다. 힐데가르트는 ‘천사들에게서 온갖 종류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그들이 경이로운 화음으로 하느님께서 거룩한 영혼들 안에서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는 환시를 보았다. 천사들의 배경을 알기 위해 중세 천사론의 주요 원천인 위(僞) 디오니시우스의 「천상 위계론(De Coelesti Hierarchia)」을 살펴보자. 여기서 디오니시우스는 천사들을 세 품계씩 세 위계로 나누었다. 치품천사·지품천사·좌품천사, 권품천사·능품천사·역품천사, 주품천사·대천사·천사. 말하자면 3·3·3의 질서다. 힐데가르트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아홉 대열은 3·3·3이 아니라 2·5·2로 묶인다. 그녀는 「스키비아스」에서 이렇게 쓴다. 처음 두 대열은 인간의 몸과 영혼을, 가운데 다섯 대열은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로 정화된 인간의 오감, 가장 안쪽 두 대열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리킨다. 성녀는 기존 구품천사론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인간의 몸과 영혼, 구원의 질서 안에서 새롭게 풀어낸 것이다. 이 원형의 천상은 힐데가르트 음악과도 공명한다. 그녀의 성가 〈오 지혜의 힘이여(O Virtus Sapientiae)〉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 지혜의 힘이여(O Virtus Sapientiae), 당신은 돌고 돌며(quae circuiens circuisti), 생명을 지닌 하나의 길 안에서 모든 것을 감싸안으셨습니다(comprehendendo omnia in una via quae habet vitam).” Circuiens circuisti. 돌고 돌며, 에워싸며. 힐데가르트의 노래 속 지혜는 모든 것을 원처럼 포용한다. 「스키비아스」의 천사들도 그렇게 동심원을 이루며 창조주를 향한다. 단테의 「신곡」 천국편 제28곡도 함께 떠오른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하나의 눈부신 점을 중심으로 아홉 천사 무리가 원을 이루며 회전하는 광경을 본다. 베아트리체는 이를 설명하며 디오니시우스 이름까지 언급한다. 훗날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는 이 장면을 빛과 천사들의 장엄한 원무로 새겼다. 9월 17일, 힐데가르트 성녀의 축일을 기다리며 〈오 지혜의 힘이여〉를 듣는다. 12세기의 힐데가르트와 14세기 단테, 그리고 19세기 도레. 시대도 표현도 달랐지만 천상은 거듭 원을 그린다. “당신은 돌고 돌며 모든 것을 감싸안으셨습니다.” 900년 전 힐데가르트가 노래한 하느님 지혜의 신비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16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스테파니의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2004년 우리나라에도 번역·소개되었던 역사소설 「임프리마투르」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아토 멜라니(Atto Melani, 1626~1714). 그는 유럽 왕실을 누비던 카스트라토 가수이자,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비밀 정보원이기도 했다. 그의 생애에는 노래와 정치, 밀사 임무와 첩보가 함께 했다. 가상 인물처럼 보이지만 무려 실존 인물이다. 동시대 네덜란드에는 콘스탄테인 하위헌스(Constantijn Huygens, 1596~1687)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부친이다.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류트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을 방문했을 때 제임스 1세 앞에서 연주했고 이런 말을 남겼다. “류트, 접견실로 들어가기 위한 나의 열쇠여.” 음악학자 폴 오데트는 “류트 연주자는 자주 스파이나 이중 첩자로 이용되었다”라고 말한다. 나지막한 음량을 가진 류트는 왕이나 최고위 측근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연주하기 좋은 내밀한 현악기다. 한마디로 이는 정보원에 접근하기 최적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음악은 궁정 깊숙한 곳으로 사람을 데려갔고, 때론 외교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이런 시대에 작곡가와 외교관, 가수, 성직자 이력을 한 몸에 지닌 사람이 있었다. 아고스티노 스테파니(Agostino Steffani, 1654~1728)다. 스테파니의 삶을 한 가지 직함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로 활동했고, 작곡을 공부했다. 뮌헨 궁정에서 일하다 1680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하노버로 옮겨 여러 오페라를 썼고, 외교 임무도 맡았다. 브뤼셀과 뮌헨을 오가며 협상에 참여했으며, 주교품을 받고 작센 지역 대목구장까지 올랐다. 그의 첫 출판 작품은 성음악집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인 1674년 로마에서 펴낸 「저녁기도 시편집(Psalmodia vespertina)」이다. 같은 시기 스테파니는 별도의 성음악도 작곡했다. 1673년 11월에 완성된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Laudate pueri)〉가 그중 하나다. 시편 113편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은 오늘날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필사본으로 전한다. 아홉 성부로 쓰인 곡이지만 독창, 이중창, 삼중창과 합창이 번갈아 나타나고, 때론 두 합창이 합쳐지면서 음향의 크기와 밀도가 달라진다. 적은 수의 성부가 중창처럼 나서며 선율들이 서로를 모방하고 화답하며 얽힌다. 훗날 스테파니의 이름을 널리 알린 ‘듀엣(실내 이중창)’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스테파니는 듀엣의 대가였다. 곡을 듣다 보면 궁금증도 생긴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상대를 붙잡고 싶은 조바심, 질투와 희망, 체념과 격정이 작품 속에서 계속 교차하기 때문이다. 이후 주교가 된 사제가 사랑과 관련된 온갖 감정을 어떻게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냈을까. 바로크 시대 작곡가에게 인간의 여러 정감(affetti)을 표현하고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스테파니는 이런 면에서 탁월한 거장이었고, 그의 이중창이 유럽 전역에서 큰 명성을 얻은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에도 그의 음악적 특기가 곳곳에서 보인다. 여러 목소리가 맞물리고 다시 합치되며, 텍스트에 섬세한 표정을 드리우는 감각. 사랑의 애틋함을 노래할 때도, 시편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때도, 그는 음악과 가사로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수이자 작곡가, 사제이자 주교. 때로는 외교관으로서 국경을 넘나들었던 이. 멜라니와 하위헌스 사례에서 보았던 17세기 음악가의 여러 모습이 스테파니에게서 모두 공존한다. 열아홉 살 청년이 남긴 아름다운 시편은, 훗날 그가 보여줄 천의 얼굴을 예고하고 있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17면

[AI 말고 인간!] AI가 분석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맥락을 읽는다

전화기 너머로 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나 잘 지내.” 짧은 한마디인데 어머니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말끝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고, 웃음소리 뒤에 미세한 머뭇거림이 섞여 있다. 몇 초의 침묵, 그 틈에서 어머니는 이미 알아챈다.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정작 딸은 그 어떤 사정도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 같은 말을 인공지능(AI) 스피커에게 건네면 어떨까. 문장은 정확히 인식하고, “다행이네요”라는 다정한 답이 곧바로 돌아올 것이다. AI는 문장을 읽지만, 문장 뒤에 숨은 떨림은 읽지 못한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교 연구진은 2025년 4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간극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미지, 영상, 언어를 다루는 AI 모델 350여 개를 모아 실험했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3초짜리 영상을 AI에게 보여 준 뒤, 연구진은 사람들이 그 장면에 매긴 평가와 뇌 반응을 AI가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는지 비교했다. 물체와 장면을 처리하는 뇌 영역의 반응에서는 AI가 비교적 사람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사람들이 함께 무엇을 하는지, 서로 소통하는지처럼 사회적 상호작용이 걸린 장면에서는 한계가 뚜렷했다. 특히 그 장면을 볼 때 나타나는 사회적 시각 처리 관련 뇌 반응을 인간 수준으로 예측한 모델은 없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었다. 사람이 쓴 문장 설명을 함께 받은 AI는 영상만 보고 판단한 AI보다 사람들의 평가를 더 비슷하게 맞혔다. 언뜻 사람과 비슷하게 이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같은 장면을 볼 때 사람의 뇌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니 결과는 달랐다. 문장 설명을 받은 AI조차 사람의 뇌 반응은 제대로 맞히지 못한 것이다. 답은 비슷하게 냈지만, 그 답에 이르는 방식은 사람과 달랐다는 뜻이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나 상황을 판단하는 일을 맡은 뇌 부위에서는, AI가 사람을 따라잡지 못하는 정도가 훨씬 더 심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이렇게 짐작한다. 지금의 AI는 정지된 장면을 읽는 데는 능숙해졌지만,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살아 있는 장면을 인간처럼 읽어 내기에는 아직 서툴다는 것이다. 맥락을 읽는다는 것은 정답에 가까운 판단을 내놓는 일이 아니다.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을 알아채는 일이다. 목소리의 떨림, 시선이 머무는 시간, 침묵의 무게 그리고 그 사람을 오래도록 지켜봐 온 시간의 축적. 이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맥락이 완성된다. 정답을 맞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알고리즘은 어제와 오늘의 표정을 나란히 비교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말보다 먼저 마음을 읽고, 정답을 찾기보다 상대를 살피는 것. 그 능력은 데이터를 쌓는다고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함께 밥을 먹고, 눈을 맞추고, 서로의 침묵을 견뎌온 시간 속에서만 조용히 자란다. 오늘 당신은 누군가의 말 뒤에 숨은 표정을 놓치지는 않았는가. AI가 분석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맥락을 읽는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17면

[성미술 산책] 고흐 <씨 뿌리는 사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예술가, <해바라기>의 작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동생, 그리고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테오와 무려 75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덕분에 그의 깊고 진솔한 내면세계와 예술철학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27세에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가장 가난한 자들인 농부, 광부, 매춘부 등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았고, 생을 마감한 37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10여 년간 작품 제작에 온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의 팔레트는 처음부터 밝지 않았습니다. 초창기 고향 네덜란드에서 활동할 때는 갈색조로 어두웠는데,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인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인상주의’의 밝은 색채와 빛을 접하며 대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Arles)에 체류할 때 그린 작품으로, 보랏빛의 드넓은 양탄자가 깔린 듯한 밀밭 우측에 힘차게 걸어 나오며 씨를 뿌리는 농부가 있습니다. 멀리 후경에는 아직 수확을 기다리는 황금빛 밀밭이 지평선 너머 펼쳐지고 그 뒤로 강렬한 노란 태양이 눈부신데, 고흐는 그의 그림 속 ‘태양’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같이 하느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빛은 이 세상 어디 후미진 곳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고흐는 자신이 정신적 지주로 삼은 프랑스의 자연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와 같이 ‘일상에서 거룩함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진실된 신앙고백’이라는 신념을 함께 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갈라 6,7)라는 ‘노동의 숭고함‘의 교훈을 전해줍니다. 씨앗이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수확에 이르기까지 바로 그 시작은 좋은 씨를 뿌리는 행위에서 시작됩니다. 그가 한 화가 친구에게 한 진솔한 고백은 그의 인간적이고 신앙적인 면모를 보여 줍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선하고 쓸모 있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일상의 다사다난한 문제들을 풀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고단한 우리 삶의 운명입니다. 고흐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가득 담은 햇살을 받으며 이 세상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리고 이 귀한 삶을 얼마나 열정적이고 의미 있게 채워야 하는지….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14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새들과 이야기를 나눈 ‘프란치스코의 사막섬’

포조 부스토네의 거룩한 동굴에서 선교 사명을 받은 프란치스코는 형제들만 낯선 땅으로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같은 하느님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신앙을 ‘틀린 신앙’으로 여겼던 이 시기의 선교는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수도회의 창설자로서 형제들을 비그리스도교 지역으로 파견한다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프란치스코는 1219년 일루미나토 형제와 함께 제5차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 다미에타까지 갔습니다. 당시 십자군은 나일강 범람과 홍수, 역병, 지휘자의 능력 부족으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37세의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측 교황 대리 펠라조의 허락을 받아 39세의 이슬람 술탄 말릭 알 카밀을 만났습니다. 그는 평화의 필요성을 말하며 술탄과 그 백성들에게 개종을 권고했습니다. 또 자신의 말과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불을 피워 이슬람 제사장과 함께 그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을 시험하려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불에 타 죽으면 자신의 죄 때문이고, 살아남는다면 모든 이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힘이니 개종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사장들은 두려운 얼굴로 불을 등진 채 달아났고, 술탄은 손을 뻗어 프란치스코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죽든 살든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술탄은 프란치스코의 용기에 감탄해 보물을 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갈망하고 청빈을 서약한 프란치스코는 재물을 먼지처럼 여겼습니다. 이를 본 알 카밀은 프란치스코에게 더 큰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비록 알 카밀이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프란치스코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서 생활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프란치스코회는 지금도 예루살렘 성지를 지키며 하느님의 평화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5차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까지 간 프란치스코는 말릭 알 카밀을 만나 평화를 전한 뒤, 베네치아인들의 배를 타고 돌아오다 사막섬을 발견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가 이곳에 있었다는 첫 기록은 13세기 중반 성 보나벤투라가 쓴 「대전기」에 나옵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1263년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유해를 확인하고 대성당으로 옮기기 위해 파도바에 머물며, 프란치스코 성인이 베네치아의 사막섬에 머물렀다는 전승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전기」에 따르면, 프란치스코는 베네치아의 석호를 건너는 동안 많은 새 무리가 지저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새 형제들이 창조주를 찬미하고 있으니 새들 사이로 들어가 함께 시간경을바치자고 했습니다. 새들은 사람을 피해 달아나지 않았지만, 새소리가 기도 소리와 뒤엉켜 시간경의 응송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성인은 새들에게 자신들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잠시 소리를 멈춰 달라고 했습니다. 새들은 알아들은 듯 성인과 동료들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다시 지저귀어도 좋다고 허락하자, 자기들의 방식으로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이 섬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작은 비잔틴 양식의 성당이 있었습니다. 기도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 프란치스코는 동료인 일루미나토와 함께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이 섬은 오래전부터 ‘두 포도나무의 섬(Isola delle due vigne)’으로 불렸고, 소유주는 베네치아 사람 야곱 미키엘이었습니다. 성인이 선종한 뒤인 1233년, 야곱 미키엘은 이 섬을 프란치스코회에 기증했습니다. 이때부터 섬은 ‘프란치스코의 섬’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5세기 무렵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섬은 한때 방치되어 황폐해졌고, 지형적 의미에서 ‘사막(deserto)’이라는 말이 붙어 ‘프란치스코의 사막섬’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오히려 긍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곧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세상과 단절된 고요한 은수처’라는 뜻으로 더 빛나게 된 것입니다. 수도원 입구 현판에 적힌 ‘O BEATA SOLITUDO, O SOLA BEATITUDO(오, 복된 고독이여, 오, 유일한 행복이여)’라는 문구처럼, 이곳은 하느님을 기다리는 축복받은 고독이며 하느님을 만나는 유일한 행복을 지금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정문에 들어서면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공간인 13세기 사각 정원과, 염분 많은 섬에서 빗물을 받아 모아 사용하던 우물을 볼 수 있습니다. 우물은 육신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수도자들의 생활 공간 한가운데 자리한다는 점에서 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사각 정원 한쪽 벽에는 13세기 부조로 만들어진 프란치스코회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벌거벗은 팔은 예수님의 팔을, 옷소매가 있는 팔은 프란치스코의 팔을 나타냅니다. 두 팔의 손바닥에는 모두 못 자국이 새겨져 있습니다. 십자 모양으로 교차된 두 팔은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자신의 삶 안에서 온전히 따르고자 했던 열망을 상징합니다. 사각 정원과 붙어 있는 수도원 성당은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이 프란치스코가 시성된 해인 1228년에 처음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재의 성당은 수 세기에 걸친 증축과 개축, 복원을 거치면서도 최대한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수도원 성당과 성모 마리아 소성당 사이에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장소인 프란치스코의 기도소가 있습니다. 그곳에 새겨진 문장은 이곳이 성인께서 머물며 기도했던 자리임을 일깨웁니다. ‘Hic est locus ubi oravit seraphicus pater Franciscus(여기는 천사 같은 사부 프란치스코가 기도한 장소입니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땅에서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이곳에서 종교 간 갈등의 해소와 평화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자국의 이익만을 외치고 이웃을 적으로 돌리며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오늘,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13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레스피기 〈성 대 그레고리오〉

역대 교황 중 이름에 ‘대(大)’ 호칭이 붙은 이는 단 세 명이다. 성 대 레오 1세,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성 대 니콜라오 1세다. 그중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590년부터 604년까지 교회를 이끌었고, 593년경에는 로마를 위협하던 랑고바르드족과의 협상에 나서며 평화의 수호자로도 존경받았다.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을 맞아 여러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어본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그레고리오 1세가 이 성가들을 직접 작곡했다기보다, 후대에 전례 성가의 권위가 교황의 이름과 결부되었다고 본다.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는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이다. 그는 1921년에 완성한 피아노곡 〈그레고리오 선율에 의한 세 개의 전주곡〉을 대규모 관현악곡으로 수정하고 한 곡을 추가해 〈교회의 창(Vetrate di chiesa)〉을 완성했다. 1927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된 작품은 〈이집트로의 피신〉, 〈성 미카엘 대천사〉, 〈성녀 클라라의 아침기도〉, 〈성 대 그레고리오〉 네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 때문에 레스피기가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직접 보고 작곡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음악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후 종교적 표제가 붙었다. 특히 〈성 대 그레고리오(San Gregorio Magno)〉는 그레고리오 성가 〈천사 미사(Missa de Angelis)〉의 글로리아 주제를 장대한 오케스트라로 확장한다. 편성부터 압도적이다. 대규모 목관과 금관, 현악에 징 계열 타악기인 대·중·소 세 종류의 탐탐까지 가세한다. 레스피기는 다채로운 악기군을 한꺼번에 내보이지 않고 천천히 출연시킨다. 저역에서 호른이 제시하는 주제가 발전되고, 타악기가 공간감을 만들며 오르간이 울리면, 옛 선율은 어느새 천상교회를 형상화하는 듯한 규모로 변모한다. 제목의 ‘Magno’를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다. 이탈리아어 Magno는 ‘대(大)’, ‘위대한’이라는 뜻이다. 옛 단선율 하나가 수많은 악기의 색을 입고 웅대한 음향으로 구축된다. 소리로 그레고리오의 ‘위대함’을 묘사한 셈이다. 레스피기가 그리는 교황은 친숙한 성인의 초상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이는 대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이 표상하는 교황권의 존엄함과 교회 전통의 유구함을 연상하게 한다. 기묘한 경외감도 스며든다. 독일 신학자 오토(Rudolf Otto)는 인간이 거룩하거나 초월적인 것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을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라고 불렀다. 이 곡이 자아내는 정감 역시 친근함보다는 청자를 압도하고 전율하게 하는 숭고함에 가깝다. 곡의 웅장한 종결부에 매료된 이들도 적지 않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ELP)’는 라이브 공연 마지막에 〈성 대 그레고리오〉의 피날레를 사용하기도 했다. 6세기 교황과 이어진 옛 성가가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의 손에서 거대한 관현악으로 재탄생되는 순간은 경이롭다. 오랜 전례와 교회의 기억이 장엄한 음향으로 솟아오르는 시간. 〈성 대 그레고리오〉의 ‘Magno’는 그렇게 음악 속에서 완성된다. ▶ 〈성 대 그레고리오〉를 차용한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라이브 공연(13분 38초부터)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16면

[AI 말고 인간!] AI가 답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되물어 답한다

저녁 식탁, 국을 뜨던 아이가 문득 숟가락을 멈추고 묻는다. “왜 밤하늘은 까매?” 어른은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몇 초 뒤 화면 위로 정갈한 문장이 뜬다. ‘우주가 계속 넓어지면서 빛이 멀어지고, 해가 진 동안에는 우리가 있는 곳에 햇빛이 닿지 않기 때문’이라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숟가락을 든다. 그런데 이상하다. 궁금증은 채워졌는데, 무언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린 느낌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등의 연구진이 참여해 2025년 12월 발표한 논문에서, 5세에서 7세 사이의 아이 103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2주간 실험했다. 한 집단에는 과학수업 중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 했고, 다른 집단에는 귀 기울여 ‘들으라’ 했다. 2주간의 과학수업이 끝난 뒤, 연구팀은 새 과학 영상을 보려면 스티커를 몇 개까지 낼 수 있는지 물어, 새 정보를 얼마나 갖고 싶어 하는지를 가늠했다. 질문하며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그저 듣기만 한 아이들보다 더 많은 스티커를 기꺼이 내놓았다. 새로 알게 될 지식에 매긴 값이 더 높았다는 뜻이다. 특히 처음부터 과학을 잘 몰랐던 아이일수록, 질문해 보는 경험 뒤에 새 과학 정보를 더 얻고 싶어 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집단이 실제로 배운 과학 지식의 양에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연구팀은 아이들이 더 많은 답을 들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왜?’라고 물어본 경험 때문에 새 지식을 더 값지게 여기게 됐을 수 있다고 본다. 무언가 물으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들여다봐야 하고, 그 빈틈을 알아차리는 순간 지식은 비로소 아이에게 값을 지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AI는 이 빈틈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엇을 물어도 답하지만, 스스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이가 별을 보며 왜냐고 묻기 전, 마음속엔 이미 작은 균열이 자라고 있었다. 그 균열이야말로 질문의 시작이며 배움의 출발점이다. AI에게는 그런 균열이 없다. 물음이 던져지는 순간 즉시 메워야 할 빈칸일 뿐, 며칠이고 품고 다니는 궁금증이 아니다. 요즘은 물음표를 띄우기 전에 먼저 화면을 켠다. 회의 중 모르는 말이 나오면 손을 들기보다 조용히 검색창을 연다.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 점점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정작 부끄러워할 것은 무지가 아니라, 그 무지를 견디지 못해 서둘러 덮어버리는 조급함이다. 질문은 무지를 고백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 고백을 생략한 채 얻은 답은 지식이 되지 못하고 화면 위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질문은 답보다 불편하다. 무엇을 모르는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통과한 사람만이 지식을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AI는 세상 거의 모든 물음에 답할 수 있지만, 단 하나의 물음도 스스로 품지 못한다. 궁금해하는 능력,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잠시 멈추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닌 배움의 문이다. 인간의 진짜 답은 완결된 문장이 아니라, 또 다른 물음의 형태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오늘 당신은 완결된 답을 구했는가, 아니면 그 답을 새로운 물음으로 되돌려 보냈는가. AI가 답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되물어 답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16면

[AI 말고 인간!] AI가 공감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아파한다

새벽 두 시, 병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있던 이는 결국 휴대폰을 켠다. 손가락이 떨리는 채로 오늘 있었던 일을 적어 내려간다. 몇 초 뒤, 화면에는 흠잡을 데 없이 다정한 문장들이 도착한다.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문장은 매끄럽고 위로는 정확하다.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 사람보다 먼저 찾는 것이 화면인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가슴 한편은 여전히 헛헛하다. 이 헛헛함에는 이유가 있다. 텍사스대학교, 하버드대학교, 토론토대학교, 히브리대학교 소속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2026년 7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른바 ‘인공지능(AI) 공감의 역설’을 정리했다. 낯선 사람에게 위로의 글을 받아 든 이들에게 그 글을 누가 썼는지 밝히지 않고 평가하게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AI가 쓴 문장을 인간이 쓴 문장보다 더 공감적이라고 평가했다. 문장이 더 매끄럽고, 더 세심하며, 감정을 더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의사나 위기 상담 훈련을 받은 상담원과 견주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글이 AI가 쓴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 평가는 곧바로 뒤집혔다. 같은 문장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덜 공감적이라 느꼈다. 결정적으로, 실제로 누구의 위로를 받을지 고르게 했을 때는 더 뛰어나다고 스스로 평가했던 AI가 아니라 사람을 선택했다. 왜일까? 연구팀은 몇 가지 짐작되는 이유 가운데, 인간의 공감이 품이 드는 일이라는 점을 첫손에 꼽는다. 누군가의 아픔을 듣는 것은 내 마음의 일부를 내어 주는 일이다. 듣는 사람도 함께 무거워지고, 함께 잠 못 이루기도 한다. 인간의 위로는 그래서 한정되어 있다. 시간과 마음의 여력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아픔마저 밀어두어야 가능하다. AI는 이 무게를 지지 않는다. 슬픈 사연 뒤에 곧바로 다음 사용자의 즐거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AI는 아픔을 이해하고 적절한 언어로 옮길 수 있지만, 그 아픔을 자기 몸으로 나눠지지는 못한다. 공감이라는 말 그대로, 함께 느끼려면 느낄 몸과 시간과 대가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위로가 서툴러도 뭉클한 이유는 정확한 문장 때문이 아니라, 그 말 뒤에 뜬눈으로 지새운 밤과 무거워진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곁에 있는 이가 아파하면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고 몸이 움츠러든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도 함께 아파하는 이 반응이야말로 오랜 세월 사람과 사람을 묶어온 끈이었다. 병자를 찾아가 손을 잡고, 상을 당한 이 곁에 말없이 앉아 있는 일이 그래서 의미가 있다. 정확한 위로의 말이 없어도,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이기 때문이다. AI는 언제나 정확하고 지치지 않는 위로를 건넬 수 있다. 그러나 그 위로에는 대가가 없기에, 받는 이의 마음 깊은 곳까지는 가닿지 못한다. 진짜 위로는 나를 덜어 상대에게 건네는 데서 시작한다. 오늘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당신은 정확한 말을 고르고 있었는가, 아니면 함께 아파하고 있었는가. AI가 공감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아파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16면

[성미술 산책] 고흐 <오베르의 평원>

1889년 7월 27일 오베르 쉬르 우아즈 들판에서 권총으로 자해하고 이틀 후 세상과 등을 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덜란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역시 목회자의 꿈을 꾸었지만, 그 꿈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광적인 신앙심으로 곧 좌절됩니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화가의 길을 걷는데, 이는 ‘미를 통한 복음화’의 굳건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습니다. 일찍이 프랑스로 건너가 인상주의 등을 접하며 ‘빛’을 발견한 고흐는 1888년 남부 아를(Arles)에 머무르며 이상적인 예술인 공동체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고갱과 격렬한 언쟁 중 충동적으로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그 꿈은 좌절되고 맙니다. 결국 1890년 동생 테오가 살던 프랑스 파리와 가까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지내던 중 3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오베르의 평원>은 바로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인 6월에 그린 작품입니다. 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밀밭 배경의 그림을 세 점 그렸다고 고백하는데, 그중 불안과 죽음의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유명하지요. 놀랍게도 다른 두 작품에서는 평화로운 들판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이 작품입니다. 좌측에는 짚 더미 하나가 서 있고, 중앙에는 붉은 꽃이 만발했습니다. 수평선 너머 굽이굽이 이어지는 푸르른 들판. 중간중간 짙푸른 나무들이 생기를 더해 줍니다. 부디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들판이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눈에 담은 풍경이었기를 빕니다. 천상의 꽃 핀 정원, 꽃바다는 여기 고흐가 그려낸 모습과 비교할 수 없이 더욱 아름답겠지만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고흐가 어렴풋이 감지한 천상의 황홀함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입니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8일 아침,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부친 박 하상 바오로가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지상에서의 육신의 고통과 삶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꽃이 만발한 향기로운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는 빛의 세계로…. 사랑하는 부인과 세 딸의 모범적인 가장으로, 묵묵히 뒤에서 가정을 보살피는 성 요셉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신 나의 아버지. “부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향기로운 꽃밭에서 행복하길…. 하느님! 그들에게 천국 낙원의 문을 열어 주시고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로서. 그리고 지상계에 남아 있는 저희는 믿음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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