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 산책] 미켈란젤로 <피에타>

머리에 두건을 쓴 나이 지긋한 턱수염의 남성이 더 이상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남성을 조심스레 부축하고, 양옆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있습니다. 여기 ‘S자’로 힘없이 축 늘어진 남성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 우측에서 죽은 아들을 떠받는 성모 그리고 좌측에 자그마한 체구를 한 젊은 여성은 마리아 막달레나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맨 뒤에 두건을 쓴 남성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아리마테아 사람 요셉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니코데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그리고 유다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의 의원으로 학식 있는 종교 지도자지요. 그는 아리마테아 사람 요셉과 함께 그리스도 매장을 도운 자입니다. 서구 중세 시대부터 널리 다뤄진 ‘자비’, ‘연민’의 뜻을 가진 <피에타(pietà)>상,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1498~1499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청년 때 만든 작품으로, 성모가 무릎 위에 아들 예수를 안고 비통해하는 장면을 절제되면서도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걸작입니다. 한편 지금 소개하는 <피에타>는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뒤에 위치한 ‘두오모 미술관’ 소장품입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제작하고 무려 50여 년 후 미켈란젤로가 70대 초반에서 80세까지 7~8년간 혼신을 다해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모습이 이상합니다. 상반신이 하반신보다 훨씬 비대하고 양팔이 너무 길게 표현된 반면 하반신의 다리는 너무 앙상한 것입니다. 완벽한 기술적 표현력을 가진 미켈란젤로가 인체 비례를 무시한 과장된 표현을 한 것은 이제 명줄이 끊긴 상태의 예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요. 더군다나 성모의 모습이 너무 거칠어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은 미완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의 근원, 바탕임을 드러냅니다. 거칠고 모든 것을 품는 대지입니다. 그리고 여기 숨은 감동은 바로 니코데모에 있는데, 바로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깊은 신심의 소유자인 미켈란젤로는 손수 예수의 차디찬 시신을 묻어 드리고픈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신이 묻힐 성당의 제단 발치에 설치하기 위해 제작한 이 <피에타>는 그의 절절한 신앙고백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찬미하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증오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가 죽기 전에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14면

[성미술 산책]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오늘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 거장으로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만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또 다른 불후의 명작 <아담의 창조>를 살펴봅니다. 그런데 먼저, 최고의 조각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가 어떻게 성 베드로 대성당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 작업을 맡게 된 걸까요? 여기에는 놀라운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바티칸 궁전과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주도한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 1444~1514)가 율리오 2세 교황(Julius II, 재위 1503~1513)에게 시스티나 천장화 작업의 적임자로 미켈란젤로를 추천했는데, 이는 회화 작업이 익숙하지 않은 미켈란젤로를 골탕 먹이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부담스러운 제안을 수락한 미켈란젤로는 1508년부터 1512년까지 무려 4년간 전념해 최고의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길이 40m, 폭이 13m에 달하는 거대한 천장은 구약성경의 ‘천지창조’ 외에 예언자들과 무녀 등의 장면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웅장한 인류 드라마의 절정을 보여 줍니다. 천장 중앙에는 총 10편, 즉 <빛과 어둠을 가르다>, <태양과 달의 창조>, <물을 갈라 뭍이 드러나게 하다>,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인류의 타락>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노아의 제물>, <대홍수>, <노아의 만취> 등 천지창조 장면이 차례로 펼쳐집니다. 당시 육체에서 벗어나 정신으로의 초월을 이상으로 여긴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한 그의 신념이 적극 적용된 걸작으로,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담의 창조>입니다. 하느님은 팔을 뻗어 그의 형상대로 빚은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습니다.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분홍색의 커다란 망토 안에는 청년 모습의 천사들이 에워싸고, 근육질의 위엄 있는 모습의 하느님과 그가 빚은 아담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기품을 지닌 모습입니다. 특히 이 장면이 유명한 것은 하느님의 손가락 끝이 아담의 손끝에 닿기 직전의 찰나를 포착해 극대화된 긴장감에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극적인 순간을 이같이 절묘하게 포착해 내는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놀랍고 파란만장한 세계 창조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14면

[성미술 산책]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녀 안나와 성모자>

이 작품은 당시 60대 초반이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으로 물 흐르는 듯 생기 넘치고 절제된 움직임과 고상하고 우아한 색채 그리고 무한대로 펼쳐지는 원경의 자연 풍광 등 그의 원숙한 화풍이 고스란히 담긴 걸작입니다. 그는 르네상스의 과학적인 일점소실원근법을 넘어 ‘시각적 효능은 어느 한 지점으로 귀착되지 않고 눈의 동공 전체로 확산된다’는 광학적 연구에 근거한 ‘대기원근법(atmospheric perspective)’과 사물의 윤곽선을 ‘연기처럼(sfumato)’ 흐릿하고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화풍을 창안했는데, 이는 바로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롭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여기서는 성모자의 모친 성녀 안나도 함께 등장하는데 모녀간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들이 세상의 시간 개념을 초월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맨 뒤에는 가장 크게 표현된 안나가 있고 무릎 위에 마리아가 앉아 있는데, 우리 시선은 사랑 넘치는 눈으로 마리아를 내려다보는 성녀 안나,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시선과 그를 향해 뻗은 두 팔 그리고 천진하게 성모를 올려다보며 흰 양에게 팔을 뻗는 아기 예수에게로 이어집니다. 여기 아들이 맞닥뜨릴 고통의 운명을 막으려는 듯 희생의 상징인 양 위에 올라타려는 예수를 말리려는 성모의 간절함이 전해져 애처롭습니다. 또한 안나의 몸은 좌측으로 움직이는 반면 시선은 예수에게로 향하고, 마리아의 몸과 시선은 다시 우측의 예수에게로 그리고 예수와 양은 고개를 돌려 마리아를 바라보는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되었는데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은 인물들이 균형 잡힌 피라미드 구도로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동작과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복잡 미묘하고 신비로운 교감, 바로 ‘성스러운 대화(Sacra Conversazione)’가 오가는 순간입니다. 자연과 인체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 레오나르도. 그에게 땅은 인간의 ‘살’, 산맥은 ‘골격’ 그리고 강물은 ‘피’입니다. 여기 원경의 푸르스름 어렴풋한 자연풍광과 전경의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지는 것은 이 모두 대자연 속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의 자연 속 성가족은 동양의 장자(莊子)가 일컫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즉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우러져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이같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 이것이 대자연의 신비, 바로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4면

[성미술 산책]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모영보>

수평으로 긴 화면이 안정감을 주는 평화로운 그림입니다. 멀리 중앙에는 푸르스름 어렴풋이 보이는 뾰족한 산이 무한의 공간을 열어 주고, 전경에는 작은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정교하게 짠 페르시안 카펫과 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우측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저택이 있는데, 열린 문틈으로 붉은 침대보가 씌워진 친밀한 공간이 들여다보입니다. 지붕 있는 복도 로지아(loggia)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탁자가 있고, 마리아는 성경 위에 살포시 손가락을 짚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여 집중하고 있는 순간, 천상에서 가브리엘 대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붉은 드레스에 흰 상의 그리고 카키색 망토를 휘날리는 고상하고 어여쁜 천사는 날개를 채 접지도 않고, 손에는 성모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 한 송이를 든 모습입니다. 마리아의 살짝 들어 올린 왼손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방문과 전해 주는 소식에 놀라워하는 심적 동요가 전해집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정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화면 중경에 낮은 벽이 있고 그 뒤로 각양각색의 모양을 한 검은 실루엣의 나무들이 마치 앞의 마리아를 보호하는 병풍같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는 중세 시대부터 널리 알려진 성모의 ‘무염시태’ 신비를 의미하는 ‘닫힌 정원(hortus conclusus)’ 비유로 “닫힌 정원은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아가 4,12 참조)에서 유래되었고, 주로 장미 정원에 있는 성모자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아직 20세인 레오나르도의 초기작이어서 머리 주위의 후광을 표현했는데, 점차 과학적인 시선이 지배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후광은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성모영보’의 신비로운 순간, 천사와 마리아 간 주고받은 깊은 영적 대화의 순간을 청년 화가가 이리도 감동적으로 포착하다니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를 대표하는 3대 거장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중에서도 미술, 과학, 식물학, 건축, 해부학 등의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든 진정한 천재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섬세하고 고전적인 매력이 두드러지는 걸작입니다. 크나큰 영광이지만 한 여인의 몸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십자가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리아. 이제 구약의 아담과 이브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신약의 아담과 이브, 구원의 희망을 알립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이여, 부족한 제 마음에도 임하소서.”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14면

[성미술 산책] 렘브란트 <아브라함의 희생>

‘빛과 암흑의 마술사’라 불리는 17세기 바로크의 거장 렘브란트 반 레인은 <돌아온 탕아>, <야간 순찰> 등의 걸작을 남겼습니다. 평생 650여 점에 달하는 유화 작품과 더불어 흑백의 극적 대비와 섬세한 표현이 매력적인 동판화, 즉 ‘에칭’을 많이 제작했지요. 다룬 주제 또한 자화상, 사랑하는 부인 사스키아, 초상화, 풍경화 등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성경 주제의 작품이 많습니다. 그의 부친은 신교인 칼뱅주의자였던 반면,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는데, 특히 모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브라함의 희생> 역시 동판화 작품으로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의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고령인 그에게 귀한 아들 이사악을 허락하셨고, 그를 제물로 바치라는 가혹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놀랍게도 하느님의 뜻에 무조건 복종한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데리고 산에 올랐습니다. 땔감이 널브러져 있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힌 이사악이 운명의 순간을 기다리는 긴장감 넘치는 순간입니다. 일반적으로 본 에피소드의 초점은 아브라함의 굳은 신앙과 희생에만 맞춰지는데, 저는 이사악 역시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사악은 자신에게 닥칠 일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순히 따른 것이 아닐까요. 차마 이 잔인한 광경을 지켜보게 둘 수는 없었던 아브라함이 그의 큰 손으로 사랑하는 아들의 두 눈을 가리고 단도로 내리치려는 바로 그 순간, 우측의 하늘에서 급히 날아든 천사가 아브라함의 손목을 잡아 저지합니다. 이사악의 죽음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화면 좌측의 어둠은 우리가 사는 무질서한 세상이자 어두운 마음, 우측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줄기는 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생명, 희망 그리고 영생을 의미합니다. “내 영혼을 풍요롭게 하려면 명예가 아닌 자유를 찾아야 한다”고 외친 렘브란트. 한때 최고의 부와 명예, 사랑 등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차지했지만, 그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고객의 취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과 신념에 따라 진실된 이미지를 찾는 외롭고 좁은 길을 걸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소신대로 올곧게 사는 것, 그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암흑에 묻힌 생명의 빛을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 바로 ‘자기 비움’이 진정한 자유로의 길입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14면

[성미술 산책]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야>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암흑 속 은근한 빛을 발하며 다가오는 회화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놀라운 마력을 발산하는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은 르네상스를 지나고 풍요의 극치에 이른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거장입니다. 이같이 어두운 배경에 묻힌 인물에 강렬한 빛이 비치며 빛과 암흑의 극적 대비로 감정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일컬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법)’라고 합니다. 네덜란드 섬유업 도시 레이던(Leiden) 태생인 그는 제분업을 하는 부모 슬하에 태어나 비교적 안락한 유년기를 보냈고, 라틴어와 화란어, 고전 언어 그리고 성경을 접하며 탄탄한 인문학, 정신적 기초를 다졌습니다. 24세에는 대도시 암스테르담에 정착해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영원한 뮤즈 사스키아(Saskia)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도 누렸으나,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말년에는 전 재산을 잃고 빈민가에서 홀로 눈을 감아야 한 렘브란트, 그의 삶은 어둠과 빛의 대비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청년기 작인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야>에서는 고뇌하는 예언자의 섬세하고 복잡미묘한 심리묘사가 돋보입니다. 중앙에 백발의 긴 턱수염의 노인은 예언자 예레미야입니다. 두꺼운 성경 위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 팔을 괴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가 고독하게 짊어져야 할 인생의 버거움이 느껴집니다.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한 예레미야는 기원전 58년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파괴될 예루살렘의 운명을 내다보며 비탄하는데, 이 환영은 후경의 아치형 동굴 너머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모습으로 펼쳐집니다. 동방의 짙은 자줏빛 가운 차림의 예언자 주위에는 성경, 금전과 제례 용기들이 가득한 황금 수반, 양탄자 등 화려한 장신구들이 가득합니다. 신성모독, 교만과 방탕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칠 비운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예언자의 안타까움…. 깨어있는 자의 비탄과 깊은 절망이 은근하면서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신비롭게도 마치 노인의 몸에 밝은 등잔불을 품고 있어서 그 불빛이 은근히 외부로 발산하는 듯 느껴집니다. 칠흑과 같은 암흑을 겪은 자만이 그 깊이의 어둠을, 경이롭고 진정한 사랑을 만난 자만이 황홀한 빛을 담을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가 드라마틱한 삶, 극적인 어둠과 빛을 선물 받은 이유입니다. 때로는 암흑으로만 느껴지는 세상, 하지만 내 안에 등불을 품으면 그 빛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3-29 제3484호 14면

[성미술 산책] 폴 고갱 <녹색 그리스도>

“나는 브르타뉴 지방을 사랑한다. 화강암 바닥에 발을 딛으면 내가 회화에서 추구하는 침묵하며 존재하는 강렬한 야생, 원시주의를 발견하게 된다.”(고갱) <녹색 그리스도>는 고갱이 타히티로 떠나기 전인 1888년에서 1889년경,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Pont-Aven) 체류 당시 그린 것입니다. 특유의 거친 자연과 독특한 문화가 발달한 브르타뉴의 모습에 순수, 야생을 찾는 고갱은 매료될 수밖에 없었지요. 당대 미술계에서 많은 존경을 받았던 고갱, 그가 머물던 시골마을 ‘퐁타방’에 미술인들이 많이 찾아와 일명 ‘퐁타방파’가 만들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자연을 기반으로 한 단순하고 견고한 형태, 환상적이고 밀도감 높은 색채와 강렬한 윤곽선의 표현이 특징인 그의 화풍을 일컬어 ‘종합주의(Synthétisme)’라 하지요. 1888년 10~12월 빈센트 반고흐의 초대로 프랑스 남부 아를에 두 달간 함께 머문 적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반고흐가 스스로 귀를 자르는 끔찍한 사건으로 이 짧은 동거에 종지부를 찍게 된 일화도 유명합니다. 멀리 짙푸른 빛의 바다가 있고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 난 굽은 길을 따라오면 전경 우측으로 청록색 인물들이 있는데, 매우 경직되어 보이는 것은 바로 조각상이기 때문입니다. 퐁타방에서 2km 거리에 니종(Nizon)이라는 작은 마을의 성당과 성당 묘지에는 약 1550년경 세워진 높이가 무려 7m에 이르는 짙은 화강석 조각, <니종의 십자군상(Calvary of Nizon)>이 있습니다. 이는 흑사병의 죽음으로부터 마을 주민들을 보호해 달라고 빌기 위한 것이었지요. 여기 고갱이 화폭에 담은 것은 십자가의 하단부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 위에 눕히고 고통스러워하는 성모,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마리아 살로메의 모습입니다. 이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사실적이고 섬세한 <피에타(Pieta)>와 대조적인 단순하고 경직된 모습인데, 어쩌면 깊은 절망과 슬픔을 표현하는데 이 같은 거친 단순함이 더 강렬하게 전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는 붉은 두건을 제외하고 어두운 푸른 톤이어서 조각의 일부로 보이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브르타뉴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입니다. 뒤의 조각과 구분이 안 되는 표현은 정신적으로 피에타의 고통과 일치되어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 주는 것으로 그 표현이 절묘합니다. 16세기 흑사병의 죽음의 공포, 19세기 말 어느 브르타뉴 여인의 간절한 기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노래합니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걸어가는 한,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과 마주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14면

[성미술 산책] 폴 고갱 <설교 후의 환영>

지상 낙원을 찾아 타히티로 떠난 폴 고갱(1848~1903). 그의 격정적인 삶은 영국 작가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의 소설 「달과 6펜스」에 영감을 주며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페루 혼혈계로 페루 태생인 그의 특별한 성장 배경은 서유럽의 이성적이고 절제된 고전미에 남미의 열정이 더해지며 독창적이고 이국적인 화풍을 구축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문명’의 두텁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훌훌 벗고 ‘순수’를 추구한 그는 거친 자연과 특유의 원시적인 지방색을 가진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에 매료되었고 결국은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떠났습니다. <설교 후의 환영>은 브르타뉴 체류 시절 작품으로 강렬한 붉은색 화면과 거친 대각선으로 화면 중앙을 가르는 굵은 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전경에는 브르타뉴 전통의상을 입은 뒷모습의 여인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데, 전혀 미화되지 않은 여인들과 머리에 쓴 흰 두건은 강철로 된 듯 견고해 보입니다. 이제 예로부터 ‘미의 대상’이었던 여인이 아니라 면, 색, 선 등 조형적 요소들 간의 시각적 조화를 추구하는 현대 회화의 새로운 지평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이들 앞에는 금빛 날개를 단 천사와 필사적으로 씨름하는 야곱 그리고 멀리 좌측 반대편에는 복음사가 성 루카를 연상시키는 황소 한 마리가 야생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고갱은 성미술에 심취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성경 소재의 그림을 그린 걸까요? 물론 이는 깊은 신심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리스도교 정신이 2천여 년의 긴 시간 서구문화 속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에게 ‘야곱과 천사의 씨름’ 장면이 용감하게 하느님과 대면하여 성숙한 영혼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라면, 예술가와 일반인들에게는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처절한 몸부림을 해야만 신에 이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고갱의 창조적 투쟁은 에밀 졸라(Emile Zola)가 소설 「작품」의 주인공인 화가 랑티에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 대로 ‘살아있는 살덩어리를 만들어내고자 현실과의 영원한 결투’를 한 것입니다. 수도자와 같이 고독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려는 굳은 신념으로 고집스럽게 나아간 고갱. 그의 삶은 태곳적의 거룩한 어떤 곳, 만물의 바탕, 영원한 낙원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는 주어진 현실을 용감하게 헤쳐나가라고 말합니다. 부족하기만 한 나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를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설교의 핵심입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14면

[성미술 산책] 조르주 루오 <꽃다발,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알프스 자락에 아시 평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 결핵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고지대의 신선한 공기가 폐에 좋다고 하여 결핵 요양원들이 들어섰고, 환자와 신자들을 위한 안식과 위로의 공간인 ‘아시성당’이 지어졌습니다. 이 작은 산골 성당이 최초로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로만 꾸며진 현대 성당의 이정표와 같은 곳이 되리라 누가 상상했을까요? 이는 또한 전 시대의 유산을 답습하는 데 그쳤던 정체된 교회의 높은 벽이 허물어진 상징적인 순간을 의미합니다. 동시대 ‘최고의 예술’이 성당에 들어와야 진정 살아 숨 쉬고 영감을 주는 ‘영성의 공간’이 된다는 신선하고 의식 있는 발언은 도미니코회의 레가메(P. Régamey) 신부, 마리-알랭 쿠튜리에(Marie-Alain Couturier) 신부 등 소수의 성직자에 의해 일깨워졌습니다. 특히 프랑스 현대 성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쿠튜리에 신부는 아시에 현대 작가들을 섭외한 장본인으로 다음은 그의 목소리입니다. “모든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은 자다. 예술가는 그의 속성과 기질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영적인 직감에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의 부름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기 ‘아시 프로젝트’에 1순위로 초대받은 이는 바로 20세기 종교미술의 거장,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입니다. 성당 출입문 벽면 다섯 개의 작은 스테인드글라스 아치창 중 세 번째인 <꽃다발,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는 이사야서 53장 7절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를 묵상한 결과물입니다. 창 하단에는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et il n'a pas ouvert la bouche)'고 직접 써놓아 그의 필체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랏빛 탁자 위에 푸른 화병이 있고 만개한 꽃다발이 꽂혀 있습니다. 꽃의 화려한 향기에 매료되어 계속 바라보노라면 우리 시선은 자연스럽게 푸른 화병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얼굴에 이르게 됩니다. 골고타 언덕을 오르던 중, 피땀 흘리는 얼굴이 닦인 ‘베로니카의 수건’ 그리고 에데사 왕을 치유한 ‘만딜리온’을 연상시키는 성안(聖顔). 이 눈부신 꽃다발은 인류 구원을 위해 수난당하고 희생한 그리스도에 대한 헌정이자 그의 상처받고 지친 마음과 육신에 바치는 위로이자 찬미입니다. “하느님, 예술로써 찬미 받으소서, 저희 마음에 함께 하시듯 저희 창작에도 함께하소서, 아멘.”(국제 크리스천 예술가 협회 기도문 중)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4면

[성미술 산책] 조르주 루오 <수난당하는 그리스도>

20세기 초, 새로운 표현에 목마른 프랑스 화단에서는 다양한 표현의 바람이 일었는데, 그중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에서 답을 찾은 ‘야수파(fauvism, 1905-1908)’의 그림을 만납니다. 그 주요 인물들은 파리 미술대학 명문인 에꼴데보자르 동기로 미술계에 함께 등단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와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입니다. 보편적인 주제와 세련된 단순미를 추구한 마티스는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반면, 내향적인 성향에 깊은 신심의 소유자였던 루오는 점차 20세기 종교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하며 각자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 급급한 당시의 시류를 거스르며 하느님 안에서 고독한 순례자의 길을 걷기를 선택한 루오. 거친 마티에르(matière, 질감)의 검은 윤곽선 안에 갇힌 형태는 중세 고딕성당을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굵고 검은 납선과 색유리의 조합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10대 시절,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익힌 것입니다. 이같이 루오가 미술계에 입문한 것은 색유리의 신비로운 빛과의 첫 만남을 통해서였고, 이는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지배한 ‘빛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수난당하는 그리스도>에서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채찍질에 온갖 수모를 당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비애와 고독이 강렬하게 드러납니다. 양편에는 그를 ‘유대인의 왕’이라 조롱하며 위협하는 두 인물이 있는데, 이들의 울퉁불퉁 일그러진 추한 모습은 타락한 인간성을 투영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어깨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기진맥진, 체념한 듯한 예수는 두 눈을 꼭 감고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기꺼이 감내하는 듯 보입니다. 길쭉한 얼굴과 곧은 코에서는 깊은 우울과 슬픔이 그리고 그의 올곧은 성품을 드러내고, 몸의 거친 마티에르의 표현은 마치 채찍질로 난 상처인 듯 절묘합니다. 여기 죄 없는 예수가 감내한 희생이 우리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니 그저 송구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루오의 거칠고 강렬한 표현을 일컬어 ‘거룩한 반항’이라 하는데, 이는 하느님에 대한 반발, 반항이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을 외면하고 저버리는 인간의 ‘위선’과 ‘어리석음’에 대한 반항이지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거친 화면에서 ‘폭력’, ‘증오’의 한기가 아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루오의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 바로 ‘사랑’의 시선 때문입니다.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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