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복음] 환경한마당

인류와 현재의 생태계가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약 1만 년 전부터 지구 평균기온이 14℃ 안팎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지구 역사에서 기온의 상승과 하강은 반복됐지만, 현재 나타나는 평균기온 상승은 인류의 활동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2.6∼4.8℃ 상승할 수 있다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경고합니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총회에서 194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됐습니다. 파리기후협정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제한하고, 가능하면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모든 국가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하고, 5년마다 이를 갱신해 더욱 강화하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2023년 IPCC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제한하려면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45% 감축하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되기 7개월 전인 2015년 5월 24일 성령 강림 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셨습니다.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하여(On Care for Our Common Home)’라는 부제를 단 이 회칙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보전, 환경오염, 불평등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며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과 이를 위한 생태적 회개를 강조한 최초의 사회교리 회칙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에 따라 개인과 공동체, 사회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지내는 9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의 ‘창조시기’를 맞아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는 9월 첫째 토요일에 ‘환경한마당’을 열고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원미사’를 봉헌합니다. ‘환경한마당’은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 신자 모두가 참여하는 잔치입니다. 참가자들은 놀이 중심으로 구성된 환경 체험 부스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 55,1) 이사야 예언자는 고난받는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이같이 표현했습니다. ‘환경한마당’에 참가하는 이들에게도 먹을거리와 마실거리가 값없이 제공됩니다. 횟수와 양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다만 먹을거리를 담을 다회용기와 수저 등 식사 도구를 준비해야 합니다. 물과 음료를 담을 컵도 반드시 지참해야 합니다. 올해는 9월 5일 아름다운 마당을 갖춘 제1대리구 평택 서정동성당에서 열립니다. 가족과 손잡고, 본당 주일학교 친구들과 함께 오셔서 공동의 집인 지구를 위한 잔치에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글 _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청소년은 교회의 현재

예전 한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평일 미사에 나온 아이들은 미사 후 부모님이 여러 단체 모임에 들어가고 나면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성당의 작은 마당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친구랑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사제관에 데려와 간식도 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본당 내에 교회의 미래라고 부르는 청소년들을 위한 장소가 없다는 사실이 애석했습니다. 그 청소년들이 교회의 미래가 아닌 현재라고 느낀다면 더더욱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교리실 한 개를 아이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어주기로 다짐하고, 아이들이 잠시나마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물품들을 마련하여 쉼터를 정성껏 꾸몄습니다. 안타깝게도 쉼터를 완성할 무렵,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이들이 그 쉼터를 이용하는 모습을 정작 보지 못하고 다른 본당으로 떠났지만, 그 후에도 성당에는 청소년들이 머물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속 마음에 새겨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청소년들을 너무 자주 ‘준비 중인 신자’로 바라보곤 합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직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더 배워야 하기 때문에 언젠가 교회의 주역이 될 사람들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례받은 순간부터 그들도 이미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의 존엄과 소명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당신 곁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막아섰을 때도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마태 19,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미래의 제자로만 바라보지 않으시고, 현재 당신과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청소년사목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어른을 만났을 때, 본당의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았을 때, 그리고 자신도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을 때입니다. 제가 만난 많은 청소년은 생각보다 깊은 신앙의 고민을 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생각보다 큰 열정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게 해 주기도 했고,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청소년들은 교회의 미래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늘의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봉사하고, 고민하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교회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청소년들에게 “언젠가 네가 교회의 주인공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너는 이미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구성원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청소년들은 비로소 교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순간, 우리는 청소년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을 통해 교회가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강아지에게 배운 놀라운 것

제게는 13년 동안 함께한 친구가 있습니다. 13년 전, 저는 진돗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친구가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개에 대해, 특히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 강아지는 진실함, 충성심, 이타적인 사랑,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제 제 강아지는 늙고 병들어 언젠가 세상을 떠날 날이 올 것입니다.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슬픔을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강아지가 제게 준 모든 것, 그리고 가르쳐준 모든 것에 대해 무척이나 감사함을 느낍니다. 한 번은 한국을 잠시 떠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강아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사다 놓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잠자리를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사는 오블라띠 형제들에게도 강아지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약 한 달 만에 돌아왔을 때, 형제 중 한 명이 제게 말했습니다. “루나(제 강아지 이름)는 당신이 떠난 후로 하루도 개집에서 자지 않았어요. 나무 아래에서 당신을 기다리며 문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 순간, 제가 준비했던 모든 것은 진정으로 강아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강아지에게 필요한 것은 곁을 줄 수 있는, 저라는 존재였습니다. 이 경험은 또한 제 삶과 사목 활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주민들을 섬겨왔습니다. 그들은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고, 일자리를 찾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임이나 휴식을 위한 장소도 필요합니다. 병원에 갈 때도 한국어를 이해하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이주민 사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도와주고 베풀어준다고 할지라도, 사랑과 관심으로 곁에 있어 주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라는 것을, 제 강아지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힘과 안정감을 주는 동반자,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지켜주는 충실한 친구, 따듯하게 맞아주고 언제든 달려와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웃과 같은 사람입니다. 마치 서두르지 않고 저를 기다려 준 제 작은 강아지 루나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함께 있어주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너희는 부자가 될 것이다, 너희는 병들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마지막 말씀대로, 매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글 _ 이청우 마우리찌오 신부(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광주 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 담당)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청년 도보 성지 순례

군에서 제대하고 신학교에 복학한 첫해 여름방학이었습니다. 본당에 돌아와 주임신부님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당시 국토대장정이 유행처럼 열리던 때였는데, 교구에서도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본당 신학생들은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본당 주임신부님은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초대 위원장이셨습니다. 남과 북의 분위기가 좋아지던 시기였던 만큼, 언젠가 북녘땅이 열리면 도로나 철도가 놓이기를 기다리지 말고 걸어서라도 평양에 들어가자는 뜻을 담아 순례가 기획됐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거리인 약 200km를 교구 성지를 따라 걷는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첫 행사였던 데다 준비 과정에서 여러 오차가 생기면서, 결국 우리는 270km를 걷게 됐습니다. 순례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비를 흠뻑 맞기도 했고, 무더위에 지쳐 발걸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남양성모성지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기쁨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청년 도보 성지순례는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001년 7월 1기를 시작으로, 올해는 23기 청년들이 다시 순례길에 오릅니다. 올해 순례는 7월 4일부터 11일까지 교구 성지들을 걸으며 진행됩니다. 오랜 시간 이 순례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신부님들과 봉사자들, 그리고 순례단을 맞아 준 성당과 성지의 환대와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그 모든 손길 덕분에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순례가 이어져 온 것에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게 된 사실들이 있습니다. 처음 도보 성지 순례에 참여했다가 이 행사가 너무 좋아 10년 넘게 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분들은 나이가 들어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도 봉사를 위해 자신의 모든 휴가를 도보 성지 순례에 쏟아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토요일마다 모여 회의하고 답사도 다니면서 순례를 준비합니다. 또한, 무더위에 계속 걸어야 하기에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하면서 도보 성지 순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까요? 신자들에게 이렇게 봉사하라고 하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더구나 걸으면서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물론 평화통일 기원 도보 성지 순례이지만 지향은 거기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지향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지금의 분단 현실을 기억한다면 그것마저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올해도 약 200km를 걸을 것입니다. 9월에는 단기 순례도 있습니다. 이 행사를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의 바람이 하루빨리 이루어져 북에서도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가 울리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밤 9시에 이루어지는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기도를 통해 이 청년들의 발걸음에 힘을 보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6-28 제3497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생태 시민 의식 형성과 생태환경교육

더욱 뜨거워진 여름은 우리에게 과거와 다른 현실을 인식하라고 요청합니다. 기후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워 주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르침을 되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인류가 살아온 생활 방식에서 비롯된 결과임을 알게 됩니다. 무한한 소비를 부추기고 이를 좇는 태도 역시 기후위기의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생활 양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플라스틱 기반의 일회용품 등 특정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은 기업의 생산과 판매 방식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의 변화도 이끌 수 있습니다. 나아가 국가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는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생태 시민 의식’의 형성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생태 시민 의식’은 모든 연령대의 시민 사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통해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생태환경 교육은 정보 제공에 그쳐, 실질적인 개인의 생활 양식 변화와 기업·정책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행동이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고결한 일임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본당과 교구의 여러 단위에서 더욱 적극적인 생태환경 교육이 필요합니다. 특히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주일학교 교육 과정 안에 생태환경 교육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생태환경위원회는 2026년 3월부터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양성한 ‘환경교육사’를 비롯해 ‘숲해설사’, ‘청소년지도사’ 등의 자격을 갖춘 생태환경 전문 강사들로 가칭 ‘생태환경교육강사팀’을 구성했습니다. 강사진은 오랜 시간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공간에서 여러 연령대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 온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태환경교육강사팀은 6월부터 효명고등학교 1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4주간 8교시 일정이 끝나면, 효명고등학교와 재학생들의 현실에 맞는 프로그램을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향후 교구 내 모든 교육 기관에서 생태환경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생태 시민 의식’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장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생태환경위원회는 교구 관할 구역 안팎의 좋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수원시 기후변화체험관 두드림’과의 협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수원시 기후변화체험관 두드림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문 강사진의 안내와 지도 아래 주일학교 학생과 신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여름방학 기간 중 본당 주일학교 일정을 반영한 맞춤 프로그램 제공도 가능하니, 많은 본당에서 관심을 두고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가을 생태환경교육강사팀은 초중고 주일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생태환경 교육 강좌’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동시에 본당 주일학교를 찾아가는 생태환경 교육도 진행합니다. 교구 내 많은 본당이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생태환경 교육의 전문적 소양을 갖춘 많은 이의 동참을 청합니다. 글 _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6-21 제3496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하느님을 닮은 삶

신학생 때의 일입니다. 개학을 며칠 앞둔 어느 수요일, 오전 미사를 마친 뒤 약속이 있어 서둘러 버스를 타러 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다소 빠듯했던 터라 발걸음이 급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 버스를 타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 것 같았고, 놓치면 늦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는데, 급한 마음과 달리 보행자 신호등은 빨간불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며 무단횡단을 했습니다. 분명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버스 정류장에는 조금 전 성당에서 복사를 섰던 초등학생 친구가 서 있었습니다. 그때 제 얼굴은 빨간 보행자 신호보다 더 붉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학사님이 그래도 돼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당시 저는 학부 3학년을 맞아 수단을 입고 본격적으로 하느님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스스로 꽤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시기였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배우고,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행동은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그 아이보다도 미성숙했습니다. 그 경험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신앙과 사목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배우는 이유는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닮아가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삶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사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학을 공부하고, 청소년과 관련된 소임을 맡으며 사목을 한다는 것은 문자로 배운 하느님을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닮아가며 삶으로 신앙을 증거하고,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청소년들에게 보여 주는 일입니다. 청소년들은 우리가 전하는 말보다 살아가는 모습을 먼저 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보다, 얼마나 하느님을 닮아 살아가고 있는지를 통해 신앙을 배웁니다. 결국 청소년 사목은 무엇을 더 많이 가르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어떤 신앙인이 되어 그들 앞에 서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모습 안에서 청소년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닮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키워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일 것입니다.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말보다 먼저 사랑으로 다가가고, 삶으로 드러나며, 끝까지 기다려 주는 마음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이 그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고 닮아갈 수 있도록, 우리 역시 먼저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통해 하느님을 발견하고,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본당의 모든 공동체가 삶으로 하느님을 드러내 주기를 바랍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학생이었을 때 매일 대학에 가는 길에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나갔습니다. 서두를 때도 잠시 멈춰서 대성당 정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 아름다움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티칸 성벽 안으로 들어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뒷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놀랐고 조금 실망했습니다. 대성당 뒤편은 특별한 것이 없었고 아름다운 성 베드로 대성당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는 항상 아름다운 외관이 있습니다. 교회와 공동체, 모든 사람의 삶에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삶과 활동의 외관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하면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뒷모습처럼 교회의 뒷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외관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목숨을 바치신 교회는 바로 이런 교회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교회가 내 교회이고 내 생명을 바치고 싶은 교회이기 때문에 나도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 덕분에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주민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도 아름다운 활동,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 공동체 건설을 위한 노력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경험도 많이 했고, 이기심도 많이 보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을까? 실망스러운 부분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목숨을 바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나 역시 예수님처럼 공동체를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 삶을 반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아마도 큰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실패와 죄, 불신과 이기심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희망을 주시려고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름답지 않은 것을 비난하기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문화, 즉 ‘우리 삶의 외관’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소셜미디어로 자신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보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보시고 잘 아시는 것을 보살피어 사랑과 용서를 통해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워지고 “회개가 필요한 우리의 숨겨진 부분”을 돌보아야 합니다. 인생에는 항상 동전과 같이 양면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하느님의 아름답고 놀라운 얼굴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보기에 아름답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랑하면 모든 삶이 아름답게 됩니다. 글 _ 이청우 마우리찌오 신부(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광주 엠마우스 이주민 공동체 담당)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호국보훈의 달

사제품을 받고 2년 차가 되면 동기 신부들이 모두 교구청에 모입니다. 군종신부로 갈 사제를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비뽑기하는 반도 있고, 어느 반은 자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그때 들어가는 인원은 다르지만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반드시 가야 하기에, 그 시기에 서품받은 신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논하는 것입니다. 사실 군종신부들은 대부분 두 차례 군 복무를 하는 셈입니다. 거의 모든 한국의 신학생들이 이미 신학교 재학 중 병사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칩니다. 원래 한국은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였습니다. 하지만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인의 숫자가 부족하였고, 결국 전쟁 중이던 1951년 국회는 강제 징병제를 시행합니다. 이후 전쟁은 멈췄지만 완전한 ‘종전’이 아닌 ‘정전협정’이었기에 한국은 당시 압도적인 북한의 병력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당시 월급을 주면서 군인을 고용하기에는 국고가 부족했기에 강제 징병제를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는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병역을 면제해 주거나 혜택을 주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주교단은 먼저 “우리 신학생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똑같이 지겠다”고 내부적으로 결의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사회적 솔선수범을 위해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전쟁 직후 온 나라가 고통받고 청년들이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던 시절,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특혜를 받아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큰 실망을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 천주교의 아픈 역사에 있습니다. ‘조상제사를 거부하고 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청난 박해를 받았기에, 한국교회는 누구보다 이 나라를 사랑하고 법을 잘 지키는 종교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법」 제289조에 성직자 신분에 맞지 않는 임무나 국가 공직에 대해 법률상 면제권이 인정될 경우, 면제권을 사용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예외 규정으로 소속 직권자(교구장 주교)가 달리 결정한 개별적 경우는 그러지 아니한다고 명시합니다. 이에 한국교회의 모든 신학생은 일단 학생 시절 군에 입대하고, 군종신부로 선정될 경우 다시 입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70년간 신학생들은 당당히 군복무를 마쳤고, 그중 일부 신부님들은 재입대를 통해 군종신부로 복무하고 있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기억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목숨을 바치지는 않았어도 지금까지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군인들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쟁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분명 묵묵히 군복무를 이어온 청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이 땅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밤 9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기도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생명 중심의 탈핵 세상을 향해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지방의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강진으로 인한 거대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지역을 덮쳤습니다. 엄청난 인명 피해와 함께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의 1·2·3호기가 노심용융(melt-down) 되었고 1·3·4호기는 수소폭발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당시에 녹아내렸던 핵연료봉과 방사성 물질을 외부로 빼내어 안전한 장소에 봉인하여야 함에도, 15년이 지난 아직도 엄청난 열과 독성 때문에 제대로 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2023년 8월 24일부터 방사능에 오염된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고 있습니다.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서 방류한다고 주장하지만, 삼중수소는 걸러지지 않고 방류되는 실정입니다. 우리 정부도 기준치 이하여서 아직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지만, 지속적으로 방류되는 오염수로 인해 바다 생태계가 받을 영향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2013년 이후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와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탈핵분과가 ‘한일탈핵순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핵발전소 관련 지역을 방문하여 지역 주민과 활동가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확인하고 탈핵의 염원을 이어왔습니다. 올해 한일탈핵순례는 ‘핵과 평화’라는 주제로 한국에서 개최됩니다.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3박4일 동안 40여 명의 한일 탈핵운동가들이 경남 합천과 울주, 울산, 경주를 방문하여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현황과 문제를 현지 주민과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합니다. 올해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으로 인해 피폭된 피해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합천에 방문합니다. 1945년 일본 내무성 경보국 자료에 의하면 당시 한국인 피폭자는 10만여 명, 사망자는 5만여 명으로 추정되며, 이중 4만3000명이 귀국하고 7000명이 일본에 잔류하였습니다. 방사능 피폭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우리 정부와 사회로부터 무시당했던 이들은 2016년 제정된 ‘한국인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2·3세 환우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합천과 전국의 피폭 희생자들과의 만남은 핵무기의 위험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한일탈핵순례 기간 중 일본 나라대학의 다카하시 히로코 교수의 ‘인권의 관점에서 본 핵무기 문제: 핵무기 금지 조약과 일본 피폭자 단체연합의 노벨상 수상이 지닌 세계사적 의미’ 강연과 일본 나고야 교구장 마츠우라 고로 주교님의 ‘핵과 평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탈핵시국비상회의 이헌석 공동대표의 ‘전 세계 핵발전소 동향과 한국의 핵 진흥 정책’ 강연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핵 진흥 정책을 펴고 있는 요즘, 80년이 넘는 기간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많은 이의 무관심 속에서도 탈핵 활동가들은 핵 없는 안전한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 _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교회의 소중한 보물

예전 보좌신부로 있던 한 본당에서는 유독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세대 간의 결합이 잘 이루어져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마치 친손주를 대하듯 이름을 불러 주시며 간식을 챙겨 주셨습니다. 아이들 또한 어르신들의 손길을 낯설어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 머물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청년들 사이의 관계도 매우 좋았습니다. 청년들이 주관한 행사에 아이들은 마치 자신의 행사인 것처럼 기쁘게 참여했고, 청년들은 그런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챙기며 서로 간의 돈독한 유대를 쌓아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의 행사에도 아이들이 함께했고, 아이들의 행사에도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함께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청년들을 보며 활기찬 신앙생활의 모습을 꿈꾸었고, 어르신들을 통해서는 삶으로 전해지는 신앙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본당 공동체 전체가 ‘하느님의 한 가족’(에페 2,19)임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표지라고 느껴졌습니다. 청소년 신앙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본당 공동체의 관심과 보살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나이지리아 속담처럼, 한 아이의 성장은 개인이나 가정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공동체의 배려와 협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청소년 신앙 활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환경과 체계적인 교리교육, 헌신적인 교리교사 모두 중요하지만, 그 바탕에는 공동체 전체의 관심이 자리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청소년들에게만 본당의 모든 관심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본당에 속하는 다양한 구성원과 단체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균형과 공감입니다. 지금까지 본당을 지탱해 오신 어르신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면서도, 이제는 교회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기꺼이 나누어야 한다는 데 공동체가 함께 뜻을 모아야 합니다. 동시에 아이들이 단지 ‘미래’가 아니라, 이미 교회의 ‘현재’임을 깨닫고 더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품어야 합니다. 얼마 전, 교회 내 청소년과 성소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출산 시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만은 아니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 본당에 머물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단순히 사회적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 그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본당 전체가 함께 나서야 할 때입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그들이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삶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먼저 살아온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한 가족 안에서 사랑과 안정감을 경험하며 자란 아이들은, 분명 교회의 소중한 보물이 될 것입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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