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빚은 신앙] 50여 년 전…카메라를 샀다

나는 교구 사진가회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개신교를 믿던 평범한 주부였던 내가 가톨릭 사진가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을 이끌어 오신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조금은 현실적이지 않은 엉뚱함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하느님께서는 이미 나의 일생을 계획해 놓고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50여 년 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카메라를 구입했다. 아이 유치원 엄마 중 동네 약국을 경영하던 약사님의 권유로 카메라가 있는 몇몇 엄마들이 모여 사진반을 만들었다. 그때 우리는 30대 초반이었으니,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유치원 차 타는 곳에서 우리는 얼마 동안 얼굴을 익혔고, 그 후에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숙해졌다. 어느 날 약사님과 집으로 오던 중 백일장에 나가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참석한 백일장에서 나는 입선을 하게 되었고, 약사님은 무척 좋아하시며 전업주부인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취미를 가져 보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30대의 젊은 엄마였던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목마름에 약간은 몸이 근질거리지 않았나 싶다. 사진반, 문예반, 중창반, 탈춤반이 그래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각자 맡은 반에서 열심히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반은 그 지역에서 사진을 하시던 선생님을 모시고 저녁에 공부도 하고, 분기별로 출사도 다녔다.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음에도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열정을 높이 평가해 주시며 진심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다. 우리는 가끔 모르는 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간다는 사실에 마냥 설레곤 했다. 연말에는 시화전과 사진전도 했다. 자작시에 손수 그림을 그려 액자를 만들어 걸고, 출사 후 찍은 사진 중 몇 점을 골라 액자에 넣어 전시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가능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진전을 할 때, 사진반 선생님은 손수 좋은 사진을 골라 주시며 전시회가 처음인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당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던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사진반 활동에 더욱 열심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단체나 모임이든 과도기가 지나면 조금 느슨해지면서 열정이 식곤 한다. 몇 년이 지나자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엄마들이 타성에 젖기도 하고, 이사와 아이들 교육 문제로 그만두기도 하면서 모임을 이어 가는 것이 위태로워졌다. 결정적으로 모임을 이끌었던 약사님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셔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됐고, 우리도 모든 활동을 접게 됐다. 사진을 통해 나를 찾아가던 중이었지만, 일상의 어려움으로 지친 상태였고 모임을 해체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열정을 다해 사진을 찍었던 그때를 나는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몰랐으리라. 내가 일흔이 넘어 다시 사진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글 _ 조웅식 가타리나(수원교구 사진가회)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일과 찬양 그리고 기도

저는 일과 찬양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일에 쌓인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찬양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일과 찬양을 함께 하면 시간이 서로 많이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 날에 찬양하러 가지만 사실 집에서 쉬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찬양을 가지 않는 대신 몸의 피로를 풀고 싶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의무감에 갇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는 반항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종 쉬는 시간 없이 찬양과 일을 함께 하다가 육체적 피곤을 해소하지 못해 실수를 한 적도 있습니다. 기뻤던 찬양 시간이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고 일 생각으로 찬양에 성의를 다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일에 대해서도 성의가 떨어져 일에 대한 결과가 좋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이 마냥 즐겁고 편하지만은 않듯이 이 찬양 활동도 그럴 것 같습니다. 찬양은 신앙 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와 신앙생활이 잘 돼야 찬양을 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주일미사에 참여하기 귀찮아할 때도 있고 일을 하면서 말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잘못된 행동도 많이 합니다. 때로는 이런 내가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찬양과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저를 더 마음의 동굴 안으로 밀어놓기도 합니다. 저는 계속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찬양 활동만이 신앙생활이 아니라고도 생각하고 있고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저에게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 관리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게 큰 기쁨을 주고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찬양이 많은 양분이 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찬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이러한 경험과 생각들이 저를 더욱더 성장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마냥 쉬운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행복한 일이라도 준비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생활 중 기도할 때, 짧게 할 때가 많습니다. 성모송이나 영광송을 하거나 정 안되면 ‘하느님 도와주세요’ 식으로 짧게 기도합니다. 일을 하다가 중간 중간에, 찬양을 시작하기 전 종종 그렇게 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부지런하지도 않고 능력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노력도 잘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기도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생각을 하느님께 바치면 성령께서 저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 주시리라 믿습니다. 글 _ 조성욱 루카(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어느 성당에서의 찬양

얼마 전 수원교구에 있는 한 성당에서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성가를 부를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떼제 성가도 함께 부를 수 있었기 때문에 기쁘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참 좋아합니다. 그 목소리가 순수하고 티 없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안에서 그 느낌을 망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미 봉사를 하고 계신 분들과도 함께하게 되었는데, 저를 반갑고 기쁘게 맞이해 주시며 함께 연습하고 찬양해 주셔서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당의 학생들은 정말 잘 불렀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그 안에서 제가 무엇을 했다기보다 정말 잘 들었고, 잘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 안에서 순수함과 기쁨을 느끼고, 그 마음을 찬양을 통해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향하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찬양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그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저를 잡아 내리기도 하고, 자신감을 떨어뜨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그저 제가 기쁘게 그분 앞에서 찬양한다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하느님의 기쁨 안에서 함께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찬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일 잠들기 전 기도합니다. 사실 그렇게 큰 지향은 아니고, ‘저를 도와주십사’ 하는 내용의 기도입니다. 최대한 담백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바치려고 합니다. 하루의 삶 안에서도 그렇게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때를 돌아보면, 어릴 때 성당 마당에서 즐겁게 놀던 시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때야말로 더 바라는 것이 없었고, 그저 그 안에만 있어도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기도를 이렇게 바치려고 합니다. 성가도 이렇게 부르려고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기쁘게 보시고, 저도 그분께 찬양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대입니다〉라는 갓등중창단의 성가가 있습니다. ‘그대는 내 안에 있습니다. 나도 그대 안에 있습니다. 나 그대의 눈으로 보고 그대 가슴으로 삽니다’라는 가사가 종종 제게 다가옵니다. 이미 하느님은 제 안에 계시고, 저도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종종 제게 힘든 일이 다가올 때가 있지만, 그럴수록 위의 가사처럼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그분 안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 기쁨 안에서 저는 찬양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_ 조성욱 루카(수원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성지에서

어느 신부님의 초대를 받아, 원주교구 배론성지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피정 마침 주일미사 중 성가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뻤습니다. 친분이 있던 분을 뵐 수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성가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사는 작은 경당에서 봉헌됐고 반주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에게는 그 점이 부담을 덜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작은 성당을 좋아해서였는지, 좋은 신부님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미사에 참여하러 갈 때만큼은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행복한 마음으로 길을 나설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미사에 방해만 되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실제로 많이 부족했습니다. 긴장하는 버릇은 여전했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실수를 하면 모든 신자분이 저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오해였습니다. 다행히 신부님과 신자분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고, 함께 성가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에게는 그 시간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반주를 도와주시는 분도 생겨 더욱 기쁘게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수도 처음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자차로 이동해도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주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서는 일이 늘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불러주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라도 미사에 참여하게 해 주신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성지를 향할 수 있었습니다. 삶 안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신부님과 상담할 수도 있었고, 성지에 머무르며 기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가는 것이어서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달에 한 번 성지순례를 떠나는 기분이었고, 힘든 삶 안에서 위로를 받고 돌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때로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던 제가 스스로 전날 미리 성지에 도착해, 성지의 밤하늘 아래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봉사해야지’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는 신부님을 뵈러 간다는 단순한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제가 봉사를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저에게 선물을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고민과 걱정은,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씻은 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제가 움직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고, 그 시간은 추억이 되어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저에게도 슬프고 힘든 일들이 종종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것들 또한 곧 지나갈 것입니다. 그 과정 안에서 제가 하느님 안에 머무르려 한다면, 그분의 도우심 안에서 다시 만족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글 _ 조성욱 루카(수원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발행일 2026-06-28 제3497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성가가 기도가 되기까지

저는 사실 어릴 때 성가에 관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성가를 잘 부르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고,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물론 미사에 참여하면 이왕 참여했으니 성가라도 열심히 불러 보자는 생각은 있었지만, 단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간이 좀 지나 어떤 친구가 뜬금없이 제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지나가는 말로 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만, 저는 태어나서 처음 들은 칭찬에 우쭐해지기도 했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내 목소리가 정말 좋다면 성가도 잘 부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성가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불러 보게 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금방 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면서 성가에 아주 작은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성가에 집중하고 머무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성가에 관심을 가지던 중, 성당에서 활동하면서 미사 안에서 성가를 부를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성가를 부르면서 행복을 느꼈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습니다. 신자분들과 함께 성가를 부른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잘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분들과 함께 성가를 부른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혼자 부르는 성가보다 함께 부르는 성가가 더 기뻤습니다. 마치 저와 함께 기도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제게 정말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을 많이 하고, 힘도 더 빠집니다.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삶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자분들 안에서 함께하는 것은 제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그 안에서 용기를 얻고, 하느님을 멀리하지 않게 됐다고 말해야 할까요. 사회생활 안에서 저는 종종 하느님을 거부하거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곤 합니다.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제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합니다. 어느 때는 그런 것이 편하고 큰 부담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다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마치 사랑을 떠난 사람처럼요. 오히려 기도, 나아가 성가를 부르고 찬양하는 것이 큰 기쁨을 주고,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양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지 말입니다. 제가 부르는 성가가 기도가 되어, 듣고 계시는 신자분들의 기도와 함께할 수 있다면 더 큰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의 시작은 사소했고, 더 생각해 보면 순간적인 생각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리저리 움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과 하느님께서 그런 저를 도와주시고, 이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두 번 기도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하신 말씀으로 전해지는 말입니다. 제 부족한 기도가 두 배가 되어 하느님께 닿을 수 있다면, 저를 보시고 다른 분들도 기도하는 데 도움을 받으실 수 있다면, 저는 지금보다 더 기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_ 조성욱 루카(수원교구 찬양사도협의회 ‘루카와 요한’)

발행일 2026-06-21 제3496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교회음악가들을 위하여

우연히 길이 열려, 로마에 있는 교황청립 성음악원에 들어갔다. 그 학교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며 ‘유럽의 대성당 성가대를 맡았던 지휘자들이 이런 노력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가톨릭의 성음악을 알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누군가가 알아줘야 할 수 있는 것이었고 손발이 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문득 ‘성음악을 누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틴어 성가의 언어 장벽, 무반주 성가의 어려움, 성가대 인원의 감소, 그리고 넓혀지지 않는 연령층 등 다양한 이유가 전통적인 성음악을 하기에 큰 장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성음악은 가톨릭 성가에만 있는 성가들이 전부일 것이었다. 작곡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판의 길이 열리지 않아 자신들의 아름다운 곡을 발표조차 하지 못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성당과 성지에서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초청하고 무대에 세워 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공간이 주는 울림과 빛, 그리고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 작품들, 이 모든 것이 성음악을 더욱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을 이끌면서 아이들의 정기연주회 프로그램만큼은 성가로 했다. 아이들의 원성도 자자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다른 합창단과 다르지 않으냐”라는 말을 반복하며 아이들을 설득하며 지켜 왔다. 그리고 그 음악들은 성당과 성지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2025년 ‘CANTUS 8’이라는 보컬 앙상블 단체를 만들었다. 부활의 의미를 넣어 숫자 ‘8’을 넣었다. 성악과 음악을 전공한 30~40대 중장년 신자로 단체를 구성했다. 겨우 8명을 만들어 첫선을 보였지만 갈 길이 멀다. 그레고리오 성가부터 다성음악 그리고 바로크 합창음악 게다가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성가의 모든 장르를 노래로 불러볼 예정이다. 관심 있는 성악도들이 함께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생활 성가도 좋지만 정통 가톨릭 성가에 관심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20~30대 젊은 친구들이 그 어려운 그레고리오 성가와 폴리포니 성가들로 자신들을 알리는 모습을 보고 대견하다는 생각도 한다. 40~50대 선배들이 생각조차 못 했던 일들을 그들은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복음적 신앙을 선포하며 또 다른 방향으로 성음악을 알리려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노래 안에서는 하느님께 닿을 때가 있다. 부족한 나의 모습도, 흔들리는 믿음도, 감추고 싶은 연약함도 성음악 안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 성가를 부르는 시간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솔직한 나 자신을 하느님께 보여 드리는 시간일 것이다. 많은 성음악가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음악적 소명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교회 안에서 성음악이 더 이상 낯선 음악이 아니라 신앙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살아 있는 언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글 _ 오선주 루치아(교구 성음악위원회 ‘콘체르토 안티코’ 리더)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콘체르토 안티코

노래는 가사가 있는 음악이다. 종교음악도 가사가 있다. 그 가사는 기도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노래들도 있었다. 어느 날 레슨 때 “종교음악은 어떤 감정으로 노래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담당 교수는 “그 위대하신 분이 네가 어떤 마음으로 불러도 다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을까?”라고 대답했고, 나의 감정이 널뛰기 시작했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경외하는 마음도 모두 담아내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바로크 음악을 하는 전문가들의 팀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교구 성음악위원회의 제의를 받고 담당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단체가 ‘콘체르토 안티코’다. ‘콘체르토’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 형식으로, 성악과 기악이 함께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안티코’는 ‘옛’, ‘옛날’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콘체르토 안티코는 리코더, 바이올린, 하프시코드, 첼로, 성악을 하는 연주자 5명으로 출발했다. 서로 몰랐던 연주자끼리 만나 합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외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 안에서 미묘한 감정의 상처들도 생겨났다. 단체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소수의 상처를 안은 채 다수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상처를 먼저 보듬고 잘 마무리한 뒤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새롭게 출발할 것인가. 결론은 후자였다. 선택 후 연습과 공연을 이어가며 모든 멤버에게서 즐기는 마음과 어떻게든 잘 해보고자 하는 마음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콘체르토 안티코는 정기연주회와 여러 성당에서의 초청 연주 그리고 경기도의 지원금을 받아 꾸준히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감사하게도 지원금이 확대돼 5년 전부터는 ‘무지카사크라 페스티벌’이라는 바로크 종교음악 축제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무지카사크라 페스티벌은 3일간 4회 공연을 통해 중세음악, 바로크 음악, 기악곡, 성악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공연 장소도 심혈을 기울여 정한다. 음악과 어우러지는 장소인가, 울림이 있는 공간인가, 모두가 다 즐길 수 있는 공간인가를 고려한다. 종교음악과 미술 그리고 건축 양식을 한자리에서 즐기기에 성당만 한 곳이 없다. 더욱이 성당과 성지에서 하느님의 음악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공연 장소로 성당을 고려했고, 2025년 11월 공연은 제2대리구 분당성요한성당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콘체르토 안티코는 종교음악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단체라고 생각한다. 다소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에게 어려운 기도도 있고 쉬운 기도도 있고 마음이 동하는 기도도 있듯이 하느님의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음악을 우리가 귀로 담아 마음으로 듣는다면 분명 내 안에서 일렁이는 감정의 숨구멍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는 6월 30일 서울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콘체르토 안티코만이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음악을 공연한다. 많은 분이 우리와 함께 감정의 숨구멍을 열어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 _ 오선주 루치아(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콘체르토 안티코’ 리더)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순리대로 걸어온 길

돌이켜보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를 배우다 성악으로, 성악을 하다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교회 합창 지휘를 거쳐 바로크 성악으로. 매번 내 의지로 방향을 바꾼 것 같았지만, 지금 와서 그 길을 한 줄로 이어보면 처음부터 누군가 놓아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던 것 같다. 유학 시절, 다시 노래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였다.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오페라의 세계가 내게는 언제나 낯설었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살을 맞대며 노래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고, 무대 위에서도 나는 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 부정의 감정이 한창 깊어지던 어느 날, 바로크 성악을 처음 만났다. 너무나 우아하고 고상한 그 음악 앞에서 나는 비로소 ‘이것이 나구나’ 싶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5년의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종교음악은 그 이후로 내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레고리오 성가부터 폴리포니, 마드리갈까지. 피아노에서 오르간, 하프시코드까지. 내가 배워온 모든 것들이 하나로 모이는 곳이 결국 교회 안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길이 나의 결정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받아들였다. 현재 나는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소속 바로크 앙상블 ‘콘체르토 안티코’의 리더로 있다. 2019년에 창단한 이 단체는 바로크 시대의 악기로 그 시대의 음악을 재현하며, 종교음악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뜻이 맞는 연주자들을 하나둘 모아 만든 이 앙상블이 지금은 수원교구 안에서 정기연주와 여러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쉬운 길은 아니다. 음악가들 사이에서 교회음악가는 더 가난하고 그들의 재능을 발휘하기에는 교회음악의 구조가 아주 폐쇄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뜻이 맞고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같은 사람끼리 만나야 시너지 효과를 더 낼 수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나는 교회음악은 경건해야 하고 거룩하며 우아하고 고상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부딪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길을 놓지 못하는 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음악이라는 믿음 때문이고, 그 음악으로 단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위로와 기쁨을 전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보상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공연과 전례 안에서 잔잔하게 스며드는 음악, 그 안에 이야기가 있고 하느님께서 전해주시는 말씀이 있는 음악, 그런 음악을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회음악이기도 하다. 이 가르침을 깨우쳐 주시려고 20년 동안의 쉽지 않았던 학업과 여러 단체를 맡으면서 많은 사람과 함께 성음악을 만들어간 경험의 길을 만들어 주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기도와 묵상을 하며, 성가 하나하나를 부르며, 가사의 말을 되새김 하면서, 그 안에 담고자 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 하느님. 오늘도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그분의 뜻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찾아 연구하고 노래한다. 이 모든 힘겨운 과정조차, 이 길을 더 깊이 개척하고 발전시키라는 뜻에서 허락된 것이리라 믿으며. 글 _ 오선주 루치아(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콘체르토 안티코’ 리더)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40대에 비로소 보이는 하느님의 길

3년 동안 내게 다가온 변화는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변화였으며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의 경험이었다. 혼자의 삶을 살아가던 나에게 결혼을 하고 연년생으로 아이 둘을 낳으며 누군가와 끊임없이 동행해야 하는 삶으로의 변화였다.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그동안 했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본당에서 하고 있던 교중미사 지휘와 밤에 주로 했던 성음악 강의도, 그리고 얼마 전까지 아이들과 숨을 쉬고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의 소리를 전달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던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두 아이를 낳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에는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합창단 어머님들도 도와주시고 “괜찮다, 계속하시라”며 응원의 메시지도 주셨지만, 나만 바라보고 나만 의지하는 20여 명의 아이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0여 년간 아이들과 함께했던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 유학 후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찾아온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 맡고 있던 합창단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었고,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 가야 하는 합창단이었다. 그야말로 새롭게 창단하는 단체였다. 그때 내 나이 서른넷. ‘얼씨구나 좋다’라는 생각으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선뜻 시작할 수 없었다. 매달릴 곳은 하느님밖에 없었다. 한 달간의 기도와 주변 분들의 설득, 그리고 내 안에서 밀어내는 마음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잘 이끌어 나가면, 내가 떠나는 날 이 단체를 또 누군가가 잘 이끌어 가지 않을까, 그럼 천천히 역사를 만들어 나가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하는 여정이 시작됐다. 여느 합창단과 달리 아이들에게 라틴어 성가를 부르게 했고 무반주 폴리포니를 가르쳤다. 물론 이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로마의 시스티나 합창단과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합창단처럼 전례 안에 스며드는 합창단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그 일을 하고자 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나를 쉼 없이 흔들었고, “그냥 편히 하자, 다른 합창단처럼 애들이 부르는 거 하지, 뭘 그렇게 고생하느냐”라는 주변의 소리도 끊임없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것도 교구 소속 합창단이라면 뚜렷한 목적과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끝까지 고집스럽게 10년을 이끌어 왔다. 그 10년 동안 아이들은 처음엔 뜻도 이해하지 못하는 성가들을 하나씩 불러가며 하느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건강하게 자라났다.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또한 주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잘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도 있었고, 중도에 떠나간 아이들도 있었고, 웃으며 졸업한 아이들도 있었다. 쉽지 않은 여정에 함께해 주었던 수원가톨릭소년소녀합창단의 모든 아이에게 가장 행복한 하느님의 길이 열리길 조용히 기도해 본다. 글 _ 오선주 루치아(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콘체르토 안티코 리더)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수원가톨릭미술가회, 그리고 365갤러리

수원가톨릭미술가회는 매년 두 차례 전시를 통해 신앙과 예술이 만나는 자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성화성물전’과 ‘정기전’은 단순한 작품 발표를 넘어, 관람객들에게 신앙의 깊이를 전하는 예술적 봉사의 장이 됩니다. 수원화성순교성지 안에 자리한 북수동성당 입구에는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져 있어,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을 묵묵히 증언합니다. 그 곁에 자리한 ‘뽈리화랑’은 과거 소화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한 전시공간으로, 역사와 신앙,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입니다. 화랑의 이름은 북수동본당 4대 주임신부였던 심응영(沈應榮) 신부님의 프랑스 이름 폴리 장 마리 데지레 장 바티스트(Polly, Jean Marie Désiré Jean Baptiste)에서 유래합니다. 신부님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소화강습소를 설립해 한글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냈습니다. 그의 헌신과 신앙을 기리기 위해 2007년 문을 연 뽈리화랑은 순교의 터전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의 증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수원가톨릭미술가회 전시가 열리던 날, 공간이 지닌 깊은 성스러움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기도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오래된 교실 창 너머로 보이는 성당의 고요한 풍경,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마루의 삐걱거림은 시간의 흔적을 넘어 신앙의 기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울림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내면을 향한 조용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뽈리화랑은 오늘날 ‘365갤러리’라는 이름의 연중 상설 전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곳 전시장은 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원들이 순번을 정해 일 년 내내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번을 하는 날은 하루를 온전히 머무르며 작품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 됩니다. 나무와 흙, 돌과 캔버스 위에 담긴 작가들의 작품은 단순한 조형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됩니다. 각 작품에 스며든 신앙의 메시지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마음을 울리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묵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처럼 성미술로 채워진 갤러리 공간 안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작은 피정이 됩니다. 예술은 그렇게 신앙을 비추는 또 하나의 빛이 되어, 우리의 삶 속에 깊고 잔잔한 울림으로 전해집니다. 수원가톨릭미술가회가 1998년 수원교구청에서 창립전을 연 이후 어느덧 28년의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 긴 여정은 단순한 전시의 연속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빚어진 신앙과 예술의 축적이었습니다. 작가들의 손끝에서 완성된 작품 앞에 서면 관람객은 자연스레 걸음을 늦추게 됩니다.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깊은 공감과 영적 울림을,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평온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내 삶의 여정 속에서 늘 함께해 온 성미술 작품들은 나를 깊은 신앙으로 이끄는 소중한 고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은총의 연결 안에서 오늘도 감사의 마음을 새깁니다. 글 _ 이재옥 모데스타(수원가톨릭미술가회)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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