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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돈 수녀의 - 진복팔단 해설묵상] 5

정하돈 수녀ㆍ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
입력일 2012-08-23 수정일 2012-08-23 발행일 1995-02-12 제 194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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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는 “평화가득한 삶”의 자세
“복되어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상속받으리니”(마태5,5)
원수사랑이 덕행의 기준점
「가난한 사람」과 일맥상통
바오로는 「온유」를 신앙인의 기본자세로 선포

이 행복칭송은 시편 37,11에 의거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온유한 자」를 겸손한 자, 권력없는 자 또는 힘없는 자로 번역하고 있다. 온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과 일맥 상통하는 사람이다. 행복칭송에서의 온유는 하느님나라로 이해된다. 그것은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인 구원외침이며 하느님으로부터 기대하는 평화와 행복의 「겸손하고」「온유한 자」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폭력을 포기하는 특별한 외침이 아니라 평화가 가득한 삶의 자세이다.

평화가 가득한 삶

온유란 「세차게 부는 것」「힘찬 것」과는 반대인 「침착한 마음」을 의미한다. 또 「교만한 자」와 「불손한 자」와는 반대로 자기 자신의 계획이나 뜻을 관철시키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편안하게 내오 맡기는 자를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런 자세로 살으셨고, 그럼으로써 팔레스티나의 스승들의 교만과 완고함을 꺾으셨다. 마태오 21,5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분은 정치적 메시아니즘에 대항하셨다.

온유로 다스린다는 것은 결코 부드럽거나 약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나 혹은 그의 잘못을 우월감 없이 단호하게 그러나 친절하게 권면하는 것이다(Ⅱ고린토 10, 1). 바오로사도는 또한 온유를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자세로 선포하였다(에페소4, 2:골로사이3, 12). 희랍세계와 유대교에서도 온유를 높이 평가하였다. 희랍인들은 온유를 지혜의 열매로 보았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온유는 「아가페」-사랑에서부터 생기는 것이고 성령의 열매로 간주되었다(갈라디아 5, 23:6, 1).

땅을 상속받게 될 겸손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들인가? 구약에서 「가난한 자」와 「겸손한 자」들은 대단히 유사하다. 그들은 모두 필요한 것이 없고 또한 가난한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신을 내오 맡기고 그분의 자비를 기대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남을 억압하거나 강탈하지 않고 앙갚음을 하지 않으며 부당한 독단적 주장을 하거나 그들의 목적을 힘으로 관철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주 단순한 자들, 가난한 자들, 겸손한 자들, 힘없는 자들, 자신을 작게 굽히는 자들, 하느님께 열린 자들이다. 이런이들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땅은 무엇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가리키고 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눈 앞에 두고 대망하던 땅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자비로운 선물로 받은 땅이다. 땅은 하느님이 처음 인간들에게 주신 이 세상을 가리키고 있다. 지상나라는 하늘나라 안에 있다. 인간에게 상속될 약속의 완성을 위한 담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주어진(마태오 28, 18) 그리스도이시다.

「가난한 자」와 상통

온유는 모든것이 성장할 수 있도록 평정과 인내와 사랑안에서 활동하고 아무것도 서둘러 하느님께 요구하려 하지 않으며 그분의 마음에 드는 것을 완전한 헌신속에서 자기 자신을 내맡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유는 사건들을 무관심에서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순간순간 요구되는 바를 굳건함과 충실로 완성한다. 이처럼 온유가 올바르게 실현될 때 온유하게 주어지는 것은 가장 깊은 내면에로까지의 변화이다. 그러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 대신 실패했을 때라도 온유는 울부짖거나 의심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패배를 당한 후 성공의 확실함을, 마치 우리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부활을 기다렸듯이 기대하면서도 굳굳하게 견디어 낸다.

온유한 자에게 유산으로 약속된 땅은 무엇보다 외적인 힘의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내적으로 변화된 힘으로써만 얻게 되는 그 자신의 마음의 땅이다. 뿐만아니라 폭력적인 억압을 거절하고 오직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고 또한 깊이 스며드는 영향에만 자신을 개방하는 사람, 그 자신의 마음의 땅을 소유한 사람,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땅도 있다.

약속의 땅은 「온세상」

약속의 땅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얻어야 할 온 세상이다.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 온유한 자에게 약속된 땅은 외적인 힘과 고통스런 폭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후세의 완성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힘은 모든 이와 모든 것에 깊이 스며들 것이고 사탄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약함도 끝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세 번째 행복과 첫 번째 행복이 병행하고 있음을 본다. 즉 가난한 자에게는 하늘나라가 약속되었고, 온유한 자에게는 땅이 약속되었다. 하늘나라는 보다 정신적이며 영적인 부(富)를, 땅은 보다 이세상의 부를 의미한다. 여기서 하늘과 땅은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를 의미하고 있으며 둘다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은 결코 대립,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보완하면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을 너무나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이 세상을 도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현실을 도피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땅- 이 세상 삶이 삶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하늘- 영원한 삶에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끊임없이 향해야 한다. 우리는 나그네처럼 이 지상에서 지내며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처럼 생활한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나 천상생활을 갈망해야 한다.

견고한 인격 힘 요구

온유함은 나태, 무력, 우유부단, 두려움의 결과가 아니다. 그보다는 견고한 인격과 힘을 요구하고 마음의 역량과 자제력을 좌우한다. 온유함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마음이 진정되고 유순해지고 어려움 속에서도 침착성과 균형을 잃지않는다. 그것은 또한 부자연스럽게 혹은 가장된 평온이 아니고 언제나 평정과 평화를, 정중한 예의와 존엄성을 지킨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은 온화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장벽과 장애물들을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온유함의 덕행은 원수사랑에 그 정점의 기준을 두고 있다. 원수를 사랑함은 사랑의 완성이다.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골로사이 3, 12∼13). 그리고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에페소 4, 1∼2).

정하돈 수녀ㆍ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