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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돈 수녀의 - 진복팔단 해설묵상] 8

정하돈 수녀ㆍ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
입력일 2012-08-24 수정일 2012-08-24 발행일 1995-03-26 제 194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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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마음」가질때 구원은총 받아
참행복은 「마음의 가난」에서 출발
마음속의 거짓, 나쁜 성향 없애야
「깨끗한 행실」은「깨끗한 내적자세」와 부합되는 행위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되리니 (마태5, 8)”

깨끗한 마음은 마치 순결과도 같은 특별한 덕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성전을 참배하는 이들에게서 요구되는 (시편 15장, 24장) 「깨끗한 행실」과 「순결한 마음」과도 같은 것이다. 즉 깨끗한 마음은 주님의 집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다. 따라서 그분의 현존에로 다가가기 위한 조건이다. 마음은 성서적인 의미에서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전체를 뜻한다. 마음은 한 인간의 가장 내면스런 중심이다. 그 중심안에서 인간은 완전히 그 자신이며 또한 그를 형성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마음은 인간 앞에서는 감추어질 수 있으나 하느님 앞에서는 감추어지지 않는 가장 깊고 내면스런 층이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 본다』(사무엘상16, 7). 유대인들은 「마음」에 대해서 말할 때면 그의 온 원의와 느낌과 사고와 함께 내면의 삶을 「하나」(일치)로 느낀다.

주님의 창조적 행위

「깨끗한 마음」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위요 창조적인 행위이다. 예수께서는 외적 순결을 지나치게 중시한 바라사이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마태15,18ㆍ20 : 15, 1~20 :마르코 7, 1~23참조).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란 그의 실존에 감추어진 내면까지 깨끗하고, 개방적이고 순수하며 가면을 쓰지 않고 마음의 분열을 갖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복된 자」라고 한 이 행복칭송은 「내적 순결」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악한 생각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 같은것』 (마태15, 19)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세상의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시작은 마음의 변화에 달려있다. 「깨끗한 마음」은 올바른 자세에서 오는 행위, 특히 솔직한 말,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진실과 충실, 이웃들과의 거짓없는 관계이며 (시편15, 2~5), 간계한 속마음과 순수치 못한 꿍꿍이속이 없는 솔직하고도 순수한 마음자세 - 하느님의 신뢰, 자비, 성실을 따르는 자세(시편26 : 미가 6,8)이다. 갈라지지 않은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사하고 이웃들과 진실된 관계안에서 사는 자는 마음이 깨끗한 자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이렇듯 자기 자신과 하느님에 대해서 정직한 사람이기에 「하느님을 볼수 있게 되고」, 하느님을 뵙게 되는 가운데 「구원의 풍요와 행복」이 그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하느님을 뵙게 되는 행복은 죽을 때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행복은 「의로운 자와 복된 자」그리고 「마음이 깨끗한자」에게 유보된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내적가난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이들은 마음의 자유를 누리면서 『세상을 이용하면서 실제로는 마치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지내는 자』(l 고린토 7, 30이하)들이다. 또 이런 이들은 없어질 「세상의 보물」(마태6,21) 들을 보면서 없어지지 않을 「하늘의 보물」(마태6, 12)들을 투시한다. 그래서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 거기에 당신의 마음도 있을것입니다」(마태 6,12)라는 말은 이런 이들을 두고 한 말이다.

「하늘의 보물」투시

인간은 재산과 소유에 대한 한없는 욕심, 육과 눈의 욕정, 생활의 자랑(I 요한2,16) 욕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런 욕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안에서 경직되고 그의 고유한 나를 우상화시킨다.

「복되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 이 참된 행복은 그리스도교적 완성에, 즉 마음의 가난에서부터 시작되어 이제 마음의 순결에서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법과 조화되는 순수한 내적 생명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안에서 온갖 거짓들과 여러가지 나쁜 성향들 일체를 없이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복음의 윤리안에서 「깨끗한마음」 과「깨끗한 행실」은 하나이다. 「깨끗한 마음」은 내적 자세이고, 「깨끗한 행실」은 이 내적 자세에 부합되는 행위이다. 마태오는 이 행복칭송에서 모든 덕의 근원이 되는 내적 순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는 참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거나 참된 생명이 있는 하느님께 다다르기가 어렵다.

하느님을 뵙는 일은 영신적인 눈으로 이루어진다. 하느님을 뵙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은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 의인들만이 후세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뵙게 되고 하느님의 빛을 바라볼 수 있다. 하느님을 뵙게 되는 것은 하느님 친히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만 베푸시는 상급이다.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행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과의 대면은 지금 그리고 여기서 허락된다. 이 대면은 지금 이곳에서 기대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모든 약속들처럼 불확실하고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참 모습을 대하는 진정한 대면이다.

신앙으로 주님체험

지상에서의 하느님과의 대면은 신앙을 통한 하느님의 체험이다. 이 체험의 정도는 각자의 신앙의 깊이돠 활력 그리고 그 신앙과 연결되는 사랑에 비례한다. 또 하느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그분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체험은 그리스도교적 관상의 결심이며, 하느님을 뵙는 은총은 바로 관상의 은총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는 말은 하느님의 현존을 누린다는 뜻이다.

이 같은 신앙안에서 「하느님을 뵙게 되는 자」는 말할 수 없는 깊은 내적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지상에서 체험하는 것은 영원에서 체험하게 될 것에 비할 수가 없다. 『눈으로 본적도 없고 귀로 들은 적도 없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떠오른 적도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두셨다』(l고린토 2,9).

내적평화ㆍ기쁨누려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기도와 이웃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한다. 이 만남의 두가지 형태, 하느님을 「뵙는」 이 두가지 방법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이중적 측면과도 부합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마태22, 37~39 :마르코12,30~31:루가10, 27참조). 이 행복칭송은 하느님을 체험하라는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은 곧 기도중에 예수와 친교를 깊이해 가면서 자기를 포기하고, 또한 이웃들과의 친교를 배우라는 부르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두 부르심에 응답해야만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신앙체험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중에 체험하고 이웃들안에서 체험하는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시다!

정하돈 수녀ㆍ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