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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돈 수녀의 - 진복팔단 해설묵상] 9

정하돈 수녀ㆍ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
입력일 2012-08-27 수정일 2012-08-27 발행일 1995-04-09 제 1948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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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
진실한 대화와 기도로 평화이룩
주님안에선 대립과 모순 안생겨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해야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리니”(마태 5, 9)

「평화」는 구약성서안에서 그리고 예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의 완성이며 「평화의 사람」은 「구원된 사람」을 뜻하였다. 따라서 평화의 결핍은 악인, 불의한 자로 보았다.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이사야 48, 22:57, 21참조)

메시아는 평화의 왕

메시아는 「평화의 왕」(이사야 9, 5), 「평화의 사자」(이사야 52, 7)로서 미리 선포되었다. 그래서 천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면서 평화의 노래를 불렀고 (루가2, 14), 바오로 사도 역시「그분은 우리의 평화」(에페소2, 14)라고 하였다. 왕은 「평화의 왕」(Salomo)이 될것이다. 왕, 특히 메시아 왕은 평화를 가져오실 분이다. 메시아 왕이 오시면 평화가 시작될 것이다(이사야 9, 5: 52, 7). 왕이 있는 그 곳에는 평화가 있다.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이란 글자 그대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며, 「평화」(구원받은 상태)의 성서적인 개념은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평화」는 구원, 행복, 축복, 만족, 안전으로도 이해한다. 특히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20, 19)하고 인사하신 것처럼 평화는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며 또한 성령의 특은이기도 하다(갈라디아5, 22). 그러므로 「모든 이해력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평화」(필립비4, 7)는 전 그리스도교적 실존을 좌우케 한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사시오(골로사이 3, 15).

마태오는 이 행복칭송에서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일하는 자, 힘쓰는 자, 모두를 가리켜 말하고 있다. 예수는 「평화의 복음」을 가져다 주었으며 친히 평화의 사도, 평화의 임금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는 당신 제자들을 「평화의 사도」로 파견하셨다(마태오10, 11~14참조).

평화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아주깊은 동경중에 동경이며 아주 위대한 말들 중에 말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는 언제나 일치속에서 함께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바로 깊은 사랑인 평화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능동적으로 평화를 준비하고 실현하며, 분열이 있을때 일치를 가져오도록 힘쓴다.

분열이 있을때 일치를

참된 평화는 「전체」에 자신의 부분적 견해를 삽입시킴으로써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관점안에서만 가치를 보지 않고 그 한계성을 인정, 수용한다. 동시에 다른 이의 관점안에서도 오직 부정적인 것만이 아닌 긍정적인 것을 함께 보려는 정신태도의 깊은 변화(metauoia=회개)속에서 성장한다. 그러므로 오만과 증오가 아니라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게된다. 그리스도교적인 입장에서 볼때 분열시키고 격리시키는 죄는 일치시키고 화해시키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으로써 극복된다.

겸손과 사랑 실천해야

화해안에서, 하느님과의 평화안에 모든 화해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평화가 뿌리박고 있다. 이 뿌리에서부터 그리고 평화를 이룩하는 그리스도에게서부터 떨어져 나간다면 평화를 위한 그 어떤 선의의 노력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화 사업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보급되고 발전하려면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평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는 먼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화해해야 하고 또한 자기 자신과 화해 해야만 한다.

참 평화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오는 것이며 형제의 진정한 사랑으로써 꽃피운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평화가 없는 이 세상을 평화로 인도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 자체이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켰고, 하늘과 땅 사이에 평화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성령의 열매이다. 완전한 평화는 이 세상에서가 아닌 하늘나라에서만 얻어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평화는 성령의 열매

평화는 사랑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과 자기자신에게 대한 참사랑과 함께 다른 이에게 대한 철저한 사랑을 가짐으로써 갈라진 것을 화해시키고 평화로 인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참 제자들은 보복과 폭력(마태오5, 38~42: 26, 52~54)을 포기하고 화해의 마음자세(5, 44이하)를 가지며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5, 44이하).

충만한 생의 완성의 근원은 희생, 죽음을 통해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 원형은 영광 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의 아들들로서 또는 그리스도의 하느님의 아들관계에 참여함으로써 평화를 이룩하려는 모든 이들은 평화의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이다(에페소5, 1). 사람들 사이에서 비록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작은 화해일지라도 그 행위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

보복과 폭력포기해야

하느님은 평화의 하느님이시다. 그분안에는 결코 대립이나 모순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생의 충만이 있을 뿐이다. 평화는 정의나 진리처럼 높은 신적선이며 인간이 전해 주어야 할 구원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사람들이 서로간에 일치하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곳에서만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마태오5, 44~46참조). 우리는 운수사랑에서 하느님이 무엇인지, 즉 어떤 분이신지 가장 잘 알게 된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고 적절한 기회에 실제로 화해하겠다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공동체재건위한 요건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이 행복칭송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교적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적용되어야 한다. 순수한 평화를 나타내는 참된 표지는 형제적 친교이다. 그리고 복음화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평화를 추구하는 사고는 행동으로 옮겨져야만 한다. 평화의 일꾼으로 불리움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선 자기 가정, 직장, 교회 공동체안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분야안에서까지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실한 대화와 기도를 통해서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다. 교회는 화해가 참된 평화로 연결되려면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지상의 평화167참조).

정하돈 수녀ㆍ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