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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우리는 순교자의 후손입니다’ - 시복 앞둔 124위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4-08-05 수정일 2014-08-05 발행일 2014-08-10 제 290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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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순교 윤지충 등 초기 순교자, 103위 성인보다 먼저 순교
103위 부모·조부모 포함… 한국교회 차원 시복 통합추진
시복식을 앞두고 있는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는 누구인가? 순교지, 신분, 연령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하느님의 종 124위의 면면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순교한 시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초기 순교자가 중심 이뤄

하느님의 종 124위의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는 가톨릭교리를 지키기 위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사른 이른바 ‘진산사건’으로 그를 따르던 외사촌 권상연(야고보)과 함께 1791년 전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윤지충은 한국에서 천주교가 시작된 1784년으로부터 불과 7년 만에 순교한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다.

하느님의 종 124위 순교자의 시기별 분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791년 신해박해 3위, 1795년 을묘박해 3위, 1797년 정사박해 8위, 1801년 신유박해 53위, 1814년 1위, 1815년 을해박해 12위, 1819년 2위, 1827년 정해박해 4위, 1839년 기해박해 18위, 1866년과 1868년 병인-무진박해 19위, 1888년 1위로 나타난다.

이번에 시복되는 하느님의 종 124위 중 무려 86위가 기해·병오·병인박해 순교자인 103위 성인보다 먼저 순교했으며 124위의 70%에 육박하는 비율이다.

이들 86위는 103위 성인보다 먼저 순교하고도 시복은 더 늦게 이뤄지는 것으로 하느님의 종 124위의 시복을 한국교회가 1997년부터 통합추진 한 중요 배경이 됐다. 103위 성인 시성 후 한국교회에서는 ‘103위 성인의 부모나 조부모에 해당하는 순교자의 시복시성을 추진해야 한다’는 반성과 아쉬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초기 순교자들이 뒤늦게 시복된 원인은 1831년 조선교구 설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호남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김진소 신부는 “조선교구 설정과 동시에 한반도에 진출한 파리외방전교회는 자신들이 한국교회의 사목을 책임진 이후 시점의 순교자들에 대해서만 시복시성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시복되는 124위는 103위 성인의 시복시성 과정에서 배제된 초기 순교자들이 중심을 이룬다는 면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독자적인 역량으로 그들의 시복을 추진했다는 데서 한국교회 현 주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1개 교구 29개 순교지

순교에 대한 교구 심사의 관할 주교는 하느님의 종이 사망한 지역의 주교(「시복시성절차해설」 382쪽)이므로 순교자의 순교지는 시복시성절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24위의 순교지는 전국 11개 교구에 모두 29곳이다.

서울대교구가 38위로 가장 많다. 새남터 1위, 포도청 5위, 서소문밖 27위, 당고개 1위, 경기감영 4위다. 대구대교구는 관덕정 순교자 10위를 포함해 19위, 부산교구는 울산 3위, 동래 2위 등 5위다. 마산교구는 4위로 진주 2위, 함안과 통영이 1위씩이다. 전주교구에서는 24위가 순교했으며 전주가 22위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고 김제와 무장이 각 1위다.

청주교구 순교자 5위의 순교지는 모두 청주다. 안동교구 상주에서 1위가 순교했고 대전교구는 홍주 4위, 해미 3위, 공주 2위, 정산과 덕산, 예산, 대흥 각 1위로 모두 13위가 순교했다. 수원교구는 여주에서 5위, 양근에서 3위, 죽산에서 2위, 남한산성에서 1위 등 11위가 순교했다. 원주교구 순교자 3위는 모두 강원감영이 순교지다. 춘천교구는 포천에서 1위가 순교했다.

30~40대 가장 많아

124위 순교자의 연령대를 보면 10대 5위, 20대 15위, 30대와 40대가 각 21위, 50대 19위, 60대 11위, 70대 5위로 30~40대가 가장 많다. 연령(출생년도) 미상도 27위나 된다.

최연소자는 12세인 이봉금(아나스타시아), 최고령자는 75세의 김진후(비오)다. 김진후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증조할아버지다. 103위 성인 중 최연소자는 유대철(베드로)로 13세, 최고령자는 유조이(체칠리아)로 78세다. 124위 중 성직자는 중국 출신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유일하며 동시에 유일한 외국인이다. 나머지 123위는 모두 평신도다.

■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일지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한국 천주교회의 시복시성 작업 통합추진 결정

▲2002년 3월 7일 : 제2차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제1차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 124명 확정과 신학위원, 역사위원 임명

▲2003년 10월 6일 : 시성성으로부터 아무 “장애 없음”을 통보 받음(Prot. N. 1664-1/89)

▲2004년 7월 5일 :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법정 개최

▲2009년 5월 28일 : 교황청 시성성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청원서 공식 접수

▲2012년 10월 26일 : 하느님의 종 124위 포지시오(Positio) 작성 완료 및 시성성 제출

▲2013년 3월 12일 : 하느님의 종 124위 포지시오 교황청 시성성 역사위원회 심의 통과

▲2013년 10월 1일 : 하느님의 종 124위 포지시오 교황청 시성성 신학위원회 심의 통과

▲2014년 2월 4일 : 하느님의 종 124위 시성성 추기경과 주교단 회의 통과

▲2014년 2월 8일 : 교황청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결정 발표

▲2014년 8월 16일 :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서울 광화문에서 거행

시복식, 왜 서울 광화문인가

의정부 등 중앙관청 밀집 조선시대 ‘박해의 진원지’

죽임 당한 곳에서 시복 영광스런 신앙 승리 보여줘

하느님의 종 124위 순교자 시복식이 갖는 의미는 서울 광화문이라는 장소에서도 찾을 수 있다.

6월 18일 광화문으로 시복식 장소가 공식 발표되기 전 광화문 외에도 시복식 장소로 거론되던 곳이 있었다. 124위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가 순교한 전주 전동성당이 대표적이다.

시복식을 광화문에서 여는 의미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한여름 무더위와 서울시내 교통체증 등을 염려하며 광화문에서 시복식이 거행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한다. 한국교회 박해시대에 광화문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빌딩들이 빈틈 없이 들어선 광화문에서 18세기 말~19세기 후반 약 100년간 이어진 한국 천주교 박해의 흔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를 잘 살펴보면 광화문은 조선시대 조정의 중심으로 의정부와 육조, 포도청 등 중앙관청이 모여 있던 곳이다. 최대 순교터인 서소문 순교성지도 인근에 위치한다. 왕이 거처하던 경복궁은 지금도 광화문 너머에 자리하고 있다. 광화문은 다시 말해 박해의 진원지다.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는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 당시의 철옹성 같은 신분질서를 부인하고 평등사상과 형제애를 받아들여 몸소 실천한 이들이다. 그 대가로 온갖 천대와 핍박을 받고 결국에는 목숨까지 바친 이들이 바로 순교자들이다.

사학 죄수로 천시됐던 순교자 124위가 광화문에서 영광스런 복자품에 오른다는 것은 바로 순교자 자신들이 순교의 순간까지 지녔던 천국에 대한 확신과 일치한다. 신앙을 붙들고 영원한 천상복락을 누린다는 그 확신이 있었기에 순교도 기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박해시대 광화문에 있던 육조와 의정부는 자취를 감췄지만 광화문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그렇기에 광화문에서 열리는 시복식은 순교자들이 보여준 천주교 신앙의 불변하는 진리와 승리를 내포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