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커버스토리] 나는 교황에게 - 교황 방한, 가난한 사람들의 바람

서상덕 기자,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4-08-12 수정일 2014-08-12 발행일 2014-08-17 제 2908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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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랍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그들의 요구에 우리의 목소리를 실어주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가까이 있는 것에서 출발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해방의 길에서 그들을 제대로 동행해 줄 수 있습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98, 199항)

서울 삼양동선교본당 장영오 씨

“교회 지도자부터 복음 가르침대로 살길”

가난은 비참함이 아니라 그녀를 키운 힘이었다. 6년째 서울 삼양동선교본당 복음화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영오(글라라·54)씨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온다. 꼭 25년 전인 1990년, 홀몸이 돼 외동아들을 업고 찾아든 삼양동은 비라도 오는 날이면 흙탕물이 흐르는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당장 하루하루 끼니 때우기가 바쁘던 시절 선뜻 네 살배기 아들을 받아준 ‘솔샘애기방’ 선생님 덕에 주님과 만날 수 있었다. 성직자·수도자 전례복 제작으로 지금은 꽤나 이름이 알려진 ‘봉제협동조합 솔샘일터’와 함께 그녀의 인생도 숱한 변화를 겪어왔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의 도움으로 지난 1993년 10월 가정집 방 두 칸을 빌려 문을 열 당시만 하더라도 주위에서는 얼마나 갈까 하는 의구심어린 눈길이 더 많았다.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어려움 속에 부대끼며 처음 3명으로 발걸음을 뗐던 솔샘일터는 많을 때는 9명으로 조합원이 불어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초창기 조합원 중 장씨만이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신의 아들도 솔샘 공동체가 키웠다고 생각하는 장씨는 협동하는 마음이 오늘의 자신과 공동체가 있게 한 힘이라고 여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거는 그녀의 바람은 어쩌면 너무도 단순해 보이기까지 한다. 교회지도자들이 자신들이 말한 대로, 복음이 가르치는 대로만 살아달라는 것이다. 전례시기나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약속과 말들이 넘쳐나지만 그대로 사는 이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지도자들에게서 교황이 보여주는 가난과 겸손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가난을 개인의 잘못이나 부족함의 결과로만 보는 시각의 전환을 요청한다. <서상덕 기자>

결혼이주여성 마하웡 씨

“교황께서 가난한 이 보듬듯, 한국교회도…”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고향 태국 나꼰파놈을 떠나 한국으로 올 때만 해도 안누웨 마하웡(한국명 김혜연·율리안나·서울 금호1가동선교본당)씨는 한껏 부풀어있었다. 지난 2000년 한국에 들어와 전남 완도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둘째 김지연(로사·중2)양을 낳을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 하지만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김씨는 천애고아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가 식구들이, 살던 집은 물론이고 보상금마저 빼앗아가고 말았다.

2003년 내쫓기다시피 서울로 올라왔다. 시가 식구들의 구박 속에 살아가고 있는 두 딸을 데려오기 위해 미친 듯이 일했다. 조그만 의류공장에서 일하며 크고작은 일을 겪으면서도 아프단 소리 한 번 안 내고 돈을 모았다. 우연히 알게 된 수녀의 도움으로 2007년 5월, 사글세방을 얻어 딸들을 데려왔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나마 2011년에는 일하던 공장에서 손을 다치면서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쳤다. 생활비는 늘 쪼들리고 벌어놓은 것마저 까먹으면서도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닮아서일까, 딸들도 투정 한 번 하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좋은 분이 오신다고 기뻐하는 그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교회가 좀 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곁으로 다가와주길 소망한다. 교황이 가난한 이들을 보듬듯 누군가가 자신들을 보듬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서상덕 기자>

북한이탈주민 장 뮤리엘 씨

“8월 평화의 바람 타고 북녘에도 기쁜 소식 전해지길”

한반도 한켠에서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던 2002년 1월, 그녀는 칼바람을 맞으며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넜다.

두만강 연안에서 태어나 자란 장 뮤리엘(39)씨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인민군에 몸을 담았다. 탁월한 대중 선동 능력과 교육·계몽 활동에서 보여준 수완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그녀. 하느님은 그런 그녀를 불러내셨다. 그녀가 다루던 국가기밀문서에서 어느 날 ‘찬송가’라는 문구가 눈에 꽂혔다.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이뤄진 사형 집행,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청소년 18명이 찬송가를 불렀다는 내용이었다.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 갖은 충성을 바쳐온 나라는 이미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지옥으로 다가왔다. 이 또한 주님의 섭리였을까, 강을 건넌 그녀에게 처음 도움의 손을 뻗친 이가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계 프란치스코회 신부였다.

남한 땅에 들어와서 신앙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녀는 중국 지하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목숨을 내놓은 결단이었다. 그리고 2003년 1월 한국 땅을 디딜 수 있었다.

그녀에게 가장 불쌍한 이는 장애인도 거지도 아니다. 하느님 존재 자체를 모르고 그분을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는 이들이 지구상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다. 교황을 ‘평화의 사도’로 알고 있는 장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을 몰고 오길 바란다. 그래서 분단의 장벽이 눈 녹듯 사라져 북녘 땅 어딘가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을 부모 형제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길 바란다. <서상덕 기자>

조창환 시인

“참된 가난 살아가는 교황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조창환 시인(토마스 아퀴나스·69)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발표 이후 지속적인 묵상을 이어왔다.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차분했던 지난 1984년과 89년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의 기억도 되짚어봤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는 무엇보다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영원한 생명을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을 찾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겐 특별히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고. 조 시인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교황들은 사람들이 들고 메는 가마를 탔다”며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먼저 돌보고, 자신을 위해서는 가장 작은 것을 선택하는 교황님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까지 직접 찾아와 시복의 영광을 더욱 폭넓게 선포해주시니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조상을 둔 후손으로서 더욱 기쁘다”고 밝혔다.

특히 조 시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올리면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평생 헌신하다 하느님 곁으로 떠난 동창 선우경식 요셉의원 전 원장의 모습이 겹쳐진다고 전했다. 선우경식 원장이 생전에 보여준 모범을 통해 교회가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더욱 절감했던 조 시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곁에 늘 함께 계시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면, 이 분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도 정말 교황님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먼저 일해야 한다”며 “최근 지나치게 비대화되고 세속화되는 교회 모습에 관해 지적하시는 교황님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정아 기자>

서상덕 기자,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