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스라엘 이야기] 샬롬의 비둘기

김명숙(소피아)
입력일 2016-02-23 수정일 2016-02-23 발행일 2016-02-28 제 2983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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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상징… 순수함과 충실함 드러내

예수님 세례 때 성령 형상 묘사
노아의 방주서는 희소식 메신저
순박한 반면 우둔하다는 약점도

필자가 이스라엘에 살 때, 언젠가 집의 뒷 베란다에 놓여진 세탁기 위로 비둘기 한 쌍이 날아들었다. 여기저기 탐색하는 듯하더니, 이내 지푸라기를 물고 와 둥지를 틀었다.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가 내 집을 찾아 주었을 때의 기쁨과 뿌듯함이란….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혹자는 “비둘기가 지저분해서 평화의 상징으로 적당하지 않다” 평하지만, 한 배우자와 평생 산다는 비둘기처럼 충실하고 절개 있는 짐승이 또 있을까? 이 때문에 아가(雅歌)의 화자는 연인을 비둘기에 비유했나 보다(5,2): “내게 문을 열어 주오, 나의 누이, 나의 애인, 나의 비둘기, 나의 티없는 이여!”

하나만 바라보는 성실과 평화로운 천성 덕에, 비둘기는 순수함의 상징이다. 예수님 세례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임하신 사건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성령은 비둘기처럼 순수하고 온유하므로, 성령으로 가득 차면 충실하고 순결한 덕을 닮게 된다는 것. 예수님 세례 때 요르단 강 위로 임하신 성령은 천지창조가 일어난 태초를 또한 회고하게 한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 곧, 한 처음 심연의 물을 감돌던 주님 영이 이번에는 요르단 강물 위로 내려오신 것인데, 다름 아닌 비둘기의 모습을 빌리셨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이 외에도 성경에 나타나는 비둘기의 심상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까치가 반가운 소식을 전하지만, 성경에서는 비둘기다. 노아의 방주 때 비둘기는 물이 말랐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노아는 처음 까마귀를 날려 보냈지만, 까마귀는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왔다(창세 8,7). 그 뒤 날려 보낸 3마리 비둘기 가운데 두 번째가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왔던 것이다(창세 8,10-11). 곧, 부정한 짐승인 까마귀(신명 14,11-20)는 허탕을 친 반면, 정결한 짐승으로 손꼽히는 비둘기는 희소식을 가져왔다. 정결한 비둘기는 성전 제물로도 봉헌할 수 있었다. 집짐승을 마련하기 벅찬 백성이 비둘기를 대신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레위 5,7: “작은 집짐승 하나도 마련할 힘이 없으면, 그는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한 보상으로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주님에게 가져다가,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며 비둘기 두 마리를 봉헌하셨다(루카 2,22-24 레위 12,6 참조). 때문에 성전 주변에는 비둘기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고 한다(마르 11,15 요한 2,14 참조).

프란스 피테르스 데 그레베르의 작품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비둘기도 약점은 있다. ‘곰처럼 우직하다’와 ‘미련 곰탱이’라는 말이 공존하듯, 비둘기는 순박하다 못해 우둔한 심상인 까닭이다. “에프라임은 비둘기처럼 어리석고 지각이 없다”라는 호세 7,11처럼 비둘기는 순수하지만 특별히 영리하지는 않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비둘기처럼 순박하되 뱀의 영특함을 더하라고 주문하셨나 보다(마태 10,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곧, 순박하되 우둔해지지는 말며, 영특하되 간교해지지는 말라는 뜻이다.

비둘기가 품은 이미지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라고 노래한 아가 2,14을 보자. 우리는 대부분 집비둘기에 친숙하지만, 야생 비둘기는 맹금이나 들짐승을 피해 절벽에 둥지를 튼다(예레 48,28 참조). 이 아둔하고 여린 짐승에게서 절벽 바위를 견딜 만한 생명력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 틈에서 새끼를 낳고 키워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이것이 바로 부드러움 안에 자리한 강인함으로써, 비둘기가 가진 또 다른 성격이다. 그러므로 비둘기 모습으로 임하신 성령은 순수하고 충실한 성정 외에 강인한 기상과 인내의 미덕을 함께 시사한다. 조그만 짐승이 이처럼 강해질 수 있는데, 작은 우주와 같다는 사람이야 하물며, 때때로 삶이 우리를 속여 바위처럼 팍팍하게 변할 때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틈에 둥지를 틀고 있을 나의 평화, 나의 비둘기를 불러 보아야 하겠다.

이탈리아 로마 갈리스도 카타콤베의 비둘기 벽화.

김명숙(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