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수원교구 양수리본당 ‘그림이 있는 바로크 음악제’

이주연 miki@catimes.krrn사진 주정아
입력일 2016-10-25 수정일 2016-10-26 발행일 2016-10-30 제 301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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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한 바로크 선율을 본당 공동체 찬미소리로 채색하다
고음악전문단체들 연주
신자들 무대 설치 등 재능기부
전교주일 맞아 열린 교회 지향

음악제 기간 중 10월 23일 마련된 ‘앙상블 양평 폴리포니’ 공연 장면. 다성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단체다. 합창음악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다성 음악이 좋아서 모이고 있다. 양수리본당 제공

“비참한 나의 운명!

나를 울게 하소서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이 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 중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카운터 테너의 고혹적인 음색에 실렸다. 헨델이 당대 최고의 카스트라토(현대의 카운터 테너)를 위해 만들었다는 곡. 쳄발로, 류트, 바로크 첼로 등 고음악기의 연주 속에 바로크 오페라 곡들 중에서도 가장 애창되는 아리아가 성전 천장에 닿았다.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과 연주자들이 함께 당대의 음악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수원교구 양수리본당(주임 유해원 신부)이 바로크 시대로 떠나는 음악여행을 마련했다.

바로 10월 19일부터 28일까지 열린 ‘2016 그림이 있는 바로크 음악제’였다. 고음악전문단체 ‘SEMF古음악앙상블’, 리코더 앙상블 ‘블록플뢰텐 서울’, 성악 앙상블 ‘앙상블 브와믹스’, ‘앙상블 양평 폴리포니’ 등 다양한 바로크 음악단체들이 5회 동안 각기 다른 연주 일정을 마련했고, 본당에 적을 둔 일곱 화가들의 작품 전시가 더해졌다.

‘17·18세기 유럽 음악’이라는, 다소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듯한 ‘바로크’ 음악이 주제였음에도 매 공연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바로크라는 용어조차 낯선 본당 어르신들조차 객석 앞자리를 채우고 연주곡의 선율에 귀를 맡겼다.

본당 측은 매 공연 전, 각 악기에서부터 연주곡들의 배경까지 상세한 곡 해설을 곁들였다. 바로크 음악을 처음 접한 이들도 무리 없이 음악의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82세의 나정희(체칠리아) 어르신은 “어린 시절 외국인 신부님에게 성가를 배웠던 순간이 기억났다”면서 “곡이름은 모르지만 중요치 않다”고 했다. “그저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데려다준 것 같아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번 음악제의 시작은 10개월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12월 부임 후 가정방문을 실시했던 유해원 신부는 신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함에 있어 아쉬워함이 없는 공동체,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히 느끼는 공동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13년이라는 짧은 본당 역사 속에 깃든 그 아름다움을 찬미 드리고 싶었고, 또 찬미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말씀으로 찬미하는 방안을 찾아 전 신자 성경필사를 시작했던 유 신부는 그러한, 손으로 말씀을 새기는 작업에 이어 음악과 미술을 통해 마음과 귀로 하느님과 만나는 자리를 떠올렸다.

일곱 명의 본당 신자 작가들 작품이 소개된 전시장. 평소 만남의 장소로 사용돼 오던 곳인데 깔끔한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서양화, 전통공예, 일러스트, 조소 작품 등 작가들의 대표작 20여 점이 전시됐다.

‘신자수가 893명에 불과한, 어르신들이 많은 작은 지역 본당이 감당할 수 있는 축제일까.’ 인간적으로 부담감도 컸지만 찬미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우선했다. 마침 본당 신자들 중에는 음악가 미술가들이 적잖았다. 리코더 연주가인 조진희(비오)씨가 음악 부분의 총괄을 맡았고, 그림 전시는 중견 화가 선종훈(프라 안젤리코)씨가 손을 거들었다. 바로크 음악이 주제로 정해진 것은 기존 클래식 공연장에서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 공연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 뜻이었다.

축제를 진행하는 과정은 본당 공동체가 ‘가족’으로서 좀 더 끈끈한 힘과 연대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출연자들은 재능기부를 자처했다. 걱정했던 무대 조명까지도 지원을 받았다. 뚝딱뚝딱 신자들의 손길이 닿으니 평소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 ‘살아있는’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탈부착식의 무대 설치에는 남성 신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마음으로 참여했다.

전교주일 기간을 음악제 시간으로 잡은 것은 ‘보다 열려있는 교회’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위치,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환경에서 하느님의 자비롭고 열린 모습을 널리 보이고 싶다는 뜻도 포함됐다. 유 신부는 “그것이 또 하나의 전교일 것”이라고 했다.

양수리본당의 이번 음악제는 특별히 본당 신자들과 지역민들에게 ‘문화 공간으로서의 성당’을 보여준 사례로서 눈길을 끈다. 도심에서 떨어져 문화적으로 소외될 수 있는 장소적 환경을 감안할 때 그 의미가 더 두드러진다.

“음악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신자들 모습이 행복해 보여 뿌듯했다”는 유 신부. “음악제를 계기로 좀 더 주님 마음에 드는 하나 된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더 사랑하면서 살자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양수리본당은 2003년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했으며, 2014년 새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양수리성당 전경. 2003년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했으며 2014년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성당 마당에 전시된 오광섭(다미아노) 작가의 ‘공명’.

선종훈(프라 안젤리코) 작가의 ‘완전한 평온’.

이주연 miki@catimes.krrn사진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