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할머니 손맛의 ‘마망 베이커리&카페’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7-02-14 수정일 2017-02-14 발행일 2017-02-19 제 303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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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곳 있어 행복… 손주 먹인다 생각에  정성 다해 빵 구워요”

수원교구 수정노인종합복지관 ‘마망 베이커리&카페’ 1호점에서 근무하는 어르신들이 웃고 있다.

“나이 먹은 사람을 여기처럼 환영해주는 데가 또 어디 있을까요, 호호호!!! 빵이 따끈따끈 구워져 나오면 꼭 내 손으로 책을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하얀 빵모자에 하얀 조리복을 입은 조혜도(글로리아·84) 할머니. 벌써 10년째다. 할머니는 수원교구 수정노인종합복지관(관장 조성갑 수녀)이 노인 일자리 및 노인 사회활동 지원 사업으로 운영하는 ‘마망 베이커리&카페’ 1호점에서 빵을 굽고 있다.

교사 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나니, “인생이 허망하더라”는 게 조 할머니의 말이다. 마음은 황폐해지고 몸은 나태해졌다. “안되겠다”는 생각에 성남시 분당구청을 찾았다. 다음날엔 곧바로 구청에서 알려준 수정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갔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빵 굽는 건 집에서도 안 해 본 일이었다. “처음엔 그저 한 1, 2년 하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벌써 10년이네요. 호호호. 너무 고맙고 너무 행복합니다.”

■ 60세 이상 어르신들 생기 가득

할머니를 따라 카페 뒤편 생산부로 들어갔다. 하얀 조리복을 입은 어르신 여섯 명이 빵반죽에 여념이 없었다. 갑작스레 기자가 들어섰어도 ‘당황하지 않고’ 조물조물 반죽을 하면서 손까지 흔들어준다. 노년의 외로움이나 무력감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생산부’는 ‘마망 베이커리&카페’의 핵심이다. 이곳에서는 오전 6명, 오후 5명의 어르신들이 2교대로 일을 한다. 이들이 만드는 빵과 과자에는 뭘 해도 설렁설렁 하지 않는 한국 어르신들의 손맛이 배어 있다. 생산부 외에는 ‘카페’와 ‘고객 관리부’, 그리고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배달부’가 있다. 고객이 3만 원 이상 구매하면, ‘건장한’ 할아버지 배달부들이 성남시 어디든 실어 나른다.

2005년 8월, 수정노인종합복지관 옆 경로당 건물 1층에서 ‘마망’이 문을 열었을 때는 겨우 6명의 어르신들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올해는 총 68명의 어르신들이 일을 한다. 근무시간은 각자 주 1~2회, 한 달에 총 60시간 미만이다. 최저 시급이지만, 보수도 받는다. 60세 이상이면 지원 가능하지만, 경험이나 소득 수준, 전문성 등을 바탕으로 선발 과정을 거친다.

■ 좋은 재료에 사랑 담뿍 정성 담뿍

1호점(성남시 수정구 산성동 2156)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서, 2009년에 2호점(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3292 1층), 그리고 2015년에 3호점(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186-2 1층)을 열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장관상도 수상했고, 지상파 TV 프로그램 등 방송 출연도 심심찮게 했다. 성공적인 운영의 비결은 무엇일까?

때마침 ‘마망 베이커리&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즐기고 있는 아기 엄마들의 말에서 답을 찾았다.

“유명한 대기업 제과점에서 파는 빵보다 훨씬 더 맛이 좋아요. 게다가 20~30% 저렴하고요. 커피요? ‘짱’입니다.”

부담 없는 가격, 어르신들 손맛이 아니더라도 ‘마망 베이커리&카페’의 먹거리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비결은 좋은 재료다. 자식이나 손주를 먹이는 엄마의 마음으로, 좋은 식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빵과 과자, 커피와 음료들이 맛이 없을 수 있을까. ‘마망’(maman)은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이다.

프로급 카페 매니저이자 숙련된 바리스타인 김가영씨도 할머니들을 친절하게, 하지만 엄격하게 지도한다. 자칫 레시피 대로 제대로 뽑히지 않은 커피가 있을까 철저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제빵기능사 윤태완씨는 할머니들과 유난히 죽이 잘 맞는다. 가르칠 때는 엄하고 무섭지만, 뛰어난 리더십으로 어르신들을 이끈다.

■ 적은 수익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구심점

‘마망 베이커리&카페’의 가장 큰 미덕은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들과 나누려는 마음이다. 워낙 싼 탓에 수익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래도 이웃들과 나눈다. 지난해 11월 30일엔 복지관 3층에서 ‘1·3세대 행복나눔 사랑잇기’ 장학금 전달식도 마련했다. 지역 내 초중고 학생 10명에게 총 5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힘을 내도록 격려했다.

사실 ‘마망 베이커리&카페’는 문을 열었을 때부터 장학사업을 하려 했다. 첫 3년 동안은 운영조차 힘들 정도로 고전했고, 이후에도 늘 운영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했다.

하지만 적은 후원금이라도 한 푼 두 푼 모아 지역 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해야겠다는 취지로 지난해부터는 장학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복지관 관장 조성갑 수녀는 “‘마망 베이커리&카페’는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하고, 어르신들에게 일하는 기쁨을 준다”면서 “‘마망 베이커리&카페’가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팍팍한 세상 속에서 마음과 마음을 사랑으로 이어주기를 항상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031-731-3393 수정노인종합복지관 일자리지원사업과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