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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21년 연재 인천주보 ‘바울로 만평’ 책으로 묶은 박흥렬 화백

최유주 기자
입력일 2017-02-27 수정일 2017-02-28 발행일 2017-03-05 제 303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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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으로 세상을 그렸다
사회교리로 세상을 성찰했다 

신발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한 사람 옆으로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만화. 그 옆엔 ‘자선주일- 도움을 청하는 자는 죽어가는 자이지만 그 요청을 외면하는 이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2007년 12월 16일자 인천주보에 실린 ‘바울로 만평’이다. 단 한 컷의 만화지만 보는 이들에게 던지는 묵상거리는 꽤나 크고 무겁다. 한 줄 글도 신앙인으로서 꼭 새겨야할 메시지들이다. 만평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시사적인 문제나 인물 등을 풍자해 하나의 컷으로 그린 만화를 일컫는다. ‘바울로 만평’의 작가 박흥렬(바오로·인천 하점본당) 화백도 작은 박스 하나에 만화와 문장을 담은 만평을 그려왔다.

박흥렬 화백이 만평 중 210편을 골라 엮은 책「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까닭」.

■ 인천주보에 ‘바울로 만평’ 1140편 연재

특히 ‘바울로 만평’은 그 주일에 성찰하고 묵상할 수 있는 내용을 소재로 창작했다. 이 만평은 신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1993년 4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무려 21년 9개월간 인천주보에 연재됐다. 작품 수는 1140편에 달한다. 연필과 붓으로 거칠게 그렸던 만평은 세월이 지나면서 컴퓨터와 타블렛 펜으로 깔끔하게 완성된 모습이다.

박 화백은 인천주보에 연재할 당시를 회상하며 “만평을 그리기 전 항상 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연결하려고 노력하다보니 개인적으로 신앙을 북돋우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림을 전공하거나 특별히 관련 교육을 받진 않았다. 처음엔 그저 자신이 받은 탈렌트를 활용해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사회문제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 민간단체나 개인의 요청으로 그린 만화들이었다. 그러다 1992년부터 인천일보에 시사만평을 그리면서, 본격적으로 만평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인천주보에 만평을 그리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면서부터다. 인천교구는 신자들이 각종 사회문제에 관해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에 나서도록 돕는 노력의 하나로 만평을 기획했다.

박흥렬 화백이 인천주보 ‘바울로 만평’에 연재한 작품들.

박흥렬 화백이 인천주보 ‘바울로 만평’에 연재한 작품들.

■ 4대강 반대·탈핵과 같은 주제로 만화책도

사회적 소재를 다루는 일간지가 아니라 신앙과 관련된 소식지에 실을 만평을 그리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주보에 만평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들어야했다. 하지만 박 화백의 꾸준한 노력은 이러한 편견을 깼다. 그의 작품들은 ‘신앙적 의미’와 ‘사회교리’를 동시에 담아내는 만평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그의 만평 중 한 작품에는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예수가 있다. 예수는 한 마디, ‘미안하다’고 말한다. 2014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 당시 그린 그림이다. 그해 위령의 날에는 세월호 참사로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들의 모습과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한 컷에 담았다.

얼마 전 박 화백은 그동안 그려온 만평들을 한데 정리·결산하는 작업을 끝냈다. 그리고 그중 210편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까닭」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 ‘인생·교회·사회’ 세 부분으로 나눠 각 작품들을 실었다.

오랜 기간 그린 만큼, 작품에서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하지만 그는 ‘없다’고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평을 통해 가톨릭 사회교리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 하나로 그려왔기 때문이다. 그의 만화는 만평뿐 아니라 사회교리와 4대강 건설 반대, 탈핵 등을 주제로 한 만화책으로도 제작, 배포된 적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사회교리에 관심이 적을 뿐 아니라 불편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부분에 관심을 두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흥렬 화백이 인천주보 ‘바울로 만평’에 연재한 작품들.

박흥렬 화백이 인천주보 ‘바울로 만평’에 연재한 작품들.

최유주 기자 yuj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