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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특별기고 - 평화를 기원하며…

이은형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18-06-19 수정일 2018-06-19 발행일 2018-06-24 제 310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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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철저히 단절됐던 북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도
한걸음 한걸음 평화를 향한 걸음마
우리 함께 인내심 갖고 돌봐야

2018년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역사적인 대전환의 시기를 우리는 마주하고 있습니다. 분단 73년과 끔찍한 전쟁, 첨예한 갈등과 대결의 정전 65년의 비정상적 시간들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를 갈망하는 촛불시민들의 염원과 평화를 간구하는 신앙인들의 기도가 어우러져 상상조차 힘들었던 일들이 연속해서 현실화되고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마무리했고, 남북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감동적인 드라마를 선보이며 ‘판문점 선언’을 채택했으며, 긴 시간 적대관계를 유지하며 말 폭탄을 주고받던 북미 정상들이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향한 위대한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가 갈등과 분열의 상징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 속에 자리하게 됐습니다. 평화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거져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에 유념해야 합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기도 그리고 노력이 이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65년의 긴 전쟁을 마무리하는 종전선언과 더불어 평화정착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교류와 협력 등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무엇보다 먼저 분단 73년을 살아오면서 우리 내부적으로 쌓아왔던 장벽들을 허물어야 합니다. 비정상적 분단체제 속에 뒤틀린 개인과 사회의 모순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적대적 공존’이 아닌 ‘상생’의 시간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평화를 위한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합니다. 우선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일치’를 도모하라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 이 원칙은 이미 1991년 남과 북 사이에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잘 표현돼 있습니다. 그 합의서 제1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이 원칙을 기반으로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하여 발표된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통일 방안이 1994년 확정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입니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종교교류도 이뤄져야 합니다. 분명하게 전제돼야 할 것은 북한은 지금 우리의 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체제 속에서 지난 73년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3대 세습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은 일부 중동국가들의 왕정체제에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적으로도 국가의 강력한 통제 속에 매우 제한적인 종교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들의 그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신앙적인 교류를 이어가면서 점차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상태로 살아온 북한이 정상회담을 통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아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개방정책을 펼치는 것이기에 매우 신중할 것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에게 처음부터 뛰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수 있도록 인내를 갖고 돌보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많은 난관이 놓여있을 것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기억하며 평화의 접촉면이 더 커지고 넓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 신앙인들의 기도가 더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계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곧 사랑의 나눔을 통해 참 평화가 자리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평화의 길에 함께 동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순간 우리 신앙인들이 늘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떠오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뤄질 수 있는 시간을 우리는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 안에는 늘 많은 유혹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흔드는 온갖 거짓 뉴스들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은형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