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호스피스·완화의료에 헌신해 온 노유자 수녀

정리 최유주 기자
입력일 2018-07-24 수정일 2018-07-25 발행일 2018-07-29 제 310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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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이자 간호사로서 고통 받는 분들 돕고 싶었습니다”
1980년 미국서 호스피스 접하고 국내 도입·발전 위해 노력
준비된 죽음 잘 맞이하도록 돕는 것이 ‘호스피스·완화의료’
사별가족 아픔까지 치유하는 가정·사회에 꼭 필요한 의료활동
독립호스피스센터 늘어나길… 교회, 호스피스 교육 강화해야

호스피스·완화의료라는 개념이 국내에 정착하기 전부터 이에 대해 연구하고 한 길을 걸어온 수도자가 있다. 바로 노유자 수녀의 이야기다.

노유자 수녀는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간호사(1970년)를 시작으로 동대학 간호학과 학과장(1988~1990년),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원장(1990~1996년), 성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장(2007~2015년) 등을 역임했다.

의료사도직 실천자이자 교육자로서 한평생을 헌신해 온 노유자 수녀를 만나봤다.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날짜: 2018년 7월 19일

◎장소: 서울 명동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노유자 수녀는 “우리나라에도 독립호스피스센터가 마련되고, 또 가정호스피스가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열망과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 정다빈 기자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1963년에 샬트로 성바오로 수녀회에 입회하셔서 55년째 수도자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도자의 길을 택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노유자 수녀(이하 노 수녀) : 어린 시절 충청남도 서천에서 자랐습니다. 시골이다 보니 동네와 학교 근처에 성당이 없어 가톨릭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서용희 선생님을 만났고, 그 분 말씀을 통해 막연히 종교와 신앙생활, 수도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서울 신당동에 있는 작은아버지 집에 살게 됐습니다. 그때 집 근처에 성당이 있었고 성당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외로웠던 서울 생활에 위안이 됐습니다. 또 그곳에 계시던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님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했습니다. 당시 가족 모두 비신자였는데 제가 처음으로 세례를 받게 됐습니다. 그렇게 신앙 생활을 하면서 수녀님들을 뵙고 점점 수도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수도성소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주 성체조배도 했습니다. 성체조배를 하며 하느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됐습니다.

-장 국장 : 최근 젊은이들의 수도성소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수도성소를 꿈꾸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노 수녀 : 성소는 솔직히 말해 저의 행복을 위해 선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생활을 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을 오롯이 섬기고 따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곧 봉헌을 통해 이웃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수도성소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순명이 어렵지 않나’라고 막연히 생각할 수 있는데 수도생활은 속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비록 조금 어려워도 엄청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웃에 봉사하려고 수도생활을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말고 주님께 계속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수도회의 문을 두드려 보길 바랍니다. 수도회마다 성소실과 성소담당자가 있을 것이니 담당 수도자와의 만남을 요청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장 국장 : 수녀님께선 일관되게 ‘의료’ 관련한 소임을 맡아오셨고 특히 호스피스 분야에선 권위를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균관대 영문과를 다니던 중 수녀회에 들어오셨고 입회 전 전공과 동떨어진 간호대학에 입학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또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호스피스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노 수녀 : 어릴 때 의사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가족들의 반대가 있어 영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수련기를 마치고 수녀원에서 학업을 계속하라고 하셔서 저는 영문학보다 간호학이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간호학과에 입학했던 1960년대에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라는 용어도 잘 사용하지 않던 시절입니다. 제가 간호사가 되고, 1970년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에서 일하던 1년 동안 암환자 특히 말기환자들이 많이 입원했습니다. 그분들의 심한 고통을 보면서 수녀이자 간호사로서 정말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 후 가톨릭대 의과대학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80년 미국으로 연수를 가서 호스피스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열망과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노유자 수녀가 2003년 11월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센터 집무실에서 호스피스의 창시자 시슬리 선더스 박사를 만난 모습. 노유자 수녀 제공

-장 국장 : 1980년과 1998년 미국에서, 2002년 유럽에서 호스피스 연수를 하면서 국외 호스피스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특히 호스피스의 창시자 시슬리 선더스를 만났을 때, 또 선더스가 설립한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센터를 방문했을 때 얘길 들려주세요.

▲노 수녀 : 호스피스의 대모라고도 일컫는 시슬리 선더스를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처음 호스피스를 시작할 때의 전략과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예들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운영에 관한 여러 방법들을 가르쳐줬습니다.

또 유럽 연수 땐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영국 등의 독립호스피스센터를 돌아보며 실제로 환자 옆에서 실습하도록 배려해주고 숙소까지 무료로 제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대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고 느낀 호스피스의 경험과 체험을 기억하며 우리나라에도 유럽호스피스 같은 특히 독립호스피스센터가 여러 곳에 설립되길 기원합니다.

-장 국장 : 호스피스 병동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이에 대한 관심도 커가고 있지만, 여전히 호스피스의 개념이 정착됐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 병실이나 가정이 아닌 호스피스 시설에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또 죽음의 참된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노 수녀 :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은 말기환자가 통증이 심하고 여러 증상이 있을 때 고통을 경감시키고,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질을 높여주고, 무엇보다 희망을 갖고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돕습니다. 아울러 사별가족들이 여한이 없도록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삶의 질, 행복을 위해 협력합니다. 이런 호스피스 활동은 개인, 가정,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이끌 수 있는 전문적인 의료 활동이기 때문에 꼭 필요합니다.

-장 국장 : 저서 13권 발간, 56편의 논문을 내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최근에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미있는 삶의 완성」을 출간하셨습니다. 책을 낼 때까지의 과정과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

▲노 수녀 : 1980년 미국에서 호스피스를 접하고 온 후 1986년 「암환자」라는 책을 통해 호스피스에 대한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에는 「호스피스와 죽음」이라는 저서를 간호학과 교수들과 공동집필했습니다. 그 후 책들이 출판되고 국가 정책이 변하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발전하고 있고 법도 제정돼 새 책에 여러 학자들이 힘을 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윤리, 신학, 인문, 사회, 의학과 간호학과 교수, 호스피스 전문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각 분야 전문인들과 함께 현 상황에 부합되는 책으로 집필했습니다. 독자분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성찰하게 되고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전문 및 표준교육, 학부생과 대학원생, 관심 있는 팀 구성원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관련된 연구와 실무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책은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심이 있는 의사, 간호사, 사목자,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치유의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장 국장 :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원장과 성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장으로 재임하면서 현장에서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을 만나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노 수녀 : 한 환자에게 죽음이 임박해 오는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으니 “일생 동안 사업을 하면서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는데 전시회 한 번 못하고 죽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인과 함께 전시회를 준비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선순위를 정해 실천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장 국장 : 우리 사회에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제대로 자리 잡고 발전하기 위해선 여전히 과제가 많습니다. 교회와 사회가 어떤 노력을 더해야 할 지 조언부탁드립니다.

▲노 수녀 : 가톨릭대 산하로 호스피스 병동은 있지만 독립호스피스센터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 독립호스피스센터가 늘어나고 병동과 연계된 가정호스피스가 발전됐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교구별 혹은 지역별 연계 호스피스 완화 의료 모형이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신부님, 수도자, 성직자, 일반인 상관없이 호스피스에 대한 교육이 실시돼야 합니다. 또 모든 신자들이 호스피스를 배우며 자신의 죽음 준비와 그에 대한 건강한 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점진적으로 호스피스 교육에 대한 홍보를 강화했으면 합니다.

노유자 수녀(왼쪽)가 7월 19일 서울 명동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에서 가톨릭신문 장병일 편집국장과 만나 수도자로서의 삶과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리 최유주 기자 yuj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