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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순직(殉職) / 이연세

이연세 (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8-08-07 수정일 2018-08-07 발행일 2018-08-12 제 310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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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 ‘맑게 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벼락’을 뜻합니다. 지난달 7월 17일 포항비행장에서 이륙 중 메인로타(주날개) 이탈로 추락한 ‘마린온’ 헬기 추락사고가 바로 이에 해당되겠지요. 이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다섯 명의 고귀한 꽃들이 안타깝고 허망하게 스러져갔습니다.

포항비행장과 해병1사단 항공대는 저와 인연이 매우 깊은 곳입니다. 2001년 6월 항공대대장으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부여받은 임무가 포항해변에서 해병대원들의 낙하공수를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임무를 시작으로 우리 대대는 항공기를 보유하지 않은 해병부대와 수많은 합동훈련을 함께 했습니다. 경북지역으로 비행임무를 갈 때마다 포항비행장 내 해병대 항공대에서 연료보급과 기상파악, 훈련협조 등을 제공받았습니다. 이후 양쪽 부대는 의기투합해서 자매결연까지 맺었었죠.

이렇게 인연 깊었던 부대의 참혹한 사고 소식을 접하니 꼭 내가 사고를 당한 듯 사고 순간이 투사됐습니다. 메인로터가 떨어져 나가 돌덩이 떨어지듯 항공기가 추락할 때, 어찌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조종사는 끝까지 조종간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타는 애기(愛機)와 함께 산산이…. 그 극한의 고통을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조종사 양성교육을 받을 당시, 교관은 조종사의 임무수행 자세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조종사는 임무수행 중 항공기에 이상이 생기면 언제든 사고를 겪을 수 있다. 추락할 때는 나는 죽더라도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끝까지 조종을 해야 한다. 항상 군번줄을 목에 걸어야 하고 깨끗한 속옷을 입어야 한다. 조종복이 곧 우리의 수의다”라고. 그 이후 이 말은 조종간을 놓는 순간까지 지켜온 수칙이 됐습니다.

옷장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했던 조종복을 꺼내 봅니다. 양 어깨의 계급장, 비행마크와 이름표, 태극기, 그리고 오랫동안 나와 생명을 같이 했던 빛바랜 군번줄과 인식표를 감싼 천주교 신자임을 나타내는 표식이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하느님의 넘치는 자비와 은총으로 무사히 예편하고 가족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있었음을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군인에게 ‘순직(殉職)이란 무엇일까’를 묵상해 봅니다. 다섯 명의 해병대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군인의 숙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희생은 우리 국민들 가슴에서 오래오래 살아 국가를 지켜내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께서도 순직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꺼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상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되셨습니다.

순직하신 고인들의 영원한 안식과 모든 조종사들의 안전비행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청합니다.

이연세 (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