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베트남 주교회의 정평위원장 응우옌 타이 헙 주교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8-09-11 수정일 2018-09-12 발행일 2018-09-16 제 3112호 1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아시아 현실과 특성 반영한 사목 체계 갖춰야”
국내 베트남인 18만 명 넘어 이주민 사목 협력과 배려 절실
‘교육·인재양성’ 활발한 연대로 서로의 복음화 터전 마련되길

베트남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교회와 닮은 점을 많이 볼 수 있다. 순교로 스러져가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신앙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믿음을 이어오는 모습이 가장 대표적이다. 베트남교회 순교성인은 118명이며, 현재 순교자 2500여 명의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또한 베트남교회가 공산 정권 아래에서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범은, 한국교회가 북한과 중국 선교 등에 적용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최근 들어선 베트남 결혼이주민은 물론 젊은 유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대거 밀려들면서 베트남사회와 한국사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호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에서는 베트남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자 빈(Vhin)교구장인 응우옌 타이 헙 주교(Paul Nguyen Thai Hop·73)와의 특별인터뷰를 통해, 아시아교회가 겪고 있는 주요 문제 중 하나인 이주(민)를 중심으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한국과 베트남교회의 연대 방향 등을 짚어본다.

1972년 사제품을 받고 스위스 프리부르대에서 서양철학 박사학위를, 브라질 브라질대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성토마스아퀴나스대와 브라질대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2010년 주교품을 받았다. 베트남 빈교구장이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 박원희 기자

응우옌 타이 헙 주교는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아시아에서 태어나셨는데, 정작 아시아 대륙의 신자 수가 가장 적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우리의 고향에서 복음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응우옌 타이 헙 주교(이하 헙 주교)가 한국 신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질문도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내·외적으로 고민하는 한국교회의 질문과 다르지 않다.

헙 주교는 무엇보다 일자리를 갖지 못해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나라로 이주해 생활하는 이주민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어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전쟁 등을 겪진 않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세속화, 세계화 등으로 가족과 떨어져 낯선 이국땅에서 생활하고, 그나마 불법으로 체류하게 되는 어려움도 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헙 주교는 “산업과 과학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더 나은 삶을 찾아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베트남처럼 인구가 많고 가난하며 사회적으로 제재가 많은 나라에서는 국내로든 국외로든 이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현대사회 안에서 이주와 이민은 이른바 ‘새로운 노예 제도’라 불릴 정도로 쟁점이 됐다. 게다가 아시아는 이주와 이민을 위해 떠나는 지역으로, 떠나는 이나 남은 이나 아시아인이 겪는 어려움은 더욱 큰 것이 현실이다.

실제 베트남교회와 한국교회가 보다 구체적인 사목적 관계를 맺게 된 분야로도 이주민 사목을 꼽을 수 있다. 현재 베트남 이주민들은 미국과 타이완에 이어 한국에 가장 많이 거주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2018년 1월 기준)에 따르면 국내 베트남 이주민 수는 결혼이민자 4만2000여 명을 포함해 18만6000여 명으로, 국내 이주민 중 차지하는 비율이 조선족과 비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러한 현실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헙 주교는 우선 “이주민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무엇보다 그들이 노동력과 임금 등을 착취당하거나 소외당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교회도 이를 위해 베트남 이주민들이 있는 나라의 교회와 연대하고 사제와 선교사를 적극 파견해 돕는 사목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해외 이주민들을 위한 사목 현장 곳곳에는 차별과 착취라는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 각국 이주민에 관한 법과 정책적인 면에서도 불합리한 점이 많고, 현지 교회와의 사목적 협력 또한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각 교구별로 이주민 지원을 늘이고 있고, 국교 등이 지정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주민들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헙 주교는 “베트남 이주민 중 특별히 젊은이들이 한국에서도 활발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국교회에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 “보다 많은 베트남인 사제들이 한국에서 베트남인 사목을 도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길 청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헙 주교는 한국교회가 베트남 현지에서 교육을 지원하는데 힘써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베트남교회는 여전히 공산당의 간섭과 각종 차별 등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종교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나, 실제 교회는 정부와 공산당 정책에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유물론, 즉 “물질이 1차적이며 근본적인 것이고 물질로서의 세계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보는 철학적 이론”을 근간으로 행동하기에, 가톨릭을 비롯한 각 종교에 대한 제재는 그들에겐 당위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베트남의 교육 여건은 매우 열악해, 체계적이고 우수한 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가톨릭학교는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에 헙 주교는 한국교회가 베트남교회와 일반 교육 및 인재 양성면에서 더욱 활발히 연대한다면 서로의 복음화에 탄탄한 터전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제·수도자 양성 차원에서도 보다 많은 베트남의 젊은 사제 및 수도자들이 한국에서 우수한 학문과 기술 등을 배울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국교회 젊은이들을 향해서도 헙 주교는 “한국사회를 이렇게 발전시키고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준 부모세대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베트남뿐 아니라 라오스,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등 사회·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아시아 나라들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만날 것”을 권했다.

특히 헙 주교는 “유럽교회의 조직과 사목적 방향 등을 아시아 지역에 무조건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아시아만의, 아시아교회만의 현실과 특성을 잘 반영한 사목 체계를 갖추는데 더욱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불교, 힌두교 등 타종교와도 적극 대화하고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서로 배워야 한다는 것도 헙 주교의 의견이다.

“지금이야말로 아시아교회 신자들이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때입니다. 그리스도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여러 큰 종교들이 탄생하고 성장한 아시아. 이곳이 과연 ‘다양한 꽃들이 시합하는’ 곳일까요?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할까요? 우리의 사랑 실천과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이 바로 그 해답을 줄 수 있습니다.”

■ 베트남교회는…

1533년, 중국으로 향하던 프랑스 선교사가 베트남에 발을 들이면서 가톨릭교회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1615년 예수회가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선교활동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1666년 최초의 신학교가 설립됐고, 1668년 두 명의 베트남인 사제가 처음으로 사제품을 받으면서 꾸준히 성장해왔다. 하지만 17세기 초반부터 19세기 들어 1883년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할 때까지 수십 차례 박해를 받아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현대 들어서도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북베트남 공산 정권의 박해를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베트남 신자들은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교우촌을 형성하고 신앙생활을 유지해왔다. 1988년 베트남 정부가 신앙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면서 교회는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현재(교황청 「교회 통계 연감 2016」 기준) 베트남 신자 수는 683만5000명으로, 인구 대비 약7.4%의 비율을 보인다. 교구 수는 26개, 총 본당 수는 3114개이며, 주교 46명을 비롯해 교구 사제 3921명, 수도 사제 1608명, 남녀수도자 5만4229명이 활동 중이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