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33) 작고 보잘 것 없는

박그림 (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8-10-01 수정일 2018-10-02 발행일 2018-10-07 제 311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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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면서 옷깃을 여미는 계절. 하늘은 깨어질 듯 푸르고 나뭇잎에는 가을빛이 스며든다. 이런 날이면 길을 나서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은 벌써 숲속을 헤매고 있다. 가파른 산줄기를 타고 오르면서 산양의 흔적을 찾았던 날, 하루 종일 산양을 찾아다니다 흔적을 만나게 되는 순간 온몸을 타고 흐르는 감동은 힘들고 지친 몸을 일으키기에 넉넉한 힘이 됐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발자국 속에 가득 담긴 생명의 경이로움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세상을 보여줬고 바위 턱에 소복이 쌓여 있는 산양 똥에서는 얼마 되지 않은 듯 냄새가 진하게 와닿았다. 납작 엎드려 코를 처박고 똥냄새를 가슴 속 깊이 빨아들이며 냄새 속에서 느껴지는 산양의 몸을 더듬어 나간다. 작지만 단단한 뿔, 소처럼 크고 순한 눈, 바람에 날리던 빛나는 털, 야생의 당당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던 모습이 스치며 지나간다.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이곳에서 살아온 생명이 선뜻 다가와 안기는 듯했다.

자연은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생겨난 것이 없음을 깊이 깨닫게 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숲속에서 발자국은 끊길 듯 이어지면서 나를 끌고 산줄기를 넘는다. 산양을 찾아 산비탈을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곤 한다. 싸늘한 저녁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고 온종일 오르내린 산줄기가 어둠 속에 잠긴다. 커다란 바위 옆에 자루 같은 작은 천막을 치고 땅속으로 꺼질 듯 누웠다. 밤새 나무를 낚아채려는 듯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에 작은 천막은 날릴 듯이 펄럭였고 내 한 몸 담아내기에도 힘들어 했다.

머리를 내밀고 코끝에 와닿는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득히 먼 곳에서 와닿는 별빛을 받으려는 듯 온몸을 하늘로 펼치고 선 나뭇가지에는 별들이 반짝이며 매달려 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별을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면 한 마리 산양이 돼 산을 오르내리다 새벽을 맞는다. 검푸른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끔찍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루를 열고 있다.

광활한 우주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가. 무엇이 두드러지고, 무엇이 잘났다는 것일까. 자연 속에서 뭇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 생명일 뿐이지 않은가. 먼지처럼 작고 푸른 별 지구에서 우리들의 삶은 뭇 생명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탐욕으로 치닫고 있다.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여! 생태적 회개가 절박하다!

박그림 (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