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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 전국 집회에 참가한 한·일 교회 평화 활동가들

일본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11-27 수정일 2018-11-28 발행일 2018-12-02 제 312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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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인권의 문제
 한·일 함께 정의로운 해결을

평화의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가 교회 안팎에 넘실댄다. 그러나 지금도 존재하는 갈등과 아픈 과거, 특히 식민지배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아시아 전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 교회의 평화 활동가들은 11월 24일 일본 나고야 아스타 노동자의 집에 모여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며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시아 신앙인들의 연대로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 네트워크 발족을 위한 첫 만남에 가톨릭신문도 동행했다.

11월 23~24일 일본 나고야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가족’을 주제로 제40회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 전국 집회가 열렸다. 첫날은 경제적 불평등을 주제로 한 전체 회의가, 둘째 날은 총 16개의 주제별 분과 회의가 진행됐다. 일본 전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신자들은 각자의 관심에 따라 분과 회의에 참석했는데 주제는 사형제 폐지, 탈핵, 장애인 복지, LGBT(성적 소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 가운데 제3분과 회의가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양국 교회의 연대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제1발제를 맡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김선실(아기 예수의 데레사) 상임대표를 비롯해 총 12명의 성직자와 수도자,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일본에서는 분과 회의를 주최한 일본 예수회 나카이 준 신부(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장)를 비롯해 일본 전역에서 총 40여 명이 참가했다.

■ 과거를 극복한다는 것의 의미

참가자들은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논의는 역사 문제를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에 뜻을 모았다. 특히 ‘과거를 극복하는 것의 의미’와 ‘진정한 화해’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기조강연을 맡은 일본 도시샤대학교 역사학과 오타 오사무 교수는 과거 청산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과거를 극복하는 일은 여전히 남겨진 과제라고 말했다. 오타 교수는 일제의 강제 동원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이론 자체가 식민지 지배 정당화론에 기초한 것이지 식민지 지배와 전쟁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이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더불어 조약이나 법에 따른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의 폭력성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식민지 지배로 인해 폭력이나 인권 침해를 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나 아픔은 이 과정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오타 교수는 과거의 극복은 피해자 인권과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에 집중해야 하며 화해는 결코 협정으로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를 극복하고 화해를 이뤄나갈 것인가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오타 교수는 “식민지배의 역사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를 당연하게 여기는 원천이 됐다”며 “현재와 미래의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나 여성, 성적 소수자,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를 멈출 때 진정한 식민지배의 역사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24일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 분과 회의 후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한국과 일본 참가자들.

■ 평화 실현을 위한 신앙인들의 연대

신앙인들은 과거를 극복하고 화해를 앞당기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으며 또 앞으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김선실 상임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역사에 대한 소개를 통해 인권 회복과 평화 실현을 위한 한국 가톨릭 신앙인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했다. 김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와 여성인권 문제가 결합된 문제로 그 어느 문제보다 화해와 평화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일본 교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연대해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역사의 정의로운 해결을 통해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이 이뤄진다면 이는 피해자들이 바랐던 것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과 전쟁 반대 메시지를 알리며 동아시아 평화 실천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뒤이어 히로시마교구 사회사목국 후루야시키 가즈요 수녀(일본 원조수도회)는 한일 가톨릭교회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연대해 온 역사를 소개했다. 후루야시키 수녀는 1970년대 지학순 주교와 김지하 시인의 구명운동은 일본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 눈을 뜨고 한국 교회와 연대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위해 연대해 싸워 온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대와 실천이 교회 전체로 확장되지 못하고 일부의 운동에 그친 것은 아닌지 과제를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연대는 지속돼야 하며 이제는 구체적인 연대의 실천 방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기조강연과 발제, 토론이 끝난 후에는 한국과 일본의 참가자들이 세 개의 소그룹을 만들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고야교구에서 참가한 고로즈미씨는 “남북 정상이 서로 만나는 모습을 보고 기쁘면서도, 결국 분단의 원인은 일본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기도 했다”며 “일본인으로서 미안함과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본인 참가자는 한일관계에 관심이 없었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자신의 할머니가 조선인을 죽였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위한 활동에 깊이 참여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더불어 “한국의 촛불집회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며 “신앙인들부터 빛을 향해 작은 일이라도 조금씩 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11월 24일 나카이 준 신부(가장 왼쪽)가 한국 참가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 네트워크를 위하여

일본 원조수도회 야마모토 키쿠요 수녀는 “과거의 극복을 위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화해와 평화를 위해 어렵게 모인 이 만남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계속 이어나갔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참가자들은 과거의 극복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보편의 과제라고 의견을 모았다. 또한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신앙인들이 진정한 화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실천의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히도츠바시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이규수(베드로)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연대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지역 공동체, 시민 사회가 중심이 된 연대의 모델로 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분과 회의를 주최한 나카이 신부 또한 “이번 만남을 계기로 중국,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