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무소의 뿔처럼…

이연세 (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8-11-27 수정일 2018-11-27 발행일 2018-12-02 제 312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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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오후 아홉 시를 훌쩍 넘긴 시각에 모자를 푹 눌러쓴 S가 방문했습니다.

“내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합니다. 건강하게 훈련 잘 받고 할아버지처럼 멋진 군인이 되겠습니다.”

엉거주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한 다음, 어색한 몸짓과 겸연쩍은 표정으로 싹 밀어버린 머리를 매만졌습니다. 아내는 아들 이상으로 사랑하는 손자뻘 되는 S를 꼬옥 안았습니다. 눈가가 촉촉해지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왜 제 가슴까지 애잔함이 몰려왔을까요. 만18세! 부모는 물론일 테고, 우리 부부 눈엔 아직 어린애지요.

귀밑머리 솜털이 보슬보슬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부사관을 지원했습니다. 부모는 지원서를 놓고 ‘아직 고등학생이고 경쟁률이 상당하다는데 설마 합격하겠어’라는 생각에 걱정 반, 건성 반으로 동의를 했답니다. 그런데 설마가 현실이 됐죠. 필기시험을 가뿐하게 통과하더니, 신체검사와 체력검정 그리고 면접을 우수하게 마치고 최종합격을 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군문에 들어선 것입니다.

S가 직업 군인의 꿈을 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까이 살았기에 자주 왕래하며 지냈습니다. 부대의 민간인 초청행사나 지휘관 이취임식에 부모와 함께 참석하며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 나는 커서 할아버지처럼 군인이 될 거야”라는 말을 했다는데 정말 실행할 줄은 몰랐다고 하더군요. 먼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군특성화고등학교를 선택했고, 부사관이 되기 위한 준비를 혼자 했다니 참으로 대견합니다.

입대 후 3주가 지났을까요. 부사관 후보생이 된 S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바쁘게 날려 쓴 필체 속에서도 ‘훈련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논산훈련소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 열의(熱意)로 가득 찬 눈매, 다부진 어깨, 맵시 나게 눌러쓴 베레모에서 한 명의 믿음직한 용사를 봤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분명 S도 입대 전, 흔하게 떠도는 군에 대한 과장된 얘기를 많이 들었겠지요. 그에게도 막연한 두려움으로 심적인 압박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숭고한 가치를 초지일관으로 이뤄낸 S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냅니다. 부모의 그늘에서 방향을 잡지 못해 고민하는 또래들과 비교해 보면 굳은 의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S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후보생 교육은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극한의 인내를 요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굴의 용기와 긍정적 믿음으로 장애물을 하나하나 극복하고 용감한 전사로 새로 태어나길 기도드립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는 행복합니다.

이연세 (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