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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일본교회의 삼중대화 노력 3(끝).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연대-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를 가다

일본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12-18 수정일 2018-12-19 발행일 2018-12-25 제 312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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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동포·외국인 노동자… 약자의 손을 잡아주다

교회 테두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만나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아시아 땅에서 구현한 삼중대화의 핵심일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종교와 국경을 넘어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연대해 온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소장 나카이 준 신부)는 약자와 더불어 사는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의 대화’를 실천해왔다.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들과 열악한 환경에 맞서 투쟁해 온 노동자들의 아픔이 서린 도시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연대의 구심점,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를 찾았다.

연대의 십자가.

■ 맞잡은 손으로 만든 연대의 십자가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이하 ‘센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연대의 십자가’다. 맞잡은 손과 손이 십자가 형상을 이룬 모습처럼 센터는 1969년 설립된 이래 시대에 따라 역할을 달리하며 인권 운동, 환경 운동, 평화 운동 등에 앞장섰다.

1970년부터 지난해까지 센터의 소장을 지낸 하야시 히사시 신부는 초창기 활동의 중심은 ‘노동 운동’이었다고 설명한다. 시모노세키는 현재 인구 26만여 명(2017년 기준)의 작은 도시지만,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중화학 공업이 발전하며 중요한 산업시설들이 유치됐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 문제가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센터는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입법 활동, 노동자 교육, 노조 조직화를 위한 다양한 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노동 분야를 넘어 환경, 안보, 정의, 외국인 이주자, 소수자 인권 옹호와 같은 분야로 지평을 확장했다. 센터가 추구하고 연대하는 수많은 주제의 공통점은 결국 ‘평화’다. 하야시 신부는 센터의 활동을 크게 세 분야로 정리한다.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환경평화’, 외국인 노동자 억압에 대항하는 ‘인권평화’, 제국주의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판하고 재일 동포 차별에 맞서는 ‘역사평화’다.

센터의 역할은 다양한 시민 활동이 서로를 지지하고 만날 수 있는 구심점이 돼 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단체들이 센터의 공간과 자원을 활용해 강의, 연수, 회의 등을 진행한다. 센터는 동티모르 독립, 한국과 일본교회의 연대 등 국제적 연대의 거점으로도 활약한다. 하야시 신부는 “억압받는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전진하는 것이 센터의 미션”이라고 말했다.

11월 27일 야마구치 조선학교 유치부 수업 중 아이들과 함께 한 나카이 준 신부(왼쪽에서 두번째).

■ 복음화, 함께 살아가는 것

지난 50여 년간 센터의 활동은 ‘가톨릭교회’ 내에 머물지 않았다. 물론 센터가 소속한 일본 예수회가 운영을 지원하고, 하야시 신부와 현재 소장인 나카이 준 신부는 지역 본당을 찾아 사회교리를 강의한다. 그러나 센터와 연대해 온 노동, 인권, 평화 활동가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일본교회 안에서도 가톨릭 사제가 교회 밖의 인권 운동에 앞장서는 일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신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것이 복음화라고 믿는 센터의 정신은 지난 50년 세월 동안 변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새 소장으로 부임한 나카이 준 신부는 재일 동포들이 받는 차별과 배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일제시대 재일 동포들의 민족 교육을 위해 세워진 조선학교는 해방 이래 수많은 핍박을 받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 등 정치적 사건이 쟁점화될 때마다 공격의 대상이 돼 왔다. 시모노세키에도 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마구치 조선학교가 있다. 학교가 위치한 재일 동포 거주 지역은 ‘변소’라는 모욕적인 별명이 있었던 곳이다. 시당국이 상하수도 시설을 이 지역에는 오랜 기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주의의 물결이 거세진 일본 사회에서 조선학교는 부당한 혐오와 원칙 없는 배제의 상징이다. 일본 정권은 외국인 학교를 포함한 일본 내 모든 고등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고교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조선학교만을 제외했다. 나카이 신부는 매달 한 차례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제외 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에 나서고 일본 내 조선학교의 존재를 한국에 알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 2월에는 한국 예수회와 연대해 서강대학교 학생들과 야마구치 조선학교 학생들의 교류를 촉진하는 청년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열 예정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주 함께 있는 것’이다. 야마구치 조선학교에서 열리는 운동회, 학예회, 졸업식 등 각종 행사에 센터의 구성원들은 빠지지 않는 손님이다. 나카이 신부는 한 주에 두어 번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한다. 일본 사회의 복음화란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차별받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는 매달 야마구치현청 앞에서 열리는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제외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에 나선다. 올 가을 나카이 준 신부(가운데)와 시민 단체들의 시위 모습.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 제공

● 전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 소장 하야시 히사시 신부

“일본교회, 정권의 부당함에 확실한 목소리 내”

“교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로 향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이하 ‘센터’)의 미션은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공해로 쓰러진 노동자를 일으켜 세우는 가운데,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지 못해 도망간 불법체류자를 우리 집으로 오라고 말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1969년 사제품을 받고 지난해 은퇴하기까지 50여 년을 시모노세키에서 보낸 하야시 히사시 신부(일본 예수회)는 일본교회에 사회교리를 알리고 실천해 온 증인이자 현장에 깊이 투신하며 일본 사회가 지닌 역사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진 존경받는 사회활동가다. 하야시 신부가 교회와 현장 사이에서 이웃의 손을 잡고 이웃을 품어내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동안 일본 사회도 일본교회도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요즘의 일본교회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의 부당한 정책에는 확실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교회의 복음이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야시 신부는 여전히 일본교회는 “너무 공부와 세미나에 열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복음은 가르치고 전달하는 게 아닙니다. 미사가 끝나면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외치고 성당을 나오면 모두 잊고 말죠. 하느님이 머무르시는 가난하고 고독한 사람들의 현실에 얼마나 깊이 함께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올해 여든다섯. 반세기를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더불어 살아 온 하야시 신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스스로 지은 시 한 편을 들려줬다. “젊은이의 반란이 없는 곳에는 썩은 내가 진동하고, 늙은이의 반란이 없는 곳에는 체념의 사막이 펼쳐지고, 여자의 반란이 없는 곳에는 생명의 샘이 말라버린다네. 반란이란 해야 할 말을 하는 곳에 존재한다네.”

일본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