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화로 만난 하느님] (5) 유혹의 방어무기 ‘말씀’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입력일 2019-02-25 수정일 2019-02-26 발행일 2019-03-03 제 3134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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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 영화 권세… 모든 유혹 물리치신 그리스도
성 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화

악마의 세 가지 유혹
단호하게 거부하는 예수
한 화면에 연속 묘사

플랑데스의 성화

예수를 유혹하는 악마
수도복과 묵주로 위장해도
꿰뚫어보는 예수 표정 표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자마자,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갔다. 고독한 공간의 광야에 선 예수님은 40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단식하며 기도했다. 모세도 시나이산에서 계약의 말씀을 받기 위해 주님과 함께 빵도 물도 없이 40일을 보냈고,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40일을 걸었다. 광야는 하느님의 일을 위한 힘을 얻고 오롯이 그분을 만나는 곳이었다. 그러나 악마들과 야수들이 서식하는 불모의 땅이기도 했다.

공관복음서 모두 예수님이 광야에서 악마에게 받은 세 가지 유혹을 전한다. 그러나 마르코복음 사가는 세 가지 유혹 이야기는 생략하고 예수께서 악마의 유혹을 받았고,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지내면서 천사의 시중을 받은 내용만 기록하고 있다. 화가들은 보통 이 세 가지 유혹을 한 그림에 한꺼번에 그려 넣기도 하고, 각기 다른 장면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혹’, 13세기, 모자이크, 이탈리아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

■ 사탄아 물러가라!

13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에 제작된 모자이크 작품 중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혹’에는 한 장면 안에 세 가지 유혹이 함께 실렸다. 모자이크 제작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세 가지 유혹을 한 화면에 스냅사진처럼 연속적으로 묘사했다.

그림 왼쪽 부분에는 돌 위에 예수님이 앉아 있고 그 앞에 시커먼 몸에 날개를 단 악마가 다섯 개의 돌을 들고 서 있다. 40일을 단식한 예수께 악마는 배고픔을 마냥 참기만 할 것이 아니라 돌을 빵으로 만들어 시장기를 채우라고 부추긴다.

화면 중앙, 높은 성벽으로 지어진 성전 꼭대기에는 예수님이 서 있고 그 앞에 악마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라고 말하는 중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악마에게 경고한다.

그림 오른쪽에는 자신을 따르면 세상을 다 주겠노라 약속하는 악마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있다. 높은 산 위, 예수님이 딛고 선 발 아래는 권세의 유혹이라 할 수 있는 반짝이는 금은보석이 놓여 있다. 예수께서는 최고의 권세는 하느님께 있으니 그분만을 섬겨야 한다며, 세상의 모든 화려함과 영광을 거부한다.

“사탄아 물러가라”(마태 4,10)는 예수님의 호령으로 오른쪽 아래에 있는 사탄은 발가벗겨진 채 예수님의 눈치를 보며 줄행랑치는 모습이다. 악마는 떠났고 오른쪽에 있는 세 명의 천사가 예수께 시중들기 위해 다가온다. 천사는 돌보심과 도움의 역할을 수행한다.

후앙 데 플랑데스의 ‘악마의 유혹’. 목판에 유채,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 악에서 구하소서

플랑드르 지방 출신 화가로서 스페인 왕가 궁정에서 활동한 후앙 데 플랑데스(Juan de Flandes, 1460년경~1519)의 예수님의 광야 유혹 이야기는 세 가지 유혹 모두 담고 있지만, 첫 번째 유혹을 대주제로 선택했다.

인적이 드문 야산 바위 위에 앉은 예수님은 수도복 차림의 악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화가는 광야를 건조한 모래사막이 아닌 인적이 드문 숲이나 험한 산으로, 도시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곳과 멀리 떨어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험한 돌로 가득한 장소로 묘사했다.

예수님 앞의 악마는 오른손으로 허리에 찬 묵주를 만지며 자신을 가장한 채, 왼손에 든 커다란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유혹한다. 악마는 신성한 수도복을 입고 있지만, 그의 머리 위에 솟은 두 뿔과 발에 살짝 보이는 물갈퀴로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화가들은 예수님의 광야 유혹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분명한 기준에 따라 재현하지만, 악마는 갖가지 공상이 허용된 형상으로 나타낸다. 그림처럼 악마는 인간의 모습에 부분적으로 뿔 달린 머리, 꼬리 달린 몸, 갈퀴가 난 발을 덧붙여 묘사됐다.

예수께서 40일 단식 직후 몹시 ‘시장기’를 느낄 것을 간파한 악마는 먹을 것을 해결해 주는 척하며 유혹한다. 악마는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쇠약해짐을 이용해 “이 돌들에게 빵이 되게”(마태 4,3)해 먹을 것을 얻도록 간교를 피운다. 예수님은 오른손을 내저으며 악마를 외면하고 있으며, 이미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거짓된 선으로 유혹하는 악마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표정을 짓는다. 예수님은 자신을 물질에 묶어두려는 악마의 저의를 파악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단호하게 거부한다. 예수님은 물질(빵)의 양식보다는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마태 4,4)의 양식으로 살 수 있다며 유혹을 물리친다. 예수님과 악마의 대조적인 마음은 각각 그들이 디딘 푸른 풀밭(말씀의 양식)과 거친 땅(물질의 양식)에서도 극명히 구분된다.

예수님이 받았던 유혹처럼 악마는 우리에게도 일상생활에서 작게는 물질적인 유혹부터 세상의 권력과 영광에 대한 유혹, 신앙의 유혹을 제시할 수 있다. 예수님의 방어무기였던 ‘말씀’의 양식으로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면, 그 어떤 유혹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