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14년째 전국 군성당 건축 헌신해온 윤영득 대표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9-03-05 수정일 2019-03-05 발행일 2019-03-10 제 313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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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에도 기억될 ‘군인들 안식처’ 짓습니다”
군종교구 건축자문위원 활동하며
군성당 공사 현장 누비며 전국일주
“미약한 재능 기부지만 은총이죠”

윤영득 아람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군복음화에 기여하겠다는 일념으로 14년째 군성당 건축에 힘을 쏟고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출발해 경남 진주-진해-부산-광주(光州)-전남 장성-충남 논산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하루 1500㎞를 운전해서 이동했다면 몸은 녹초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가뿐하고 뿌듯하다.

윤영득(가브리엘·59) 아람건축사사무소 대표는 14년째 군종교구 건축자문위원으로 일하며 전국의 군성당을 조금이라도 더 군복음화에 기여할 수 있는 건축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동분서주, 불철주야로 뛰고 있다.

2007~2010년에는 진주 공군 교육사령부 비성대성당, 진해 해군 기지사령부 진해해군성당, 부산 육군 제53보병사단 하상바오로성당, 광주 육군 제31보병사단 충장성당, 장성 육군 보병학교 상무대성당,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성당 건축이나 보수 등이 동시에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 모든 군성당들이 윤 대표의 손과 눈을 거쳐야만 온전히 완성될 수 있고 공사기간이 지연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전국 일주를 하다시피 군성당 공사 현장을 누볐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될 법도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면 기운을 다시 차리곤 했다.

2006년 이후 윤 대표가 건축 설계, 공사감리, 자문 등으로 직접 참여한 군성당은 육군, 해군, 공군 부대를 망라해 20여 개에 이른다. 현재는 올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인 판문점 JSA성당 건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가 군종교구 건축자문위원을 맡은 시점부터 지어진 군성당은 윤 대표의 손을 어떤 형태로든 거쳤다고 봐도 틀림이 없다. 이뿐 아니라 군종신부들은 성당 건물에 문제가 있거나 보수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윤 대표에게 전화를 건다. 그만큼 윤 대표는 군성당 건축과 유지, 보수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윤 대표가 군성당 건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는 과정은 좀 색다르다. 1981년 육군에 입대해 충남 조치원 62훈련단에서 1984년까지 복무한 윤 대표는 세례를 받지 않은 채 군인들과 미사를 드리곤 했다. 정확히는 미사를 드렸다기보다 간식을 먹으러 성당에 나갔다. 더 좋은 간식을 준다는 소문이 들리면 개신교회나 절에 나가기도 했다.

윤 대표는 건축사로 일하며 1996년 세례를 받고 나서 자신이 군복무 시절 다녔던 성당을 떠올렸다. 군인들이 앉아 있을 공간만 있을 뿐 종교시설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했던 것이 생각났다. 군성당 건축에 헌신하게 된 첫 단초였다.

윤영득 대표가 올 2월 판문점 JSA성당 건축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군성당 건축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5년이었다. “2005년 군종신부로 사목하시던 홍성학 신부(서울대교구)님의 추천으로 군종교구와 첫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마침 그때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성당 신축계획이 있었고 설계공모를 통해 5개의 설계안이 제출됐습니다. 홍 신부님이 그 중 우수작품 선정에 어려움이 있다며 설계안에 대한 자문을 요청하셨습니다. 군성당 건축에 헌신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윤 대표가 짧은 기간이 아닌 14년씩이나 일관되게 군성당 건축을 위해 열과 성을 다 쏟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봉사직에 가까운 일을 장기간 맡기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군부대 성당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외관이 화려하거나 아름답게 치장된 성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병사들이 편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곳, 부모님의 품속같이 포근한 곳, 전역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하는 성당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거창한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미약하나마 재능 기부를 할 수 있어서 감사와 은총으로 여깁니다.”

공군 비성대성당 기도 광장(라비린스). 윤영득 대표가 2008년 도면을 직접 만들어 조성했다. 윤영득 대표 제공

오래된 군성당 유지보수에는 민간성당과는 다른 고충이 따른다. 보안시설인 군부대 안에 있는 성당의 경우 건축물대장이나 설계도면을 확인하기가 어려워서다. 군성당 보수공사를 하려면 줄자를 이용해 성당을 통째로 실측하고 완성된 도면을 제작해야 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2008년 공군 비성대본당 신부님께서 성당 앞 공간에 ‘기도 광장’(라비린스, labyrinth)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셨는데 도면이 없었습니다. 한 달 내내 고생해서 1053개의 석재 조각을 설계도면으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 성당 중 라비린스를 갖춘 곳이 무척 드뭅니다. 비성대성당 라비린스 공사를 하느라 8월 한여름에 부대에서 숙식을 해 가며 작업자들과 땀흘렸던 일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윤 대표가 꿈꾸는 군성당은 무엇보다 군인 신자들이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 곳이다. 건축마감과 디자인, 음향과 냉난방 시설 등 신경 안 쓰는 곳이 없지만 윤 대표는 ‘휴게시설’(카페테리아)을 꼭 갖추려 노력한다. “군성당에는 천주교 신자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병사들을 성당으로 인솔하는 간부(부사관, 장교)는 비신자가 더 많아서 미사 중 비신자 간부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은 필수적입니다. 그래야 비신자 간부들이 성당에 호감을 갖고 천주교 신자 병사들과 다시 성당을 찾기 때문입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