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On Time(정시에)

이연세(요셉)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9-03-05 수정일 2019-03-05 발행일 2019-03-10 제 313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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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준위! 오늘 On Time에 LZ(Landing Zone, 착륙장)에 착륙했나?” 공중강습작전이 끝난 직후 1번기 조종사에게 물었습니다. 김 준위는 “중대장님! 10초 늦었습니다. On Time에 착륙할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De-Briefing(사후 검토)할 때 음료수 쏘겠습니다”라고 답하며, On Time에 착륙하지 못한 분을 애써 참았습니다. 이 대답을 듣고는 작전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한 조종사들은 오히려 고소하다는 듯 박수치며 즐거워했습니다.

공중강습작전! 아군의 병력과 장비를 헬기를 이용해서 공중으로 신속하게 적진에 투사해 중요지역을 점령한 후, 적의 퇴로와 증원을 차단하는 작전을 말합니다. 이 작전의 핵심은 정해진 시간에 병력과 장비를 정확하게 공수하는 것입니다. 보병, 포병, 공군 등이 참가하는 합동작전이기에 항로와 시간을 준수하는 것은 1번기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책무라 할 수 있죠. 부대에서는 1번기가 이를 지키지 못했을 경우, 벌칙으로 사후 검토 시 음료수를 사는 것이 불문율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공중강습작전은 아군의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대부분 야간에 이뤄집니다. 그러기에 지도를 보고 10초 단위로 시간을 자르고 지형을 구석구석 정밀하게 숙지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독립가옥이 나오고, 좌선회를 하면 저수지가 보이고, 삼거리를 지나며 속도를 줄여 착륙을 준비해야 한다는 등 세밀한 항법연구가 필수적입니다. 그야말로 비행로를 제 집처럼 머릿속에 완벽하게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1번기 조종사는 비행 기량이 빼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 지형에 익숙하고 예리한 성격도 소유한 베테랑을 선택합니다.

농사를 잘 짓는 농부는 때를 잘 맞춥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빈틈없이 준비하며 계절의 흐름을 예민하게 지켜봅니다. 그리고 씨를 뿌려야 할 시기가 오면 파종을 하고, 열매를 맺으면 가장 알맞은 때를 골라 적시에 추수를 함으로써 풍성한 결실을 얻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 내기 위해서는 때를 잘 맞춰야 합니다. 배워야 할 때 힘써 공부해야 하고, 업(業)을 구해야 하며, 적당한 때 짝을 만나 부부가 돼 자식을 낳고 세대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순리(順理)입니다.

때를 잘 맞추기 위해서는 먼저 오감을 예리하게 곧추세우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1번기 조종사나 농부처럼 미리 꼼꼼하게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도 알지 못했지만, 언제 일곱 색깔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 유희에 눈이 멀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는 어느 결에 지옥불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무지개를 건너 주님을 뵙는 날까지 깨어 준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

이연세(요셉)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