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39) 제자리를 떠나는 것들 / 박그림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9-03-12 수정일 2019-03-12 발행일 2019-03-17 제 313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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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대한 외경심과 정상의 존엄성을 갖게 해 줬던 설악산을 바라보면서 사라진 옛 풍경을 그리워한다. 고산지대에 우뚝우뚝 섰던 분비나무와 고사목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등산로에 줄지어 섰던 나무들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무와 숲이 사라지면서 숲 속에 깃들어 살던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전설처럼 남아 있는 호랑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반달곰이 밀렵꾼의 총에 사라진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산양과 몇몇 짐승들은 서식지를 마구 드나드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미치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쫓기는 삶을 살아가는 짐승들조차 밀렵을 통해 마지막 멸종의 길로 몰아넣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나무와 숲이 사라지고, 짐승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그 자리는 힘들이지 않고 쉽게 산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인공시설물이 차지하고 있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은 사라지고, 있어서는 안 될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 설악산은 야생의 아름다움과 짐승들의 발자국이 사라지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죽은 산으로 바뀌고 있다.

산에 들어 펼쳐지는 풍경만 바라볼 뿐 그 속에서 살아가는 뭇 생명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무관심이 두려운 까닭은 자연파괴에 대한 무감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탐방객들로 넘치는 설악산의 자연은 나날이 상처를 입고 있지만, 입산 예약제와 같은 적극적인 대책은 없다.

더 나아가 설악산이 포함된 지자체가 환경보전보다는 생태계에 엄청난 파괴를 가져올 게 뻔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설악산을 오직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자연에 들어 뭇 생명이 제자리를 지키며 어울려 살아감으로써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

오랜 시간 속으로 이끌어주는 고사목, 때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산풀꽃, 벌들의 붕붕거림, 숲 속에 길게 이어지는 짐승들의 발자국, 바람결에 묻어 오는 새들의 지저귐, 머뭇거리듯 스쳐 지나가는 짐승들의 모습, 온몸을 휘감는 숲의 냄새, 휘몰아 내리는 바람 소리, 돌돌 거리며 귀를 간질이는 물소리, 자연의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더불어 아름답다.

모든 것은 하나이며 하나는 모든 것인 자연 속에서 우리는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걸까? 사라지는 것들을 안타까워하는 만큼 생태적인 삶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자연의 상처는 깊어지고 우리도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절박한 현실 앞에 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우리의 무관심은 여전하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