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구역방문 / 현재봉 신부

현재봉 신부 (제2대리구 목감본당 주임)
입력일 2019-04-02 수정일 2019-04-02 발행일 2019-04-07 제 313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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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판공, 그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구역방문을 병행하다보니 일화도 많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보좌신부 말년 구역가정방문이 하이라이트였다. 어느 반지하 가정을 방문했을 때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던 차 안방 문을 열다가 기겁을 했다. 문에 웬 담요가 걸려 있었는데 그 속에 부부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오랜 냉담에 죄책감이 들어 숨었단다. 실소가 터졌다. 힘 빠졌던 방문도 있었다. 같은 집을 네 번이나 방문했는데 마지막 방문 때 흥분한 그 자매님은 “다신 오지 말라”며 우리 등 뒤에 소금을 뿌렸다. 함께 했던 구역·반장은 눈물을 훔쳤다. ‘예수님이 쫓겨나셨다’라고 느꼈단다.(다행히 그 자매는 판공 막바지에 고해성사 하고 화해를 했다) 포복절도 할 방문도 있었다. 평소 치매가 있던 할머니 집에 방문을 했는데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할머니 나름 정갈하게 목욕재계하고 우리 일행을 맞았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그때 할머니의 해맑은 미소가 아직도 날 웃음 짓게 한다.

최근 가정방문은 황당함의 연속이다. 새 아파트에, 아직 전입신고를 안 한 교우가 있어 방문했다. 한·미 이중국적자로 ‘여생을 보낼 둥지’로 이곳을 택했단다. 마뜩잖게 우릴 맞아들인 형제가 면담 도중 태도가 돌변하며 우리 일행을 모두 내 쫓았다. 이유인즉 사전에 예고 없이 방문을 했다는 것과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고, ‘이럴 거면 다시는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사실 부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간 터였다) 한편 꼬마 교우가 가정을 대표해서 방문을 받은 적도 있는데, 초등 4학년 남자아이는 가정사며 부모님 사정까지 어른 이상으로 조곤조곤 설명을 잘해 인상 깊었다. 아이가 하도 똘똘해서 장래희망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서슴지 않고 ‘사제’가 되겠다고 했다. 아이는 복사는커녕 첫영성체도 안한 상태여서 의외였다. 사제가 되려고 결심했던 이유인즉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열혈사제’를 보고서였다. 그 아이 눈에 비친 신부는 ‘정의의 사도’, ‘슈퍼히어로’였던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쪼록 계속해서 성인사제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구역판공을 하다 보니 음식에 얽힌 일화도 많다. 판공을 실시한 한 집에서 청국장을 맛있게 먹었더니, 이후 구역부터 내리 청국장을 주메뉴에 올리는 일도 있었다. 가정방문 때 음식준비를 하지 말라 했더니, 음료와 커피를 준비해서 하루에 10잔 넘게 마신 적도 있다. 그래서 현재는 마실 음료를 직접 들고 다닌다. 요즘은 음식을 통일했다. 구역미사를 마치면 대략 저녁 9시가 넘는다. 식사를 안 하고 오신 교우를 위해 떡과 과일, 차와 음료만 준비토록 했다.

이제 구역방문, 가정방문도 어려운 세상이 됐다. 낮에 가면 대다수가 집에 없어 만날 수 없고, 혹 만나더라도 반가운 기색보다는 당혹해 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본다. 신도시이고 새로 입주한 교우들이 많아서 아직까지 방문은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더 이상의 방문은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구역이 아닌 성당에서 판공성사 및 미사를 봉헌한다. 떠들썩하고 정담이 오가던 구역미사는 이제 옛 기억 속에서나 회상할 일이 돼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요절복통했지만 구수했던 예전 구역가정방문이 그리워진다.

현재봉 신부 (제2대리구 목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