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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라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rn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9-04-09 수정일 2019-04-10 발행일 2019-04-14 제 314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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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⑪
‘객관보도’라는 게 있다. 현대 저널리즘의 기본이라고 하는 이 개념의 요체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기자가 어떤 사실(fact)을 보도할 때 자기 의견으로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전하라는 것이다. 좀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사실을 정확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자의 의견은 어떻게 밝히나? 사설이나 칼럼·해설 같은 논평기사, 즉 의견기사를 통해 나타내면 된다. 기자가 의견기사를 쓸 때에 우선 왜곡하지 않은 사실을 인용하고, 거기에 대해 얼마든지 자기의 주관적인 의견을 밝히면 된다.

“과연 사실을 전할 때 절대적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널리즘에서 이 같은 목표를 정할 때에 비로소 부정확하고 주관적이며 불공정한 사실의 보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객관보도니,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니 하는 개념은 19세기 중반부터 미국에서 정립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미 2500년 전 중국에서도 있었다. 공자가 엮은 경서 ‘춘추’에 나타난 문장의 역사기술 방식이다. 즉 철저하게 객관적인 사실을 규명하고 그 바탕 위에서 옳고 그름의 평가를 함으로써 대의명분을 세운다는 것이다. 이른바 춘추필법이다.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 찰스 스콧(1846~1932)은 이 같은 정신과 궤를 함께하면서 말했다. “의견은 자유이나, 사실은 신성하다.”

이러한 세계 역사의 바탕 위에서 보편성을 확보한 것이 현재의 보도윤리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보도준칙의 ①(보도기사의 사실과 의견구분)을 보자. “기자는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보도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또한 기자는 편견이나 이기적 동기로 보도기사를 고르거나 작성해서는 안 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미디어들이 활동하는 오늘날, ‘사실과 의견 구분’ 윤리를 위반하는 보도는 불과 10년 전쯤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다른 보도윤리 위반사례도 마찬가지지만)

제대로 확인취재도 하지 않은 채 추측으로, 기자의 취향이나 편견·이해관계 때문에, 또는 클릭 수를 늘려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들이다. 아예 기자의 의견을 사실처럼 보도하는 기사도 많다.

최근 ‘사실과 의견 구분’ 윤리를 위반해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사례들을 살펴보겠다. 먼저 매일경제 2018년 11월 12일자 1면 기사의 「판교 테크노밸리 덮친 민주노총」이라는 제목. 이 기사는 판교 정보기술(IT)업계에 잇달아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정당한 노조결성을 마친 단계의 ‘민주노총’에 대해 이 제목은 거대한 재앙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 이미지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제목은 기사본문에 있는 내용을 뽑아야하지만 이는 기사 본문에도 없다. 편집기자가 자신의 의견을 (제목에 반영함으로써) 사실화한 것이다.

다음은 중도일보 2018년 12월 17일자 8면 「노골적 승진배제에 충남경찰 사기바닥」 제목의 기사다. 이 기사는 “지난해 전국에서 86명의 총경 승진자가 배출된 가운데 충남지방경찰청에서는 단 1명의 총경 승진자만 배출됐다”며 “사기가 떨어져 심각한 치안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충남지역의 음주운전 사고 통계를 제시했다. 충남의 인구 10만 명당 음주운전사고 발생 건수가 203명으로 다른 시·도보다 많고, 사망자와 부상자 역시 다른 지역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경 승진 인사에서 다른 지방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됐다고 해서 치안공백을 초래하고 더욱이 그 결과로 음주운전 사고가 빈발한다는 건 지나친 논리 비약으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았다.

앞선 칼럼에서 밝힌 대로 추측이나 선입견·이해관계의 작용으로 취재원을 나타내지 않은 보도문장으로는 피동형(알려졌다, 전해졌다, 점쳐지고 있다 따위)과 명사형 종결어미(~라는 분석이다, ~라는 평가다 등)가 대표적이다. 늘어만 가는 이런 문장에도 사실을 기자의 의견으로 왜곡하거나, 기자의 의견을 사실화한 보도가 많다. 객관보도가 되지 못하는, 그래서 저널리즘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보도문장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지영(이냐시오)rn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