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 칼럼] (32) 제의실 안의 학교 폭력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rn※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입력일 2019-04-09 수정일 2019-04-10 발행일 2019-04-14 제 314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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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에 미국 주교회의는 미국의 사제직에 관해 학제 간 연구를 맡긴 적이 있다. 이 연구의 핵심 부분은 당시 가톨릭 공동체에서 저명한 사제들이었던 사회학자 앤드류 그릴리와 심리학자 유진 케네디가 주도했다.

연구 결과, 특히 심리학 분야에서 미국인 사제 상당수가 불만족 상태에 정서적 발달이 뒤떨어져서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경우 빠르면 13세부터 시작되는 양성 과정과 성직자 문화로의 진입은 그들을 영구적 청소년 상태로 고착시켰던 것이다.

이 연구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상황을 개선시키려 노력했으면 좋았으련만, 주교들은 으레 그렇듯 연구 결과를 무시했다. 호전적 기질로도 유명했던 그릴리는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현재 교회의 지도자들이 도덕적·지적·종교적 파탄 상태라고 확신한다”고 비판했다.

전 세계 주교들의 학대와 은폐가 주요 뉴스로 등장하는 오늘날, 그때 그릴리가 얼마나 바른말을 했는지 이제 모두가 깨닫는다. 그러한 기사들 이면에는 그릴리와 케네디를 비롯한 사회학자들이 경고했던 상황이 있다. 그리고 그때 주교들이 적절히 조치하지 못한 탓에 지금 가톨릭교회 전체가 고통 받고 있다.

성적 학대나 다른 형태의 학대들은 실제로 성(性)보다는 권력의 오남용 문제라는 것은 충분히 입증된다. 신자들에게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악마가 권력으로 예수님을 유혹할 때, 유혹자는 권력은 자기 것이며 자신이 분배하는 것이라고 선언했고, 예수님께서는 거기 반박하지 않으셨다.

나이가 몇 살이든 ‘미성숙한 소년들’이 권력을 남용할 때 그들은 학교 폭력 가해자와 다를 바 없다. 가해자들은 대체로 자기보다 약한 소년들을 희생자로 삼는다. 놀랍도록 잦은 성직자에 의한 미성년자 학대 사건들의 바탕에는 동성애가 아니라 아마 그러한 사실이 있을 것이다.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성직자에 의한 성적 학대의 원인은 동성애도 아니고 독신제도 아니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남자들이 제의실의 책임자가 되면서 학교 운동장이 제의실로 옮겨온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사제 양성에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사제와 주교들에 의한 성학대 사건이 감소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어린이나 신학생 같은 청소년들에 대한 학대와 은폐 사건 대부분은, 공의회 이전에 훈련받았거나 ‘좋았던 과거’를 고수하는 제도 안에서 훈련된 이들이 저지른 것들이다. 1960년대 연구자들의 권고가 온전히 제도화되지는 못했지만, 일부 시행된 것만으로도 차이를 낳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미성숙한 성직자가 소년소녀나 젊은이들을 학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학대에 가려져 있다가 최근에야 주목 받는 더 많은 사례들은, 사제들과 주교들에 의한 여성 학대다. 물론 이는 비단 성직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투 운동과 그 여파를 통해 우리는 여성 학대가 온갖 미성숙한 남성들이 저지르는 더욱 흔한 학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들은 어떠한가. 어린 소년들이 자라서 그저 ‘다 큰 소년들’이 되는 경우가 아주 흔한 것에 비해, 어린 소녀들은 자라서 어른다운 여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교회 환경 안에서 수녀들이 운영하는 수련원이나 수도원, 학교나 고아원, 그 밖의 기관들에서 폭발로 이어질 도화선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수녀들에 의한 소녀와 소년 학대, 여성 학대도 일촉즉발 상황이다.

이 모든 사실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깨닫는 점은, 가톨릭교회의 현재 위기가 곧 끝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됐고, 앞으로 더 폭발력 있는 폭로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다.

그 폭발의 화염이 가라앉고 교회가 회복하기까지는 여러 세대가 걸릴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여전히 회복 중인 500년 전의 종교개혁 상황에 맞먹는다고 보았던 이들이 옳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다. 폭로가 있을 때마다 그런 이들은 더 늘어날 것이지만,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교회에 남기로 한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고해성사의 여정과 똑같아야 한다. 곧, 통회와 고백과 회심이다.

통회는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교회 지도자들과 미성숙한 가해자들에게 희생된 이들에 대한 공감과 겸손한 정직함에서 시작된다.

고백은 문제의 뿌리를 뽑는 일에서 사후 대응보다는 사전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들을 언론과 법체계가 수행하고 있다. 그 정도가 심해질수록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법적 소송이나 나쁜 평판을 걱정해서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세속적 요구 조건에 협력하는 것도 여기 포함된다.

회심은 성직 생활과 수도 생활에 중요한 변화들을 시행하고, 교회의 실제 운영에 성직자와 전문가들뿐 아니라 더 많은 평신도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될 수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치유가 이루어지는 동안 우리는 병을 치유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를 용기와 믿음을 청하며 기도해야 한다. 이 병이 중병이기는 하나, 중병이 꼭 만성 질환이 된다는 법은 없다는 확신을 갖고서 말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rn※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