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40) 사라지는 소리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9-04-16 수정일 2019-04-16 발행일 2019-04-21 제 314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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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로 나지막한 산이 있어 숲에 들 때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지곤 했다.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작은 풀꽃과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고 자연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음을 느끼곤 했다.

몇 해 전부터 산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산은 소음으로 차츰 덮였고 생명의 소리는 사라져 갔다. 고속도로가 개통된 뒤 통행량이 늘면서 자연의 소리는 사라지고 온종일 질주하는 차들의 굉음으로 뒤덮인 산은 전혀 다른 산이 돼버렸다.

산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은 설악산 깊은 골에 들어서야 자연의 온전한 소리풍경 속에서 채워졌다. 숲을 휘몰아 내리는 거친 바람 소리와 흔들리는 나무들이 삐걱거리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과 날갯짓 소리,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짐승들의 발걸음 소리, 컹컹거리는 노루의 울음소리,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봄기운이 가득한 날 얼음이 풀린 골짜기는 물소리로 가득하다. 겨우내 묵었던 찌꺼기를 쓸어내듯 콸콸거리는 물소리에 흠뻑 젖어든다. 가지 끝에 매달린 봄은 투명한 연둣빛으로 나무를 덮고 눈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고 귀는 생명의 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소리풍경은 생명이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생명의 소리가 사라진 풍경은 얼마나 삭막할까. 눈에 익숙한 풍경이 바뀔 때 무엇 때문에 바뀌는 것인지 궁금해 하지만, 귀에 익숙한 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소리풍경이라고 일컬어지는 잊고 있는 풍경은 우리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만 얼마나 많은 소리가 사라지고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환경이 나빠지고 있음을 눈에 보이는 풍경이 사라지는 것으로 가늠하지만, 소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숲이 사라지고 난 뒤 복원을 통해 되살아난 숲은 겉보기에 예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소리를 통해 예전에 듣던 생명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숲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생명의 소리까지 되돌아왔을 때 숲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때때로 자연에 들어 눈을 감고 온몸으로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온몸의 감각을 통해서 얻어지는 느낌이다. 자연의 소리는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 소리여서 마음속에 스며들어 깊숙이 숨겨졌던 아픔까지 정화하고 삶을 풍요롭게 이끌어 준다.

자연 속에서 생명의 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촘촘히 이어지고 있는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끝내는 우리들의 삶을 뿌리째 흔들고 침묵의 봄을 맞이하게 한다. 숲을 휘몰아 내리는 거친 바람 소리에 목을 움츠리지만 고마운 봄날이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