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은 어두운 저승에 갇혀 있는 영혼에도 비춘다. 비잔틴 미술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그림은 도상학적으로 ‘아나스타시스’(anastasis·그리스어로 부활을 뜻함)라고 부른다. 아나스타시스 그림은 서양미술에서처럼 관에서 나와 다시 살아 숨쉬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저승에 내려가 굳게 잠긴 대문을 부숴 열고 아담을 비롯해 갇혀 있던 영혼들을 구해 내는 승리에 찬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은 중세 이탈리아 화단의 거장 두초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1255~1319)는 시에나 대성당의 거대한 제대화 ‘마에스타’(Maesta)의 뒷면 한 패널에 ‘저승으로 내려간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렸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리의 십자가와 부활 깃발을 들고 저승 문을 부수고 들어서고 있다. 사탄을 밟고 선 예수님은 긴 백발과 수염이 난 아담의 손목을 잡고 있다. 그 뒤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 모습의 하와가 무릎을 꿇고 있다. 예수께서는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손을 내밀어 아담과 하와를 무덤에서 꺼내신다.
아담과 하와 뒤에는 시편을 통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한 다윗과 그리스도의 왕적 특징을 예시해 주는 솔로몬 왕도 서 있다. 구세주가 세상에 오시어 우리 죄를 사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기다린 구약 속 인물들과 요한 세례자를 비롯해 그리스도 이전에 살다 죽은 인물들이 줄지어 있다. 구원의 복음은 모든 죽은 대상들에게 선포된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과 아담의 손을 자세히 보면, 아담이 예수님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아담의 손목을 끌어 올리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 표정에는 역동성과 결단력이 담겨 있으며, 행동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타락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 다시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희생하시고, 다시 살리기 위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가 다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