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자주 국방 이론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4-30 수정일 2019-04-30 발행일 2019-05-05 제 314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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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일로 3개월 정도 해외에 있는 우리 수도원에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수도원에 숙소를 두고, 출장 업무를 하는 도중에 허리가 안 좋아, 며칠간 누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수도원에서 내가 ‘물귀신’이라고 별명을 붙여준 수사님으로부터 안부 문자가 왔습니다. 그래서 내 사정을 이야기한 후, 며칠째 수도원 숙소에 누워있다고 했더니, ‘물귀신’ 수사님은 자신이 잘 아는 중의학 박사님이 거기 계신데, 꼭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귀신’ 수사님의 말을 듣고, 해외라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다음 날 그 중의학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 병원은 나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우리 수사님들이 아팠을 때 찾아가는 병원이었고, 그 중의학 박사님은 한국 교민들 사이에도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나 또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갔더니, 기쁘게 나를 맞이해 주시면서 침을 놓아 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그 병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낫기는 한데, 내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빨리 낫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물귀신’ 수사님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치료는 어떻게 받으셨는지요? 원장님은 믿고 맡기셔도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치료가 강 신부님 마음에 꼭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분이시니, 치료 잘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문자를 받고 ‘치료가 나와 안 맞을 수 있다…,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수도원 공식업무를 하면서도,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빨리 낫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는데, 진료 중에 내가 말했습니다.

“원장님, 원장님과 제가 잘 안 맞는지, 잘 안 낫네요.”

그러자 원장님은 부드러운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럼요, 안 맞을 수 있습니다. 강 신부님은 내일부터 다른 병원으로 가시면 좋겠습니다. 안 맞으면 맞는 분 찾아다니셔야죠.”

‘에고고…!’ 그런 의도가 아닌데, 나도 모르게 원장님의 마음을 긁은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나를 침 맞는 방으로 안내를 하더니, 침을 놓으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마지막 치료이니, 오늘까지는 서로가 안 맞는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내일부터는 다른 곳으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아니, 원장님, 제가 말을 좀 실수를 했어요. 죄송합니다.”

그러자 원장님은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강 신부님. 만약에 제가 전 세계에서 침을 가장 잘 놓고, 최고의 한약을 달여 드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강 신부님 스스로가 자기 몸을 잘 돌보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그 어떤 치료도 맞지 않을 것입니다. 강 신부님, 신부님이 이곳에 처음에 오셨을 때 제가 가르쳐 드린 ‘디스크 자기 치료 운동’ 꾸준히 하셨는지요? 강 신부님, 저는 환자분들에게 저에게만 치료받으러 자주 오라는 말은 잘 안 합니다. 아마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환자가 병원에 오도록 해야겠지만! 하지만, 사람의 몸이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몸은 자기 스스로가 잘 관리해야 합니다. 저는 병원 문 닫아도 좋습니다. 저는 제 의술행위 보다, 이곳 병원을 통해 자기 몸을 자신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면, 자신이 지금 아픈 원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 결국 자기 몸을 자기 스스로 돌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날, 그렇게 혼쭐이 난 덕분에, 그 후로 꾸준한 운동을 통해 내 몸을 내가 잘 돌보게 되면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 원장님의 ‘자주 국방 이론’, 참 좋은 이론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