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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양 팔러 가는 일을 거절하여 신부가 되다 / 윤민구 신부

윤민구 신부 (원로사목자)rn
입력일 2019-05-07 수정일 2019-05-07 발행일 2019-05-12 제 314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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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소 주일이다. 성소 주일을 맞아 오메트르 신부 이야기를 하나 더 하려한다. 오메트르 신부의 전기에 꼭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주일에 양 팔러 가는 일을 어린 오메트르가 거절했고, 이것이 오메트르가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오메트르 신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서 그에 대한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오메트르 신부가 12살이 된 1847년 5월 2일 오메트르는 첫 영성체를 하게 됐다. 이즈음 오메트르는 본당 신부에게 사제가 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것 같다. 그러나 본당 신부는 일단 오메트르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도하기를 거절했다. 당시에는 신학교 들어가기 전에 어느 정도 라틴어를 배워야 했는데 흔히 본당 신부들은 라틴어를 가르치며 신학교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지를 판단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본당 신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 생겼다. 오메트르의 부친이 집에서 키우던 양 몇 마리를 팔기 위해 장(場)이 서는 곳으로 몰고 가도록 오메트르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날이 주일이었기 때문에 오메트르는 주일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 장이 서는 곳은 집에서 제법 멀었기 때문에 장에 가면 성당에 가는 일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부친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었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본당 신부는 오메트르의 신앙심을 보고 그에게 라틴어를 가르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는 프랑스 대혁명(1789) 이후로 급속도로 ‘세속화’가 진행되던 때였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 중에는 신앙생활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부러 주일에 이런저런 행사를 벌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일에 장이 서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일 지키는 것을 포기하는 신자들이 크게 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오메트르의 집에서 이 같은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본당 신부는 오메트르에게 라틴어를 오래 가르치지 못 하고 은퇴했다. 그의 후임자가 오메트르에게 라틴어를 가르쳤지만 시골 소년이었던 오메트르가 잘 따라가지 못 해 진도가 더디 나가자 이내 포기했다. 그러나 오메트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5㎞ 떨어진 곳에서 라틴어를 가르쳐 줄 선생님을 찾았다. 그는 평신도였는데 오메트르에게 라틴어를 가르쳐 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오메트르는 먼 길을 걸어서 선생님 집을 수시로 오가며 라틴어를 배웠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본당 신부는 교구장 주교에게 오메트르에 대해 보고했고 소신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얻게 해줬다.

어떤 이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오묘하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무엘의 경우처럼 하느님이 소리 내어 인간을 부르시는 것은 아니다. 오메트르 신부의 경우처럼 하느님은 인간의 마음에 슬쩍 씨를 뿌려놓으신다. 그러면 흔히 그 부르심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다. 그래서 그 부르심에 응답하려 하면 하느님은 그 씨가 자라도록 좋은 상황을 만들어 주신다. 혹시 사제나 수도자의 길에 오래도록 관심이 생기는 젊은이들이 있으면 그게 부르심일 수 있는 것이다.

윤민구 신부 (원로사목자)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