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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가난하고 한미(寒微)한 가문의 사람 / 윤민구 신부

윤민구 신부 (원로사목자)rn
입력일 2019-05-28 수정일 2019-05-29 발행일 2019-06-02 제 314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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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 중 프랑스인 10위의 고향을 순례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10위 성인들의 고향과 출신 교구는 다 다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시골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 고향을 다녀오는 데 2주간이라는 시간이 짧았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이 가난하고 한미(寒微)한 가문의 사람이라며 파리외방전교회 장상들이 우리나라를 저평가해 그런 신부들만 보냈다고 평가절하 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가난했다고 해서 마음이나 열성, 지식이 가난한 것은 아니다. 10위 프랑스인 성인들은 “시작은 보잘 것 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욥기 8,7)라는 성경 말씀처럼 비록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한 점도 많았겠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제가 되고 선교사가 돼 우리나라까지 오셔서 순교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다.

사무엘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의 후임을 선발해 축성하기 위해 이사이에게 갔을 때 일이 떠오른다. 사무엘은 이사이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해 그에게 축성의 기름을 바르려고 했다. 그때 하느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결국 사무엘은 이사이의 막내 어린 다윗을 축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으며 살지만 그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한다. 잘못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은 흔히 그 사람의 마음, 진정성 보다는 외모나 학력이나 출신지 등 외적인 것을 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본다고 하시는데 말이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자세히 말씀하신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 하게 하셨습니다.”(1코린 1,26-29)

우리나라에서 순교한 많은 프랑스인 선교사들은 가난하고 한미한 가문의 사람이라 오히려 더 쉽게 선교사의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여러 선교사의 부모들은 그들이 교구 신부가 돼 안정적으로 살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그들은 부모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용감히 부모를 떠나 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다윗을 선발하신 하느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려면 하느님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윤민구 신부 (원로사목자)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