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발바닥신자’ / 송혜숙

송혜숙rn(클라우디아·교구 성지위원회 디딤길팀)
입력일 2019-06-03 수정일 2019-06-04 발행일 2019-06-09 제 314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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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신자. 원래 이 말은 마음은 성당 밖에 두고, 발바닥만 찍고 간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대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신자들이 스스로 낮춰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 발바닥신자라고 생각한다. 신앙생활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본당 활동은 부담스럽다. 잘하면 평균, 못하면 주눅이 든다. 특히 구역별로 묵주기도가 주어지면 할당량(?)을 채우기가 힘들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조용히 앉아서 기도할 시간은 왜 부족한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본당에서 어떤 지향을 두고 영적예물을 봉헌하라고 할 때마다 궁금했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이만 단’, ‘이십만 단’을 바치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정도 한다면 대충 할거라고 생각했다. 묵주알을 빠르게 굴리며 “했다 치고, 했다 치고” 혹은 “아까 맹치로, 아까 맹치로” 거의 랩 하듯이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천문학적 숫자를 봉헌할 수 없었다.

도보순례를 하게 되면서부터 바뀌었다.

현재 디딤길팀에서 선정한 코스는 성지와 성지 사이를 잇다 보니 대부분 15~20㎞ 정도가 된다. 우리 순례 길은 평지와 언덕과 산등성이와 차도가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 길고 지루하다.

도보순례를 할 때 가장 묵주기도를 많이 하는 곳이 바로 길고 지루한 길이다. 앞은 보이지 않고 묵묵히 걸어야 할 때, 도로 옆으로 지나가는 찻소리가 위협적일 때, 땀범벅이 되고 눈이 뻑뻑해질 때, 묵주를 꺼내서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 묵주기도가 발걸음에 호응하는 구령처럼 변한다.

성모송을 바치며 발걸음을 옮기고 영광송을 바치며 언덕을 오른다. 먼 길이어서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묵주기도는 절박한 순간에 나를 이끄는 힘이었다. 이제는 할머니들이 묵주기도를 수십 만단을 바쳐도 의심하지 않는다. ‘할머니도 절박한 어떤 순간을 지나가고 있었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몇 년 동안 걸었던 길을 합산해보지 않았지만, 1000㎞가 넘을 것이다. 묵주기도 없이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길이었다.

순례길에서 나는 발바닥신자다. 발바닥으로 딛고 서서 묵주기도를 뿌린다. 산꽃을 보면서, 하늘을 보면서.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송혜숙rn(클라우디아·교구 성지위원회 디딤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