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은총 / 김숙자

김숙자(헬레나) 시인
입력일 2019-06-03 수정일 2019-06-04 발행일 2019-06-09 제 314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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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크로아티아 여행 때였다. 작고 오래된 섬 도시 트로기르의 성 로브르성당에서 하느님을 만났다. 하느님은 천장 위의 조각 작품으로 나타나셨다. 손에 지구를 들고 땅 아래를 굽어보고 계셨다. 그때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는 결혼 전에는 개신교 신자였다. 그러나 남편이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는지 언제부턴가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됐다. 그런 채로 10년이 휙 지나갔다. 어느 날 남편이 불쑥 “이제부터 성당에 다니자”고 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성당에 다닐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잠시도 망설임 없이 곧장 온 식구가 동네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6월에 두 아이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의 일이었다. 남편은 무슨 이유에선지 함께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그 뒤로도 줄곧 미사에는 함께 참례했다.

5년 후, 남편의 회사 일로 온 가족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나가 살게 됐다. 처음 몇 달은 차로 한 시간 걸리는 오렌지 카운티의 한인성당을 다녔었다. 우리 말고도 멀리서 오는 신자들이 많아 힘든 줄을 모르고 다녔다. 어느 날 주임신부님께서 “집 가까이 있는 미국 성당에 다니는 게 아이들한테 좋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의 영어 학습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신부님의 말씀대로 동네 성당으로 옮겼다.

미국 생활이 3~4년쯤 지나자 아이들은 영어는 잘하게 됐지만, 우리말은 조금씩 이상하게 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중학생인 딸이 “‘몰’에 가서 ‘숍’을 기우뚱거리다 왔어”라고 말하는 걸 보고, ‘일요일만이라도 한국어 강론을 듣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인성당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마침내 남편이 교리반에 등록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세례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세례식까지 아직 3달가량이 남았는데 귀국 발령을 받은 것이다. 남편은 신부님께 “서울에 가서 꼭 세례를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부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귀국하면 세례 받는 일은 뒷전으로 밀릴 테니, 여기서 받고 가라”고 하시고는 귀국 일주일 전에 단독으로 세례를 주셨다.

귀국 후 어느 날 밤, 늦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신부님의 국제 전화였다. “미카엘이 성당을 잘 다니는지 궁금해 걸었다”고 하셨다. “출장을 가도 성당 위치와 미사 시간을 미리 알아보고, 꼬박꼬박 잘 다녀요.” 신부님은 매우 흡족해하셨고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남편의 상태를 물어 주셨다. 남편은 구역장도 하고 성가대장도 하고 여러 일을 맡으며 열심히 성당을 다녔다. 모두가 30년 전 미국 한인성당에서 단독 세례를 주신 신부님 덕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내 남편이 나를 성당으로 이끌어 주었으며, 미국 성당의 신부님이 남편의 신앙을 이끌어 준 은인이셨다’고 믿어 왔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이번 여행 때, 성 로브르성당의 천장을 올려보던 그 한순간에 그만 깨지고 만 것이다.

손수 지으신 지구를 손에 들고 땅 위의 우리를 굽어보시는 하느님, 바로 그분께서 우리 식구 모두를 줄곧 이끌고 오신 것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화살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숙자(헬레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