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88) 얘야, 편안히 숨 쉬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6-03 수정일 2019-06-04 발행일 2019-06-09 제 3148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병원에 가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는 친구 신부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신부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제 나이도 50대 중반이 되었으니, 평생 한 번은 내 몸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아 봐야겠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에서 나오는 검진 안내서를 가지고 종합 건강 검진 신청을 했답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건강 검진을 받았고, 위내시경과 장내시경도 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내시경 검사를 받는 날, 장을 완전히 비우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을 마셨고, 계속적으로 화장실을 다녔답니다. 그렇게 화장실과 길고 긴 전쟁을 치른 후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검사실 간호사가 ‘옷을 검사복으로 갈아입으라.’ 안내하기에 갈아입는데, 자신도 모르게 왠지 환자가 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답니다. 그렇게 검사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데, 한 사람씩 검사실 안으로 들어가고!

이윽고 그 신부님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에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서서히 긴장이 되더랍니다. 그리고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팔에 링거를 꽂고, 검사대에 눕기 전 입안에 뭔가를 칙-칙 뿌리면서…, 간호사가 말하더랍니다.

“옆으로 편안하게 누워 보세요.”

내시경 검사를 처음 받아보는 그 신부님은 간호사가 ‘편히 누우시라’ 말은 했지만 편해질 수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입에다가 딱딱한 뭔가를 물려놓고 있었으니, 그렇게 헛구역질이 나오더랍니다. 이제 곧 검사를 시작하려는데 신부님의 몸은 너무나 경직이 됐고, 심지어 헛구역질까지 심하다 보니, 검사하시는 분의 표정은 ‘아이고, 검사는 할 수 있겠나’ 였답니다. 신부님 스스로도 애써 ‘긴장하지 말자’고 했지만, 긴장은 더 되고.

그런데 순간! 누군지는 모를 아련히 들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 누군가가 신부님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서, 마치 낯익은 목소리가….

“얘야, 그래, 편안히, 편안히 숨을 쉬렴. 천천히, 그래, 천천히 숨 쉬고, 그래, 잘한다. 다시 천천히, 그래, 그래, 천천히 숨을 내뱉고. 아이고, 잘한다.”

신부님은 그 아련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스르륵 풀리더니…, 모든 검사가 다 끝나 있더랍니다. 그리 검사를 다 끝내고 회복실에서 한숨 잔 후, 병원을 나오는데 문득 나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고, 그런 다음 그날 있었던 상황을 이야기로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물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누구였을까? 음…. 간호사분이 그렇게 반말을 했을 리가 없고.”

“당연히 아니겠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아주 어릴 때 심하게 체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우리 엄마가 이불 속에 누워있는 내 등과 배를 편안하게 쓰다듬으며 나를 재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상황이랑 너무나 똑같았어. 그 목소리까지. 사실 검사 직전에 온몸이 경직돼 내시경 검사조차 할 수가 없을 뻔했는데. 그 옛날 어릴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기분은 무척 좋더라!”

엄마의 목소리. 우리 모두가 아이였을 때, 힘든 그 어떤 순간, 우리의 온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시면서 사랑과 용기를 속삭여 주시던 엄마의 그 목소리. 엄마의 목소리는 생각만 해도 마음의 평온이 느껴집니다. 그 신부님이랑 대화하면서, 나도 문득 우리 어머니 목소리가 생각이 나서 오늘은 꼭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그 목소리를 들어 보려고. 엄마의 목소리는 분명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숨결임이 틀림없기에!

그래서 그날 저녁, 모처럼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의 그 소중한 한 말씀에 미소를 짓게 됩니다.

“전화비 많이 나간다. 빨리 끊어라.”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