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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길’ / 송혜숙

송혜숙rn(클라우디아·교구 성지위원회 디딤길팀))
입력일 2019-06-11 수정일 2019-06-11 발행일 2019-06-16 제 314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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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길’(La Strada)이라는 오래된 영화도 좋아하고, 길을 걷는 사람도 좋아한다. 인생과 길이라는 포괄된 의미도 좋다. 길과 관련된 것들은 다 좋아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디딤길팀을 좋아한다.

디딤길팀이 생긴 지는 거의 10년쯤 됐는데,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신부님들과 디딤길팀 회원들, 모두 너무 고마운 인연이다. 힘들 때 같이 걸었고, 오래 걸었던 사람들이었다.

디딤길팀이 찾은 길도 좋아한다. 이 길은 소중한 오늘이 있게 해 준 어제가 가득한 곳이었다.

대부분 성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은자처럼 숨어있던 교우들의 마을이 많았다.

가톨릭의 문화와 철학, 그렇게 섬기고 싶었던 구원자 하느님을 기다리던 신앙인들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우리의 순례길은 오래된 건축물을 보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한 시절 누군가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을 듣는 시간이었다.

길을 걷자 생각이 깊어졌다. 걷기 시작하면 다리가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마음에도 근육이 생겼다. 꾸준히 걸었을 뿐인데 삶을 지탱하는 잔 근육이 만들어졌다.

먼 곳의 유명한 여행지를 잠시 다녀오기보다는 이곳의 삶, 길을 사랑하게 됐다. 먼 곳의 여행을 꿈꾸면서 우리의 일상 시간들을 죽은 시간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도보순례를 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그 길을 같이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산티아고나 실크로드, 차마고도 같은 길도 사람들이 자주 다닌 길이었다.

길에는 우리의 과거 역사와 문화가 흐르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 풀과 나무에 덮여 사라졌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이 시간들을 그리워할 거 같다. 두 발로 땅을 딛고, 몸으로 순교자들을 만나는 일, 설령 가슴 깊은 곳에서 기도를 건져 올리지 않아도, 그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얹는 일만으로도 소중했다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 앞에 갔을 때, 너는 저 세상에서 무엇을 하였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 같다. 그냥 하느님 따라 걸었다고.

<끝>

송혜숙rn(클라우디아·교구 성지위원회 디딤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