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인 6월 4일 현북공소에서는 아침부터 구성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공소에 파견된 성가소비녀회 수녀들과 봉사자들은 오전 9시부터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공소회장 고용복(펠릭스·64)씨는 인근의 집들을 찾아 어르신들을 공소로 모셔 왔다. 이렇게 분주히 움직이기를 1시간여, 지역 어르신들은 신자·비신자 할 것 없이 공소 식당으로 모였다. 이윽고 오전 11시, 무료 점심식사가 이어졌다. 이렇게 공소에서 매주 화요일 무료급식이 진행된 지 벌써 11년. 2011년부터 꾸준히 봉사 중인 김재영(헤르메나·65)씨 역시 “급식으로 나눔을 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우리 공소는 음식으로 기쁨을 전하는 공동체”라고 소개했다.
# 교육 나눔
무료급식뿐만이 아니다. 1890년대 한재공소와 명지골공소로부터 오랜 기간 명맥을 이어 온 현북공소는 이전부터 지역주민들을 섬기는 종을 자처해 왔다. 시대마다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무엇이든 나누고 그들을 섬겨 왔다. 1959년 현북공소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때부터 그랬다. 당시 현북면에는 현북공소 청소년 10여 명을 비롯해 갖가지 어려운 환경 탓에 교육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공소에서는 이 청소년들을 위해 현북공소 관할본당인 양양본당 제4대 주임 설리번 신부의 주도 하에 ‘현북농업전수학원’을 세웠다. 청소년들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교재를 구입해 공소에서 가르치다가, 점차 규모가 커져 공소 인근에 학원까지 세우게 된 것이다. 40명의 학생들이 1963년 2월 처음 입학했고, 첫 졸업생들이 1965년 배출됐다. 교회는 이후 학원 운영을 지역 유지들에게 위임했는데, 이들의 노력은 1967년 학원이 정식 공립 중학교로 인가되면서 빛을 발했다. 학교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 의료 나눔
현북공소의 섬김과 나눔은 1996년 성가소비녀회가 공소에 파견되면서 의료사업으로 특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는 현북면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돌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다면서 성가소비녀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1996년 10월 4일 공소에는 ‘현북 가정 간호의 집’이 세워졌다. 양 비오·김 비비아나 수녀를 비롯해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은 ‘작은 여종’이라는 수녀회 이름대로 지역사회의 작은 여종이 돼 아픔을 겪는 이들을 현북 가정 간호의 집에서, 필요하면 이웃들의 집에 직접 찾아가 보살피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어루만졌다. 그 결과 지역 주민들은 “신자가 아닌 사람은 있어도, 수녀님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린 시절부터 여동생과 함께 공소에 다녔다는 전상녀(데레사·77)씨도 “우리 아버지도 간호사 수녀님들한테 주사를 맡곤 했다”면서 “뱀에 물렸을 때도 수녀님들이 다 치료해 줬고, 특히 양 비오 수녀님은 양양 일대를 다 휩쓸고 다니셔서 수녀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