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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이야기] 여섯 번째- 춘천교구 현북공소를 가다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19-06-11 수정일 2019-06-12 발행일 2019-06-16 제 3149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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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들 돌보고 음식 나누며… 이웃의 작은 종으로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상광정리 541. 동해안에 인접한 이곳에는 서로가 종이 돼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지역사회에 섬김과 나눔으로 복음을 전하는 춘천교구 양양본당 ‘현북공소’ 공동체다. ‘공소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한국교회 미래의 실마리를 더듬기 위해 현북공소를 찾았다.

화요일인 6월 4일 현북공소에서는 아침부터 구성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공소에 파견된 성가소비녀회 수녀들과 봉사자들은 오전 9시부터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공소회장 고용복(펠릭스·64)씨는 인근의 집들을 찾아 어르신들을 공소로 모셔 왔다. 이렇게 분주히 움직이기를 1시간여, 지역 어르신들은 신자·비신자 할 것 없이 공소 식당으로 모였다. 이윽고 오전 11시, 무료 점심식사가 이어졌다. 이렇게 공소에서 매주 화요일 무료급식이 진행된 지 벌써 11년. 2011년부터 꾸준히 봉사 중인 김재영(헤르메나·65)씨 역시 “급식으로 나눔을 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우리 공소는 음식으로 기쁨을 전하는 공동체”라고 소개했다.

# 교육 나눔

무료급식뿐만이 아니다. 1890년대 한재공소와 명지골공소로부터 오랜 기간 명맥을 이어 온 현북공소는 이전부터 지역주민들을 섬기는 종을 자처해 왔다. 시대마다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무엇이든 나누고 그들을 섬겨 왔다. 1959년 현북공소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때부터 그랬다. 당시 현북면에는 현북공소 청소년 10여 명을 비롯해 갖가지 어려운 환경 탓에 교육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공소에서는 이 청소년들을 위해 현북공소 관할본당인 양양본당 제4대 주임 설리번 신부의 주도 하에 ‘현북농업전수학원’을 세웠다. 청소년들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교재를 구입해 공소에서 가르치다가, 점차 규모가 커져 공소 인근에 학원까지 세우게 된 것이다. 40명의 학생들이 1963년 2월 처음 입학했고, 첫 졸업생들이 1965년 배출됐다. 교회는 이후 학원 운영을 지역 유지들에게 위임했는데, 이들의 노력은 1967년 학원이 정식 공립 중학교로 인가되면서 빛을 발했다. 학교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 의료 나눔

현북공소의 섬김과 나눔은 1996년 성가소비녀회가 공소에 파견되면서 의료사업으로 특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는 현북면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돌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다면서 성가소비녀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1996년 10월 4일 공소에는 ‘현북 가정 간호의 집’이 세워졌다. 양 비오·김 비비아나 수녀를 비롯해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은 ‘작은 여종’이라는 수녀회 이름대로 지역사회의 작은 여종이 돼 아픔을 겪는 이들을 현북 가정 간호의 집에서, 필요하면 이웃들의 집에 직접 찾아가 보살피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어루만졌다. 그 결과 지역 주민들은 “신자가 아닌 사람은 있어도, 수녀님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린 시절부터 여동생과 함께 공소에 다녔다는 전상녀(데레사·77)씨도 “우리 아버지도 간호사 수녀님들한테 주사를 맡곤 했다”면서 “뱀에 물렸을 때도 수녀님들이 다 치료해 줬고, 특히 양 비오 수녀님은 양양 일대를 다 휩쓸고 다니셔서 수녀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밝혔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에 위치한 현북중학교.

1996년 10월 4일 ‘현북 가정 간호의 집’ 축복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있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들. 춘천교구 양양본당 제공

▲ ▼ 6월 4일 춘천교구 양양 현북공소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지역 어르신들과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급식 봉사자들.

# 음식 나눔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현북면에도 보건소가 생겼다. 어려운 이들의 의료를 책임지던 현북 가정 간호의 집도 2006년 2월 운영이 중단됐다. 그동안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로서 지역사회에 이바지해 온 공소 공동체도 성가소비녀회 수녀들과 함께 새로운 섬김과 나눔의 봉사활동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많은 현북면을 위해 양양군청에서는 양양본당에 무료급식소 운영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양양본당 봉사자들과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 주축이 됐던 무료급식 봉사에서 점점 현북공소 봉사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무료급식은 성가소비녀회와 공소 공동체가 맡아 실시하게 됐다. 현재는 성가소비녀회 급식 담당 수녀 1명과 요리봉사자 5명, 차량·배달봉사자 각 1명 총 8명을 주축으로 봉사가 이뤄지고 있다.

# 비결은 솔선수범

오랜 기간 공동체를 유지한 데에서 나아가 지역사회에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로까지 자리 잡은 비결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들은 “솔선수범”이라고 답했다. 내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고, 때문에 구성원들은 서로가 먼저 나서서 종이 되겠다고 나선다는 설명이다.

특히 19년째 공소회장을 맡고 있는 고용복씨는 “탓하지 말고, 논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은총대로 우리 공동체는 살아간다”면서 “뭐든지 ‘합시다! 합시다!’ 해서 ‘좋심더(좋습니다)! 내가 하겠슴더(하겠습니다)!’ 하면 끝난다. 그게 함께 한다는 거고 서로를 믿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 회장은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자체적으로 공소를 활성화하느라고 참 힘들었지만, 그렇게 하면 또 주위에서 말없이 서로서로 도와준다”며 “공소 앞마당 꽃들도 한 명이 먼저 기증하니까 다른 사람도 또 가져 오고 그렇게 합심으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 시대 변화에 발맞춰 공동체 복지도 변화

현재 현북공소의 교적상 신자 수는 남성 53명, 여성 90명으로 총 143명이다. 매 주일 오전 8시30분 실제로 미사에 나오는 신자 수는 60~70명 정도지만, 그래도 귀농인구와 휴가철마다 방문하는 신자들로 공소는 계속해서 활성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소 공동체에 고민은 있다. 시대에 따라 지역의 사회복지 시스템도 발전하면서 이전과 같은 교육·의료봉사 등 기본적인 복지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소에서는 매주 화요일 진행 중인 무료급식과 함께 공소 공동체 자체의 신앙생활을 강화하는 등 다른 활동들도 모색할 계획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공소 공동체의 모습에 양양본당 주임 박명수 신부는 “요즘엔 공소가 많이 없어지고 있지만, 현북공소는 오히려 인원이 잘 유지되고 있고 스스로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도 잘 갖춰진 곳”이라면서 “앞으로도 잘 운영될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더불어 박 신부는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현북공소 사목의 큰 비결”이라면서 “공소는 이렇게 오래 전 초기 공동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이러한 공소의 모습을 교회에서도 본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