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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천주공경가’는 이벽이 쓴 것 아니다 / 윤민구 신부

윤민구 신부rn(원로사목자)
입력일 2019-06-18 수정일 2019-06-18 발행일 2019-06-23 제 315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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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와 세상 벗님네야 이내 말씀 들어보소.” 이렇게 시작되는 ‘천주공경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졌고 여러 작곡가가 곡을 붙여 노래로도 불린다. ‘천주공경가’는 「만천유고」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만천유고」는 ‘만천 이승훈의 유고집’이라는 의미인데 ‘만천시고’, ‘잡고’, ‘수의록’, ‘발’로 구성되어 있다. ‘만천시고’는 이승훈의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고 ‘잡고’는 이승훈의 글은 아니더라도 그 지인들의 글을 모은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만천유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천주공경가’는 이벽이 쓴 글일까?

유감스럽게도 이 천주가사가 이벽의 작품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성교요지’가 이벽이 쓴 것이 아니고 중국에서 활동하던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쓴 책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성교요지’가 들어있는 ‘잡고’, 더 나아가서는 「만천유고」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천유고」가 문제가 되는 것은 ‘성교요지’ 때문만이 아니다. ‘만천시고’에도 문제가 있다.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 교수는 2018년 3월부터 매주 한국일보에 ‘다산독본’을 연재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만천시고’에 수록된 시 중에서 상당수가 양헌수(1816~1888) 장군의 문집인 「하거집」에 나온다고 밝혔다.

지난주에도 이야기하였듯이 나는 2014년에 ‘성교요지’ 등이 가짜임을 밝혔다. 하지만 「만천유고」에 수록된 시들은 내가 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달리 어떻게 논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내용들의 경우를 볼 때 이 시들 역시 ‘어떤 문집이나 개인 소장 작품들을 베낀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서종태 교수는 2016년 6월 16일 교구에서 개최한 「만천유고」와 ‘성교요지’ 등에 대한 종합적 고찰 심포지엄에서 「만천유고」에 들어있는 시 2수가 이승훈의 시가 아니고 이승훈이 태어나기 60여 년 전에 죽은 홍석기(1606~1680)의 「만주유집」에 실려 있는 시라고 밝혔다.

서종태 교수는 더 나아가 “‘만천시고’에 실려 있는 70수 가운데 이승훈의 저작으로 분명히 단정할 수 있는 시는 한 편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정민 교수가 ‘만천시고’에 들어있는 70수의 시 중에서 무려 26수가 이승훈이 세상을 떠나고 15년 후에 태어난 양헌수 장군의 「하거집」에 나온다고 한 것이다. 결국 ‘만천시고’에 나오는 28수는 이승훈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문집에서 베껴 쓴 것이고, 나머지 시들도 모두 이승훈이 쓴 것이라는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만천시고’에 실려 있는 시들 역시 그 상당수가 다른 사람의 문집에 나오는 시들을 베낀 것이라는 사실이 또다시 밝혀진 것이다. 결국 「만천유고」 전체가 사기극인 것이다.

그러니 「만천유고」에 나오는 ‘천주공경가’도 더 이상 이벽의 글이라고 할 수 없다.

윤민구 신부rn(원로사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