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정의와 자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은 복되나니 / 김형태

김형태(요한)rn변호사
입력일 2019-06-18 수정일 2019-06-18 발행일 2019-06-23 제 315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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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희호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국민과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마지막 말씀이 있었답니다. 민주주의와 평화, 여성, 장애인 등 평생 이웃을 위해 애쓴 분 유언답습니다. 임종 때 가족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따라하려고 희미하게 입술을 움직이다 평화로이 가셨다니 참 복 받은 게지요.

10여 년 전 가신 이돈명(토마스 모어) 변호사 마지막 모습도 그렇게 평화로웠습니다. 소식을 듣고 바로 댁으로 달려갔는데 저녁 잘 드시고 주무시듯 가셨더군요. 변호사님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인권, 시국사건을 변호하다가 급기야는 감옥살이까지 했으니 마지막 평화로움으로 그 보상을 받은 걸까요. 평생 자가용 한 번 가지신 적이 없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전철을 타고 다니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지요.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예수님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자비롭고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받을 ‘복’이란 게 그냥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바로 그 복일까요? ‘안 아프고, 돈 잘 벌고, 부모 자식 간 가정 화목하고, 사람들 칭찬받고, 죽을 때 고생 안 하고’ 하는 그 복. 여기다 더 욕심내면 ‘구원받아 죽어서는 하늘나라 가는’ 복.

이제는 장가갈 나이가 된 우리 아들 녀석 세례명 지을 때도 그랬습니다. 나는 처에게 아들 본명을 ‘토마스 모어’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영국 헨리 8세 때 최고 법관이자 재상이요 사상가로, 열심히 세속(世俗)을 살면서도 세속의 욕심에 빠지지 않고 내면의 자유를 누렸던 성인이었습니다. 세속 안의 자유.

하지만 본명을 고르면서 아들이 좋은 건 다 누리기를 바라는 내 심사는 ‘세속 안의 자유’와는 영 거리가 멀었습니다. 처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내 제안에 반대를 했습니다. “아니, 우리 귀한 아들에게 하필 절두형(切頭刑)을 당한 분 이름을 붙이다니요. 안 돼요.” 토마스 모어가 헨리 8세의 재혼을 반대하다 처형당한 걸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맞받았지요. “아, 김대중 대통령도, 내 옆방에 계시는 이돈명 변호사님도 토마스 모어인데 다 출세하고 칠, 팔십 장수하고 계시잖아.” 결국 아들 본명은 토마스 모어로 낙착됐지만 처는 여전히 찜찜해 했습니다.

그런데 현세의 두 토마스 모어는 부귀와 장수의 복을 다 누렸다지만, 형장에서 내 수염은 죄가 없다며 수염을 젖히고 태연히 목에 칼을 받았다는 저 옛날 토마스 모어 성인도 복 받은 사람일까요. 내 기준으로는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하지만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이는 행복하다 하셨으니 분명 예수님께서는 그를 행복한 이라고 일컬으시겠지요.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라고도 하실 겁니다.

그러면 토마스 모어 성인처럼 ‘복 있는 이’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는 박해를 받더라도 하늘나라 가서는 정말 잘 먹고 잘 사는 영복을 누리게 되는 걸까요.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그 하늘나라도 우리 기대와는 영 다른 곳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다 기득권층의 압제에 신음하던 유다 땅에서 하느님 나라가 이미 가까이 있다고 하셨고,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도 하셨고, 겨자 씨 같고 누룩 같다고도 하셨으니, 묵시록에 묘사된, 문자 그대로 각종 옥과 유리와 순금으로 이뤄진 그런 천국은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초한 칼 라너 신부는 우리가 보상으로 기대하는 영원한 삶이나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삶)은 우리 삶의 ‘뒤에’ 시간적으로 계속된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인격과 관심사의 존속이며 이는 누군가 한 인간과 역사의 존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의 자기주장과 욕심 없이는 한 치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이런 세속 안에서도 토마스 모어처럼 이기심을 자제하고 정의와 자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복됩니다. 그들의 ‘인격과 관심사’는 영원히 존속할 것이요, 하늘나라는 그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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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요한)rn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