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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조문 정치와 평화 프로세스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6-18 수정일 2019-06-18 발행일 2019-06-23 제 315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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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김대중(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민주화를 향한 고난의 인생 역정을 함께 겪으며 헤쳐 온 반려자였다. 스스로도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1세대로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거목이었다. 북한에서도 김여정 조선노동당 1부부장을 통해 이희호 여사 빈소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화와 더불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는 조의문을 보냈다.

특정 국가의 지도자 혹은 그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조문 대표단을 보내고, 장례 과정에서 해당국과 그리고 조문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들과 제반 이슈에 대해 소통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중요한 진행 과정이다.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보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었다. 이희호 여사의 장례식에 북한에서 직접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역시 이러한 조문 정치를 통해 교착된 북미 협상의 소통 창구 복원에 대한 소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오슬로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 공개할 수 없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조화와 조의문 전달에 대해 유족을 대표한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조의문과 조화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면서 “조문단이 와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희호 여사는 유언에서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이희호 여사가 살았던 지난 한 세기는 우리 민족에게 고난과 영광이 함께했던 격동의 세기였다. 고인의 기도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땅을 떠나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었듯이, 격동의 한 세기를 보낸 우리 민족도 이제 평화의 땅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아마 고인은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로마 8,18)라는 말씀을 굳게 믿고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길에 나섰을 것이다. 고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남북 간 그리고 북미 간 대화의 물꼬가 트여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힘차게 돌아가기를 기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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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