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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대축일의 라틴어 성가 / 허종열

허종열(이냐시오)rn시인
입력일 2019-07-02 수정일 2019-07-02 발행일 2019-07-07 제 315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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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대축일’이면 의례히 성가대에서 ‘라틴어 성가’를 부르는 것이다. 라틴어 성가는 우리말이 아니기에 가사를 이해할 수 없다. 성가대원들도 아마 가사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것이다.

라틴어 성가를 부르면, 신자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노래에 우선 긴장을 한다. 그러다가 이내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성가대 따로, 신자들 따로’가 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어떤 신자들은 옆 사람과 소곤거리기까지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제21항에는 ‘전례는 그리스도교 백성이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쉽게 깨닫고, 공동체 고유의 전례 거행에 온전히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공동의 예식에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완전히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미사를 각 나라가 모국어로 거행하게 했다. 그전에는 라틴어로 미사를 봉헌했다.

벽에 붙여 놓은 제대 앞에서 사제는 벽을 보고 신자들은 사제의 등을 보고 미사를 드렸다.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처럼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식탁에 둘러앉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 정반대였다. 사제가 가끔 돌아서서 팔을 벌리며 ‘도미누스 보비스꿈’(Dominus Vobiscum) 하면 신자들은 ‘엗 꿈 스피리뚜 뚜오’(Et cum spiritu tuo)라고 답했다. 그 말이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라는 뜻임을 몰랐다. ‘사제 따로, 신자 따로’ 이러한 라틴어 미사를 전 세계에서 400년 정도 봉헌했다.

종교개혁 등으로 세계교회가 분열하는 상황이라 나라와 민족마다 다른 말로 미사를 드리는 ‘다름’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죽은 말’인 라틴어로 ‘일치’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에는 물처럼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구정물도 받아들이는 포용성,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 같은 미덕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4개 헌장, 9개 교령, 3개 선언 중 전례헌장을 가장 먼저 반포했다.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대한 것이 ‘전례의 전면적 개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1~2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사제와 신자들이 마주 보고 각국의 말로 미사를 봉헌하게 됐다. 신자들이 전례에 완전히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열심인 신자가 미사 중 기둥 뒤에서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현상도 없어졌다.

1963년 12월 4일 전례헌장이 반포된 지 55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지금도 대축일이면 라틴어 성가를 부른다. 축일은 기쁜 일을 축하하는 날이고,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모님, 성인들에게 특별히 공경을 드리는 날이다. 대축일은 더욱 그렇게 하는 날이다. 신자들이 다 알아듣는 노래를 부르고 들으며 마음속으로나마 덩실덩실 춤을 추고 어깨를 들썩여야 하는 날이다.

대축일에 우리말 성가로 도저히 성이 안 찬다면, 국악 성가는 어떨까? 국악을 전공한 사제가 작곡한 좋은 곡들도 있으니 말이다. 라틴어 성가가 굳이 부르고 싶다면 라틴어를 아는 사람들끼리 미사를 드릴 때만 부르면 될 것이다. 오래전 교회를 쇄신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반포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의 정신을 이제라도 제대로 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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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열(이냐시오)rn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