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세계화 시대의 화두, 공존을 위한 평화 / 오세일 신부

오세일 신부rn(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일 2019-07-09 수정일 2019-07-09 발행일 2019-07-14 제 3153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우리는 소위 ‘세계화 시대’에 지구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는 세계인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깝게 이어주고 있지만, 불안한 국제정세와 무역전쟁은 국가 간의 장벽을 실감케 합니다. 그 와중에도 남과 북, 미국의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만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며 애쓰는 모습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염원토록 합니다.

근대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 자행됐던 ‘식민지 쟁탈전’과 20세기 ‘냉전 체제’는 민족의 자주적 독립과 주권국가로서의 확립을 향한 개별 국가 국민들의 치열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심대한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일제가 우리를 식민지로 정복했던 것처럼 다른 민족의 땅을 빼앗고 직접 통치하고자 하는 ‘정치·군사적 지배’ 대신에, 오늘날에는 타국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전유해 가려는 ‘경제·전략적 헤게모니’ 즉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더 심화되고 있지요. 예컨대 트럼프와 시진핑의 치열한 무역전쟁, 한반도의 사드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경제제재, 최근 일본이 감행한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등은 모두 정치, 군사, 외교, 경제관계에서 복잡한 헤게모니 갈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 WTO(국제무역기구)와 IMF(국제통화기금), 월드뱅크가 주도하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전 세계를 단일 시장권으로 통합해 나가며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해 왔습니다. 특히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가부도에 이르게 되면, 강제적인 구조조정으로 국내시장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강제로 개방하고 심지어 금융투기자본의 천문학적 투기가 가능하도록 강제수술을 집행해 왔습니다.

기실, 우리 한국의 경우 IMF에서 제시한 100여 개의 요구사항을 통해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법제화됐지요. 그때부터 국제(금융)시장 질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면서 외자유치와 동시에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과 고용에 관한 차별 조항이 계속 강화돼 왔습니다.

지구촌에서 급속히 전개되는 세계화에 대응하는 공통적인 국가전략은 크게 포퓰리즘의 확산과 초국가기업에 대한 지원 두 가지로 보입니다. 첫째 포퓰리즘에 빠져 있는 정치인들은 자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인기’와 ‘지지율’에 묶여 집단 광기를 불러일으킬 만큼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동선의 가치를 외면하고 극단적 표현으로 혐오 문화를 양산하며 자신의 입지만을 키우려는 정치인은 양떼에 관심이 없는 ‘거짓 선동자’입니다. 총선을 앞둔 일본 아베 총리의 ‘한국 때리기’는 극우 민족주의를 자극해 지지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인데, 한국에서도 사회통합과 공동선에 반하는 정치인들은 건강한 시민들로부터 비판받고 있습니다.

둘째, 개별국가들은 자국의 초국가기업들로부터 막대한 로비와 정치적 후원을 얻으며, 세계 무역전쟁에서 ‘공룡’처럼 커져버린 기업들을 국가대표로 지원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MB 정권이 ‘다스’라는 실소유자 정체불명의 기업 소송비를 삼성에서 헌납하도록 종용했고, 재벌 상속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제대로 징수하지 않았던 엄청난 비리가 은폐됐었지요. 또한 국내 대기업들은 중소 하청업체의 기술과 노동을 외주화하며 단기이익에 천착해 온 반면에 장기적인 기술투자에는 소홀해 왔었습니다.

세계화의 여정에는 국가 간 그리고 국민 간의 경쟁과 평화, 갈등과 협력, 배제와 포용이 복잡하게 점철돼 있는데, 우리는 바로 그 안에서 공존을 향한 ‘평화’라는 화두를 참구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화의 본질’을 아래와 같이 천명합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도 아니요, 적대세력 간의 균형 유지만도 아니며, 전제적 지배의 결과도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평화는 정의 실현인 것이다. 인간 사회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인간 사회에 부여하신 질서, 또 항상 보다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그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인 것이다.”(사목헌장 78항)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한경쟁과 힘의 논리를 넘어 인류공존을 위한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평화란 일상의 모든 관계에서, 기업의 관행에서, 국가 간 소통과 무역에서도 일방적 지배와 온갖 갑질을 정당화하지 않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배제하지 않으며, 인류의 공존과 모든 민족들의 발전, 즉 ‘공동선’을 추구하며 정의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순례의 길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세일 신부rn(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