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선배 열정 본받으며 주님 사랑의 불 놓겠습니다” 초대회장 노력으로 공동체 다져 전입해온 이들 찾아 따뜻한 환대 화목한 모습에 개신교서 개종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 지역에는 구한말 박해가 끝날 무렵 복음이 전래됐다. 하대 3리의 점촌 마을 신자 10여 명이 김성구씨 집에 모여 신앙생활을 지속했고, 이후 1946년 고(故) 고기득(요한)씨가 하대리 2구로 이주하면서 활발한 전교가 이뤄졌다. 신실한 신앙으로 하느님을 알리려 애썼던 고씨의 열정은 신자 증가로 이어졌다. 신자 수가 늘어나자 1949년 당시 공주중동본당 주임 지베드로 신부가 공동체를 방문해서 공소를 설정했다. 이름은 ‘하대리공소’ 였다. 현재 대전교구 공주중동본당(주임 박요순 신부) 중장공소(회장 소영섭)의 전신이다. 고씨는 초대 공소회장으로 임명됐고 이후 30여 년 동안 회장을 맡아 공소의 기틀을 놓았다.
현재 공소 마당 한편에는 고 회장을 기리는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주님 사랑 불 지르시며 골고타 가시밭 길을 웃음으로 사뿐히 가신 님이여!” 비석 뒷면에 새겨진 글귀처럼 이런 초대 회장의 노력과 선교열은 지금껏 공소를 지켜내며 지역 안에, 공동체 안에 주님 사랑의 불을 놓고자 하는 공소 공동체의 또 다른 열의로 이어지고 있다. # 지역 복음화의 못자리 하대리공소에서 중장공소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56년이다. 공소가 계룡저수지로 인해 수몰 위기에 처하자 본당에서 중장리 지역 민가(民家) 한 채를 구입해 고기득 회장이 살도록 하면서다. 이후 민가 형태가 아닌 제대로 된 공소 건립을 원했던 신자들은 제2대 소재걸(바오로·87)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특별헌금과 모금운동을 펼쳐 1979년 지금의 건물을 마련했다. 1987년에는 청소년들을 위해 165㎡ 규모로 피정의 집을 건립했다. 이때는 공소 건물 전체가 피정 장소로 제공되기도 했다. 소 회장은 제2대와 제6대 두 차례에 걸쳐 20여 년 동안 회장으로 일하며 공소 활성화에 힘썼다. 신자 배가 운동을 전개해 한때 134명까지 신자 수가 늘어났다. 냉담교우들을 찾아 나서고 예비신자들은 직접 교리를 가르쳐 가며 교회로 인도했다. 공소계를 조직해 친목에도 힘썼다. 이런 손때 묻은 역사 안에서 공동체가 지닌 공소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은 남다르다.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