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휴가 대신 영화로 떠나는 피정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19-07-16 수정일 2019-07-17 발행일 2019-07-21 제 3154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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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하며 영혼 휴식 하자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이들도 많지만, 휴가 대신 세상과 잠시 떨어져 나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기 위한 피정을 떠나는 신자들도 많다. 휴가나 피정을 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영혼의 휴식을 위해 영화를 감상하며 잠깐이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한두 시간의 관람만으로도 지친 마음이 치유될 만한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영화 ‘위대한 침묵’ 한 장면.

■ ‘위대한 침묵’(Die Große Stille, 2005, 다큐멘터리, 전체관람가)

‘위대한 침묵’이라는 제목 그대로, 168분 동안 이 영화에는 거의 대사가 없다. 영화 막바지에 가서야 노수사의 인터뷰가 등장할 뿐, 카메라는 그저 수도원의 일상을 비추기만 한다. 때로는 정지 화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면들 역시 잔잔하다.

이 영화의 장소적 배경은 카르투지오회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이다.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엄격한 봉쇄 수도원이다. 수사들은 세상과 단절한 채 독방에서 생활하며, 일 년에 두 번 묵상기간에만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1688년 해발 1300m 알프스 깊은 계곡에 세워진 후, 단 한 번도 생활 모습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시간의 흐름, 하루와 계절의 흐름이 있다. 한 장소에서 매일 규칙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어찌 보면 단조롭고 똑같아 보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자연이 바뀐다. 평균 65년을 수도원에서 보내는 수사들의 한결같은 일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도요, 묵상이 될 것이다.

영화 ‘성 프란치스코’ 한 장면.

■ ‘사랑의 침묵’(No Greater Love, 2009, 다큐멘터리, 전체 관람가)

영화 ‘노팅힐’로 잘 알려져 있는 영국 런던의 노팅힐. 시끌벅적한 마켓과 화려한 카니발로 유명한 노팅힐 중심가에 놀랍게도 가르멜 봉쇄 수도원이 있다. ‘위대한 침묵’은 남자 봉쇄 수도원을 처음 공개했는데, ‘사랑의 침묵’은 여자 봉쇄 수도원을 최초로 공개한 영화다.

영화는 제병을 만들고 나무를 손질하고 노수녀를 돌보는 수도원의 일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동시에 중간중간 인터뷰를 통해 신앙과 삶에 대한 수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다. 성주간의 의미, 기도의 가치, ‘영혼의 어둔 밤’, 가르멜 전통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삶과 신앙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영화 ‘사랑의 침묵’ 포스터.

■ ‘미라클’(Je m‘appelle Bernadette, 2011, 드라마, 전체 관람가)

루르드의 성인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1844~1879). 가난한 방앗간 집 딸로 태어난 베르나데트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문맹인데다 병약하기까지 했다. 그렇듯 보잘 것 없는 작은 이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사실은 당대에도 큰 파란을 일으켰다.

영화 ‘미라클’은 베르나데트의 성모발현 목격 당시와 그 후 수녀로서의 삶, 두 축을 맞물려 그려낸다.

35년의 짧은 삶을 산 베르나데트 성인은 그의 기적 체험을 부정하는 이들과 그를 추종하는 이들 양쪽 모두로부터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온전한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영화 속 대사 중 “기적은 설명할 수 없는 법. 그저 경험될 뿐”이라는 말과 “쓸모없는 게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가 성인의 삶 전체를 대변한다.

우리 눈에 비친 성인의 일생은 척박하기 그지없었지만, 성인 자신은 한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로 이끈다.

영화 ‘미라클’ 포스터.

■ ‘성 프란치스코’(L’ami-Francois d’Assise et ses freres, 2016, 드라마, 전체 관람가)

‘평화의 기도’와 ‘태양의 찬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제목은 ‘성 프란치스코’이지만, 이 영화는 성인의 전기영화가 아니다. 수도회(작은형제회) 교황청 인준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주축에 두고 벌어진 일들을 그리며 성인과 그의 동료들의 삶을 담아냈다.

오직 하느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를 사랑하는 동료이면서도 현실문제를 외면하기 힘들었던 엘리야를 중심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무소유와 가난의 삶을 살았던 초기 작은형제회 공동체의 모습이 잘 표현되고 있다. 비록 성인의 삶의 일부만을 볼 수 있지만, 탁발 수도회의 일상과 세속적인 제도로부터의 배척, 오상을 받고 눈이 먼 성인의 말년 등을 보며 성인의 삶이 험한 가시밭길이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고통 속에서도 모든 피조물과 형제자매를 사랑한 성인의 모습에서 보는 이들은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된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당대의 모습을 그려내, 1200년대 이탈리아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